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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성_성경적 전인 치유사역? 과연 성경적인가?

하재성_성경적 전인 치유사역?
 
월간고신 8월호 집중분석 중입니다.
이번에는 하재성 교수의 글, "성경적 전인치유 사역"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선 그의 약력을 보면,
"미국으로 건너가 목회상담을 공부하면서 여러 해에 걸쳐 임상목회 훈련과 목회심리치료 훈련을 받고,
테네시 주에 있는 벤더빌트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나온다.
 
이 약력에서 나오듯이 이미 하재성교수는 심리학이 주류를 이루는 계열에서
공부를 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미국 목회상담의 경향은 4-5가지로 볼 수 있는데,
그 중에서 하재성교수는 밴더빌트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밴더빌트와 그런 계열의 분위기는
목회상담에 융의 분석심리학이나 심리학적 사고들을 폭넓게 받아들인다.
이 말은 심리학에 대하여 아주 포용적인 계열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자유적 보수적으로 구분을 한다고 하면,
아주 자유적인 경향에 속한다고 보면 된다.
 
이런 그의 경향은 그의 활동에서도 알 수가 있다.
하재성교수는
지난 2010년 5월15일(토)에 연세대학교신학관에서
"고령화 사회와 기독교상담"이라는 주제로 열린 학술대회에
하재성교수가 논찬자로 참여했다.
이런 심리치료학회가 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을 보면
그의 성향이 어떤 것인지 쉽게 가늠해 볼 수가 있다.  
물론 여기에는 고신대 류혜옥교수도 논찬자로 참석했다.  

p26페이지의 둘째 문단에 보면,
<"그래도 나는 가치 있는 존재구나, 내 자체에 문제덩어리가 아니라
나에게 그저 어려운 일이 생긴거구나"라는 유연한 태도를 갖게 되는 것이다>
라고 말한다.
문제는 이런 것이 심리학자들이 하는 말들과 꼭같다는 것이다.
자존감의 회복, 긍정적인 생각..., 이런 것들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이렇게 되는 것은 앞서 말했듯이,
하교수님이 그런 성향을 가진 곳에서 공부를 했기 때문이다.
교회가 가르치는 것이, 겨우
<"그래도 나는 가치 있는 존재구나, 내 자체에 문제덩어리가 아니라
나에게 그저 어려운 일이 생긴거구나"라는 유연한 태도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러면 곤란하게 된다.
교회는 이런 자존감회복, 정체성회복 이런 정도가 되어서는 안된다.
그 밑에 단락에서도 나오듯이, 어느 자매가,
"교회에 오면 언니들이 너무 좋아해주고 아껴주어서 행복하다"는 말을 한다고 한다.
교회는 친교공동체가 우선이 아니다.
그것이 분명히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이 주인 노릇을 하면 안된다.
교회는 언제라도,
"죄인됨"을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우리의 죄를 사하시며
그의 의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기쁨과 자유가 넘쳐나게 되는 것을 고백해야 한다.
 
하교수님의 심리학적 성향은 다른 글에서도 나타난다.
옥성호의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에 대한 반격으로
"지혜로운 기독교"라고 글을 썼다.
(자료보기 http://www.kts.ac.kr/bbs/view.php?id=column&no=37)
 
그 글에서 하교수님은 이렇게 말한다.
"심리학을 반대하는 사람들 속에 있는 기독교 진리의 영원함에 대한 이런 불신이 오히려 걱정스럽다.
심리학이나 다른 어떤 사회 과학도 기독교의 진리를 흔들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심리학이란 그저 인본주의의 자생적인 학문 영역의 하나일 뿐이다."

"학문의 영역의 하나일뿐이다" 이 말이 얼마나 위험스러운 말인지를 모르는 것 같다.
현재 심리학은 학문의 영역을 넘어서 종교의 영역으로 뛰어들은지 오래다.

하교수님의 이런 발언은,
그 경향을 모른다는 것인지, 애써 부인한다는 것인지를 모르겠다.
 
하교수님이 말하듯이,
많은 분들이 칼빈도 인문주의자였다고 한다.
이런걸 두고 "아전인수 [我田引水]"라고 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총신대신학대학원의 안인섭교수님의 말씀을 들어보자.
안인섭 교수는 먼저 “칼빈은 어려서부터 인문주의 교육을 철저하게 받은 인문주의자에서 시작했지만, 회심을 거쳐서 종교개혁의 신학자가 됐다”고 말하고, 칼빈은 인문주의자에서 종교개혁주의자로 돌아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그리스 로마의 작품들을 귀하게 여기고 인문주의를 무시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칼빈이 인문주의를 절대화하거나 신성화하지 않았다고 전하고, “칼빈은 누구보다도 기독교의 진리는 인문주의적 지식으로 환원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안 교수는 “칼빈은 자신의 종교개혁 신학을 수립하고 성경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자신의 인문주의적 소양을 탁월하게 활용했다”고 설명하고, 인문주의가 칼빈에게 공헌한 바를 몇 가지로 정리했다. 먼저 칼빈의 인문주의적인 훈련은 자신의 생각을 간결하고 단순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 고대의 철학적 용어들을 자유롭게 사용해 당시의 지성인들과 독자들에게 그 의도하는 바를 전달하는데 매우 유용했다고 설명했다.
또 칼빈은 인문주의 정신인 ‘ad fonts’의 원칙에 따라 원전과 고전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 인문주의는 기독교 신앙의 원천인 성경과 교부들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영감을 줘 칼빈의 신학 형성에 크게 공헌했다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칼빈은 자신의 인문주의적 사고에 기초해, 종교개혁 신학을 사회적으로 확대 해석할 수 있는 포괄성을 가질 수 있었다”고 안 교수는 설명하고, “학문과 신학은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 칼빈의 생각이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안 교수는 “칼빈은 인문주의를 숭배하지는 않았다”고 말하고, “인문주의적 소양은 어디까지나 수단이며, 그 궁극적 목적은 하나님의 통치하심(Regnum Dei)을 드러내는 것”이라며 “칼빈에게 있어서 인문주의적 지식과 교양 또한 성경과 종교개혁 신학에 의해 그 가치와 정체성이 늘 재평가 되어야 했다”고 전했다.
(자료출처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02706)

또 다르게 표현을 하자면, 칼빈은 인문주의를 통해 르네상스로 가지도 않았고 우상숭배로  나가지도 않았다.
안교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드러내는 것으로 인문주의의 소양을 사용했다.
 
오늘날 심리학과 통합구도로 자는 자들은 
"칼빈도 인문주의자였다"라는 이런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심리학을 기독교와 함께 동행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심리학으로 갈 경우에 나오는 결과가 앞서 말했듯이,
교회에 왔더니 내가 가치 있는 존재더라, 남들이 나를 반겨줘서 좋더라
이런 걸로 밖에는 나올 것이 없다.
 
말씀을 바르게 증거하면,
오직 예수 오직 십자가 밖에 없고,
그로 인해 구원의 기쁨과 자유와 기쁨이 있고,
언약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된 정체성으로 가게 된다.
이런 절대가치는 심리학의 상대가치와는 비교가 안된다.
 
교회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으로 가야한다.
그것 외에 더하여서 가르치는 것은
성경을 벗어나는 오염된 길이다.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http://www.esesang9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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