키에르케고르 '불안의 개념'
키에르케고르 '불안의 개념'
자료출처 http://cafe.daum.net/skywalk1/F6kX/2
쇠렌 키에르케고르의 ‘불안의 개념’은 키에르케고르 자신의 개인사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고 그의 심층적 정서가 형상화되어 있다. 키에르케고르가 평생 동안 사로잡혀 있던 불안은 무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우주의 근원이 무에서 시작되었듯 인간의 원류를 추적하다보면 아무것도 없다는 ‘존재론적 무’에 도달하게 된다는 뜻이고 즉, 자신이 ‘유한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음으로서 불안이 생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동물 같은 경우에는 유한성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공포라는 감정은 있을지언정 불안이라는 개념은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불안의 개념’에서 말하고 있는 ‘불안’은 기독교적 원죄와 연관이 있다. 키에르케고르는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서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고, 그로인해 자신이 신과 같은 무한한 능력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불안’이 생겼다고 말한다.
키에르케고르가 ‘불안의 개념’이라는 책을 쓴 것은 어찌 보면 운명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적 집안에서 태어났고, 우울증에 시달리던 아버지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다. 키에르케고르 자신도 평생 우울증에 시달린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키에르케고르는 스물일곱 살 때 열한 살 연하의 아리따운 아가씨 레기네와 약혼을 하게 된다. 꿈에도 그리던 아름다운 여인이지만 오히려 그녀의 완벽한 아름다움이 키에르케고르에게 불안을 안겨주었다. 키에르케고르는 자신 속에는 말할 수 없는 ‘무엇’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무엇’과 평생 앓아온 우울증이 그녀를 불행하게 만들 것이라고 걱정했고 레기네와의 약혼을 파기하게 된다. 그 후 키에르케고르는 ‘시poem’와 함께 ‘불안의 개념’을 쓰게 된다.
그러나 키에르케고르는 ‘불안’이라는 것이 항상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불안’은 잘못 이해하여 올바르게 대처하지 못한다면 우울증에 걸리거나 어떤 무서운 결과를 낳을지도 모르는 심리상태이지만 제대로 이해하여 적절히 대처하면 삶의 에너지로 삼을 수 있고 ‘불안’도 잘 관리하면 쓸모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사실 생존에 가장 적합한 생물은 불안에 떠는 생물일수도 있다. ‘인간’은 ‘불안’하기 때문에 안전을 도모하고 불안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능력을 개발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인류가 현재까지 발달해 온 것도, 인류는 ‘불안’에 떨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자료출처 http://cafe.daum.net/skywalk1/F6kX/2
쇠렌 키에르케고르의 ‘불안의 개념’은 키에르케고르 자신의 개인사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고 그의 심층적 정서가 형상화되어 있다. 키에르케고르가 평생 동안 사로잡혀 있던 불안은 무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우주의 근원이 무에서 시작되었듯 인간의 원류를 추적하다보면 아무것도 없다는 ‘존재론적 무’에 도달하게 된다는 뜻이고 즉, 자신이 ‘유한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음으로서 불안이 생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동물 같은 경우에는 유한성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공포라는 감정은 있을지언정 불안이라는 개념은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불안의 개념’에서 말하고 있는 ‘불안’은 기독교적 원죄와 연관이 있다. 키에르케고르는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서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고, 그로인해 자신이 신과 같은 무한한 능력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불안’이 생겼다고 말한다.
키에르케고르가 ‘불안의 개념’이라는 책을 쓴 것은 어찌 보면 운명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적 집안에서 태어났고, 우울증에 시달리던 아버지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다. 키에르케고르 자신도 평생 우울증에 시달린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키에르케고르는 스물일곱 살 때 열한 살 연하의 아리따운 아가씨 레기네와 약혼을 하게 된다. 꿈에도 그리던 아름다운 여인이지만 오히려 그녀의 완벽한 아름다움이 키에르케고르에게 불안을 안겨주었다. 키에르케고르는 자신 속에는 말할 수 없는 ‘무엇’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무엇’과 평생 앓아온 우울증이 그녀를 불행하게 만들 것이라고 걱정했고 레기네와의 약혼을 파기하게 된다. 그 후 키에르케고르는 ‘시poem’와 함께 ‘불안의 개념’을 쓰게 된다.
그러나 키에르케고르는 ‘불안’이라는 것이 항상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불안’은 잘못 이해하여 올바르게 대처하지 못한다면 우울증에 걸리거나 어떤 무서운 결과를 낳을지도 모르는 심리상태이지만 제대로 이해하여 적절히 대처하면 삶의 에너지로 삼을 수 있고 ‘불안’도 잘 관리하면 쓸모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사실 생존에 가장 적합한 생물은 불안에 떠는 생물일수도 있다. ‘인간’은 ‘불안’하기 때문에 안전을 도모하고 불안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능력을 개발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인류가 현재까지 발달해 온 것도, 인류는 ‘불안’에 떨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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