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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상담학에 반대하여_라은성교수

한국교회 상담학에 반대하여 
라은성 교수   2010-07-22 00:32:10  
 
한국교회에 ‘상담학’이 유행한다. 마치 교회 성장의 촉매가 제자훈련이었던 것처럼 교회들마다 상담이 유행이다. 여름이면 이산화탄소를 향해 무섭게 달려드는 모기들처럼 교회 성장이라는 냄새를 맡으면 교회들마다 웅성거리며 그 비결을 찾으려고 운집한다. 이것이 그르다고 해도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다고 핑계를 대곤 한다.
 
정말 대안은 없는 것인가? 대안이 없기에 상담학에 대한 비판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제자훈련이나 셀교회나 아니면 알파코스처럼 교회성장을 위한 유행성 병균에 불과하다. 그 어느 하나라도 성도 개인의 성장과 무관하다. 도움을 받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정당성을 받지 못할 것이다. 담배를 피워 생각할 여유를 주고 긴장이 풀린다고 하여 흡연을 장려할 수 없는 것과 같다 하겠다. 어느 책에서는 심리학에 찌든 한국교회를 향해 맹공을 퍼붓는다. 한편으로 동의하나 전적으로 동의하진 않는다. 그 이유는 대안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상담학이 한국교회에 유행하게 되는 동기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자. 교회들에서 가르치는 메시지들은 대체적으로 너무 영적이다. 지상적이지 못하다. 하나님과의 관계만을 강조한다. 교회생활에만 강조한다. 하나님과의 관계만을 해결하면 모든 만사형통이라는 단성론적 삶을 강조한다. 목회자들이 그것 밖에 모르는 심리적 문제가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적 문제 역시 담고 있다 하겠다. 단성론적 신앙이 한국교회를 지배한다는 것은 너무나 영적인 것에만 치우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하여 인간적인 면이 약하게 되었기에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상담학이 요구된 것이다.

상담학은 인간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설명해주고 있다. 인간에 대해 이해해야만 사회에서 인간관계를 무난하게 극복하게 대처한다. 아니 사회가 아니더라도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교회생활 만큼 직분자들이 가정에서 행한다면, 남에게 행하는 것의 1/3이라도 가정과 자녀들에게 행한다면 원이 없겠다는 신자들의 요구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는 무슨 대책을 마련해야만 한다. 인간관계를 치유하는 상담이 요청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교회는 한 쪽으로 치우친 영적인 것에만 치우치고 육적이고 지상적인 면은 상담학에 맡긴다면 어떤 문제가 도사리고 있는지 아니 진정으로 신앙의 온전한 균형 잡힌 삶을 해결했는지 물어야만 할 것이다.

우리가 은혜를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은혜를 받았다는 것은 믿음을 선물로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믿음, 즉 그분을 신뢰하는 의지를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그런데 지속적으로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신자의 삶이다. 그러면 지속적으로 은혜를 받아야 한다. 은혜를 받는 것이 인간성 이해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철저하게 깨달아야 한다. 기독교적 인간이해이다. 세속적 인간이해인 상담이나 심리학에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그것과 은혜를 연결 지으려고 갖가지 세속적인 인간심리의 충동의 묘책을 마련하여 이상한 형태로 예배를 흥분시켜 감성을 충동한다. 그래야 은혜를 받는 것이라 여긴다. 이런 것은 모두 심리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기독교적 바른 인간이해가 전제되어야 은혜관도 바로 갖게 되고 은혜를 바로 받게 되면 인간관계도 해결된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별개로 나누어 생각하면 바르지 않다. 하나님 사람에 비추어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힘들고 비참한 존재임을 철저하게 깨달아야 한다. 바르지 못한 자신임을 날마다 깨달아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은혜를 맛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독교적 인간성은 칼빈이 쓴 ‘기독교강요’의 2권 1~6장에 자세히 설명한다. 로마서 1~2장 역시 기독교적 인간성을 분명하게 밝힌 후 은혜의 장, 즉 믿음의 장으로 나아간다.

기독교적 인간 이해는 단시간이나 단회적이지 않다. 삶 전체를 통해 이뤄진다. 인간성 이해가 부족하기에 교회 일원들 간에 늘 다툼이 일어난다. 하나님은 이런 다툼을 통해서라도 자신의 인간성을 깨닫도록 하신다. 다툼을 이란 댓가, 즉 수업료를 통해 기독교 인간성을 깨닫는다.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자임을 깨닫는다. 그래서 모두 내탓이오 라는 말이 유행하게 된다. 언쟁과 다툼을 통해 자신의 부족한 인간성을 깨닫기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한다.
 
기도 속에 또 말씀 속에 답을 찾는다. 놀라운 기쁨이 찾아온다. 이런 면은 다윗의 시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비근한 예로서 시편 63~64편이 이런 내용을 담고 있다. 기독교적 인간성 이해의 부족으로 세속적 상담학이 교회에 살그머니 들어와 차지했다. 조속한 시간에 이런 세속적 지식을 교회에서 쫓아내야 하고, 동시에 기독교적 인간성 이해를 위해 설교자나 가르치는 자는 철저하게 고민하고 고민하여 그 답을 하나님의 말씀에서 찾아야 한다. 이런 면에서 키르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을 소개한다. 참된 인간이해는 하나님 사랑과 함께 이웃 사랑을 알게 할 것이다.  

자료출처  
http://www.eunra.com/zboard/zboard.php?id=column&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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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의견 1

  • 관리자 · 2010-09-18 09:33
    그러나 키르케고르의를 소개하는 것은 다시금 우리로 하여금 고민하게 만듭니다. 키르케고르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가는 것이 과연 성경적인가? 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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