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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성_진단에 따라 적절하고 다양한 치료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하재성_진단에 따라 적절하고 다양한 치료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월간고신(생명나무) 8월호(2010년) 특집기사,
내면상처의 치유와 목회를 집중분석하고 있다.
 
제목에서 나오듯이,
하재성 교수님은,
"목회자가 각 사람의 진단에 따라 적절하고 다양한 치료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고 한다.
충분히 맞는 말이다. 사람에 따라 적절한 방법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 치료 방법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 심리학적인 방법을 동원하느냐?는 밝히지 않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 다룰 일은 아니라고 본다.
 
문제는 그가 언필칭 "적절하고 다양한 치료방법"을 위한
증거구절로 제시하는 성경구절에 대한 바른 해석이 맞는가? 하는 점이다.
우선 p 28-29에 나오는 그의 글을 읽어보자

<더 나아가 성경적 전인 치유를 지향하는 목회자가
각 사람의 형편을 충분히 살피지 않는 일방적인 처방은 성경적이지 않다.
성경에 나타난 치유 사역의 여러 원리들 가운데 하나는목회서신인 데살로니가전서 5장 14에 나타난다.
목회자로서 사도 바울은 "또 형제들아 너희글 권면 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바울은 영혼 케어와 치유에 관하여 매우 다양하고 섬세하며
개개인의 형편에 따라적절한 처방을내리고 있다.
사도바울은  게으른자들은 권계하라고 말한다.
특히 데살로니가교회에서 주님 곧오신다고 무위도식하는 사람들의 게으른 행동에 대해
바울은 권면하고 경계하라고 이야기한다.
그런 사람들은 다른 어떤 질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
잘못된 믿음에 안주하면서 자기 할 일들을 제대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책망은 이런 사람들을 위한 치료의 처방이다.
 
그러나 바울은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라고 말한다.
마음이 소심하고 말할 줄 모르는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결코 호통이나 성급한 충고가 아니다.
그들에게는 힘내라는 격려와 응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바울은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라고 말한다.
자기 힘으로 설 수도 없는 사람은 격려나 칭찬으로도 충분하지 않음을 바울은 잘 알고 있었다.
"넌 할수 있다"고 힘을 북돋아주는 말과 함께, 손을 내밀어 힘이 없는 그들을 붙들어 주어야한다.
그들이 쓰러지지 않도록 직접 곁에서 붙잡아 주어야 하는 것이다.> 

하재성 교수님이 사용하신 번역본은 이전개정성경이다.
지금 인용하는 것은 개정개역판이다.
(살전5:14)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
 
이 말씀에 대한 주석을 보면 다음과 같다.
 
-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 크리소스톰(Chrysostom)과 그 외 초대 교회 교부들은 바울의 이 강력한 지시가 교회의 지도자들을 향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혹자는 이에 반대하면서 이 말씀이 교회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데살로니가 전체 교인들을 향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이유로는 다음 두 가지를 들고 있다. (1) 본문이 교회 지도자들에게만 주어진 말씀이라고 본다면 본절의 '형제들'이란 말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2) 본절과 15절의 내용과 유사한 롬 12:14-17에서도 교회 전체를 대상으로 교훈하고 있다(Morris, Thomas). 

- 규모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 '규모없는 자들'의 헬라어 '아탁투스'(*)는 원래 군사 용어로서 낙오한 병사에 대해 사용한 말이었다. 그들은 훈련받지못한 병사로서 대열을 흩뜨리는 자들이었다. 본절에서 이들은 자기들에게 주어진 일은 하지 않고 남의 신세를 지며 사는 게으른자들을 의미한다(Moffatt). 이들은 4:11의 명령을 무시하는 자들이었다. 또한 '권계(勸戒)하며'의 헬라어 '누데테이테'(*)는 12절의 '권하는'(*, 누데툰타스)과 동일한 뜻의 단어로서 '충고하다'(admonish, NIV)는 의미이다. 
 여기에 대한 하교수님의 해석은 거의 동일하다.

-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 '마음이 약한 자들'(*, 올리고프쉬쿠스)이란 '동료들의 죽음으로 슬퍼하는 자들'(4:13)이나 그 외의 어려운 사정으로 '낙심하고 있는 자들'을 가리킨다. 또한 '안위하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라뮈데이스데'(*)는 '위로하다'(comfort), 혹은 '용기를 북돋우다'(encourage)의 뜻이다. 

-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 '힘없는 자들'(*, 아스데논)이란 육체적으로 약한 자들이 아니라 '믿음이 약한 자들'을 가리킨다. '붙들어 주며'의 헬라어 '안데케스데'(*)는 '단단히 붙잡다'는 뜻으로 여기서는 '지탱해 주다' 혹은 '지지하다'의 의미로 사용되었다(롬 15:1). 
 그러나, 이 부분은 문제시 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넌 할수 있다"고 힘을 북돋아주는 말과 함께, 손을 내밀어 힘이 없는 그들을 붙들어 주어야한다.
그들이 쓰러지지 않도록 직접 곁에서 붙잡아 주어야 하는 것이다.> 라고

하교수님이 말하고 있는 부분이다.
주석을 통해서 보아 알듯이,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넌 할 수 있다"라고 하는 것이 해야할 말인가? 하는 점이다.
너무 꼬투리를 잡을려고 하는거 아닌가? 하는 차원에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성경 본문에 대한 해석의 차원이기 때문에 꼭 짚고 넘어가야한다고 생각한다.
하교수님이 말하는대로 하자면,
 "목회자가 각 사람의 진단에 따라 적절하고 다양한 치료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고 할 때,
과연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목회자가,
"넌 할 수 있다"라고 말해 주는 것이 정말로 적절하고 바른 치료방법인가? 하는 것이다.
 
-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 - '오래참는 것'(*, 마크로뒤미아)는 갈 5:22에 나오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 하나이다. 또한 이것은 하나님의 속성이기도 하다(출 34:6;시 103:8). 사도 바울은 고전 13:4에서 '사랑은 오래참고'라고 말하였으며,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오래 참고 용납할 것을 가르쳤다(엡 4:2;골 1:11;3:12).
 여기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으므로 굳이 말할 필요는 없겠다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그 실제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하교수님은 이어서 이렇게 말한다.
<예를들어 우울증 환자들은 상담자의 판단이나 성급한 충고에 예민하다.
사람을 만나기가 두렵고 공포스러운 환자에게 "사람을 직접 부딪쳐야 나을 수 있다.
가만히 있지 말고 편의점 일이라도 당장 시작하라'고
권면하는 상담자는 환자의 연약함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자기 고집만 부리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작은 것부터 시작해 봅시다.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우선 이야기해 주실래요?" 라며
다독거리고, 듣고, 기다리는 것이 연약한 자를 붙들어 주는 치유의 말이다.>

먼저, 목회자를 성급한 충고(?)를 하는 상담자(?)로 보고 있는 점이다.
29페이지 그 밑의 문단에서, 이렇게 말한다.
"목회자가 상담자로서의 전문적 훈련이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는 인간의 경험과 치료에 대한 목회자의 많고 깊은 독서를 권장한다."
목회자를 전문상담자로 세워야 한다는 의지를 엿볼 수가 있다.
지금의 이 말을 보면, 굳이 세상상담학을 배울 필요도 없는 내용인데도 말이다.
 
두 번째로,
이 말이, 환자의 연약함을 고려하라는 차원에서 보면 얼마든지 가능한 말이다.
성급한 충고(?)를 하는 상담자(?)도 문제가 있겠으나,
그렇다고 환자의 연약함을 고려하는 것이 어느 정도로 맞는 일일까? 하는 것이다.
우울증 환자를 다독거리고 듣고 기다리는 정도의 차원으로 이끌어갈 것인가?
 
정말 우울증 환자에 대한 바른 진단과 치료 방법을 말해 주어야 한다면,
두 번째의 대화도 그리 만족스럽다고는 못하겠다.
어쨌든지간에 둘 다 일을 하라는 것이니까 말이다.
 
목회자는 세상심리상담가가 말하는 것처럼
그것이 천천히든지 빨리든지간에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그 목적과 방향성을 맞추어서는 안된다.
 
지금 이 글이 목회자를 위한 글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는 점이라면,
물론 지면의 부족상 그럴 수도 있는 일이지만,
더 나은 목회적 관점, 다시 말해서 성경적인 권면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것은 그 상담을 의뢰한 사람의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정확한 진단이라고 해서 심리검사로 갈 필요도 없다.
적절하고 다양한 치료방법이라고 해서 최면요법이나 다른 심리요법으로 갈 이유도 없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거기에 대해 어떤 성경적인 반응을 보였는지,
지은 죄는 없는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은 부분은 없었는지...,
여러 차원에서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다.
그렇지 않고 지금 이런 방식으로 대화하는 것은
목회자가 아닌 세상상담가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어찌보면 괜히 꼬투리를 잡는가 싶은 말일 수도 있다.
구체적인 상황을 언급하지 않은 케이스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런 부분에 있어서
먼저 성경의 해석을 바르게 해야함이 중요하고
실제에 있어서 보다 더 성경적인 권면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그래서 우리가 좀 더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차원에서 짚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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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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