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서택 내적치유사역원_부정적 생각이 문제인가? 죄악된 생각이 문제인가?
주서택 내적치유사역원_부정적 생각이 문제인가? 죄악된 생각이 문제인가?
월간고신 8월호(2010년) p25에 보면 주서택목사의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온다.
"인간은 수없이 많은 사건 속에서 상처를 받을 때 쓴뿌리가 자라며 왜곡된 사고방식을 갖게 된다.
부정적 생각은 사단의 출입문이다. 살인이나 자살하기 전 많은 이들이 환청을 경험한다.
소리로 들릴만큼 부정적인 생각이 커진 것이다.
부정적인 생각은 모든 인간관계를 파괴시키고 인생을 파괴시킨다."
먼저, 주서택목사가 말하는 쓴뿌리는 프로이드적인 용어인지
성경에서 말하는 쓴뿌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말은 다음 기회에 하도록 하자.
"부정적이다"라는 것은 매우 주관적인 단어다.
누가 어떤 입장에서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부정적인 될 수도 있고 긍정적일 수도 있다.
"부정적" - 그렇지 아니하다고 단정하거나 옳지 아니하다고 반대하는. 또는 그런 것.
(자료 네이버사전http://krdic.naver.com/detail.nhn?docid=17680802&re=y#17680802)
여기에는 무슨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이 생각해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거나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 부정적인 것이 된다.
오늘날 교회에서 사용하는 단어가,
"죄"라는 개념보다는 "부정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죄에 대한 개념이 모호해져 버렸다.
그래서 민수기 13-14장의 가나안정탐과 보고사건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이라고 문제였다고 설교를 한다.
이런 설교가 나오는 것은 언약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의 행위는 언약적인 맥락에서 죄를 범한 것이지
부정적인 생각을 한 정도가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부정적인 생각이 문제라고 가르치는 것도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죄악된 생각,
곧 죄가 무엇인지를 가르치지 않는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부정적인 생각을 갖지 마라" 고 가르치거나 설교를 해서는 안되고,
"죄악된 생각을 하지 말고, 죄를 짓지 마라"고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4장에서 가인이 아벨에 대하여 분하여 있을 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가?
『[5]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창 4:5-7)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아무리 분노가 일어나고 죄악된 생각이 일어나도 죄를 짓지 마라고 하신다.
그런데 오늘날 이런 말씀을 바꾸어서,
"부정적인 생각"이라고 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있다.
그러면 더 나아가서,
부정적인 생각이 사단의 출입문이라면,
긍정적인 생각은 성령의 출입문인가?
최근들어 조엘오스틴의 '긍정의 힘' 이런 책들이 성도들에게 읽혀지면서
복음의 질을 추락시키고 있다.
'긍정의 힘'이라는 것이 과연 성경적인지 아닌지는 이제 따지고 말고 할 일이 아니다.
그렇게 왜곡되고 잘못된 내용을 가지고 특별 새벽기도회 교재로 사용하는 현실이니...,
참 오늘날의 교회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이 뭐그리 문제가 되나 할 것이다.
물론 매일 짜증스러워하고 안좋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그러나 그것이 십자가 복음과 관계되면 문제가 발생한다.
그 긍정의 힘은 세상에서의 성공을 말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세상에서의 성공을 보장하지 않으셨다.
부정적이다 긍정적이다는 세상에 속한 말이요 주관적인 말이다.
신자는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죄냐 아니냐로 가야 한다.
이런 모호한 단어로 신자들을 미혹케 하는 일에 속아넘어가서는 안된다.
주서택목사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한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일까?
나는 그 유일한 해결책은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이며
하나님의 사랑을 속사람 깊이 체험하는 것이라고 본다."
"하나님과의 관계회복"
"하나님의 사랑을 속사람 깊이 체험하는 것"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하느냐? 가 문제다.
내적치유세미나에서 그것을 어떻게 할까?
결국 "구상화"로 간다.
그러니 겉은 멀쩡하게 하나님의 사랑, 속사람, 관계회복 이런 단어를 사용하지만,
실제로는 다 심리학에 오염되고 썩은 것들로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다.
진정한 해결책으로 가려면 죄를 회개하고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치유다.
겨우 부정적인 생각 안하는 정도가 아니다.
그러니 죄, 회개, 십자가 이런거는 필요가 없다.
물론 말은 한다. 무엇을 위해서 말하나?
그저 치유, 치유 그것뿐이다.
죄를 회개하고 말씀대로 살아라 그것이 성경의 요구다.
내적치유세미나에서 죄를 회개하라고 하는 곳도 있다.
그들은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온갖 것을 다 섞어서 사용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모르는 혼합주의자들이다.
이제는 교회가 내적치유 세미나에 미혹되어 빠지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와서
성경대로 살고 성경대로 죽는 것이 바른 길이다.
Esesang91.com 정태홍 목사
http://www.esesang91.com
월간고신 8월호(2010년) p25에 보면 주서택목사의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온다.
"인간은 수없이 많은 사건 속에서 상처를 받을 때 쓴뿌리가 자라며 왜곡된 사고방식을 갖게 된다.
부정적 생각은 사단의 출입문이다. 살인이나 자살하기 전 많은 이들이 환청을 경험한다.
소리로 들릴만큼 부정적인 생각이 커진 것이다.
부정적인 생각은 모든 인간관계를 파괴시키고 인생을 파괴시킨다."
먼저, 주서택목사가 말하는 쓴뿌리는 프로이드적인 용어인지
성경에서 말하는 쓴뿌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말은 다음 기회에 하도록 하자.
"부정적이다"라는 것은 매우 주관적인 단어다.
누가 어떤 입장에서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부정적인 될 수도 있고 긍정적일 수도 있다.
"부정적" - 그렇지 아니하다고 단정하거나 옳지 아니하다고 반대하는. 또는 그런 것.
(자료 네이버사전http://krdic.naver.com/detail.nhn?docid=17680802&re=y#17680802)
여기에는 무슨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이 생각해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거나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 부정적인 것이 된다.
오늘날 교회에서 사용하는 단어가,
"죄"라는 개념보다는 "부정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죄에 대한 개념이 모호해져 버렸다.
그래서 민수기 13-14장의 가나안정탐과 보고사건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이라고 문제였다고 설교를 한다.
이런 설교가 나오는 것은 언약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의 행위는 언약적인 맥락에서 죄를 범한 것이지
부정적인 생각을 한 정도가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부정적인 생각이 문제라고 가르치는 것도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죄악된 생각,
곧 죄가 무엇인지를 가르치지 않는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부정적인 생각을 갖지 마라" 고 가르치거나 설교를 해서는 안되고,
"죄악된 생각을 하지 말고, 죄를 짓지 마라"고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4장에서 가인이 아벨에 대하여 분하여 있을 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가?
『[5]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창 4:5-7)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아무리 분노가 일어나고 죄악된 생각이 일어나도 죄를 짓지 마라고 하신다.
그런데 오늘날 이런 말씀을 바꾸어서,
"부정적인 생각"이라고 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있다.
그러면 더 나아가서,
부정적인 생각이 사단의 출입문이라면,
긍정적인 생각은 성령의 출입문인가?
최근들어 조엘오스틴의 '긍정의 힘' 이런 책들이 성도들에게 읽혀지면서
복음의 질을 추락시키고 있다.
'긍정의 힘'이라는 것이 과연 성경적인지 아닌지는 이제 따지고 말고 할 일이 아니다.
그렇게 왜곡되고 잘못된 내용을 가지고 특별 새벽기도회 교재로 사용하는 현실이니...,
참 오늘날의 교회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이 뭐그리 문제가 되나 할 것이다.
물론 매일 짜증스러워하고 안좋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그러나 그것이 십자가 복음과 관계되면 문제가 발생한다.
그 긍정의 힘은 세상에서의 성공을 말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세상에서의 성공을 보장하지 않으셨다.
부정적이다 긍정적이다는 세상에 속한 말이요 주관적인 말이다.
신자는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죄냐 아니냐로 가야 한다.
이런 모호한 단어로 신자들을 미혹케 하는 일에 속아넘어가서는 안된다.
주서택목사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한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일까?
나는 그 유일한 해결책은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이며
하나님의 사랑을 속사람 깊이 체험하는 것이라고 본다."
"하나님과의 관계회복"
"하나님의 사랑을 속사람 깊이 체험하는 것"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하느냐? 가 문제다.
내적치유세미나에서 그것을 어떻게 할까?
결국 "구상화"로 간다.
그러니 겉은 멀쩡하게 하나님의 사랑, 속사람, 관계회복 이런 단어를 사용하지만,
실제로는 다 심리학에 오염되고 썩은 것들로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다.
진정한 해결책으로 가려면 죄를 회개하고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치유다.
겨우 부정적인 생각 안하는 정도가 아니다.
그러니 죄, 회개, 십자가 이런거는 필요가 없다.
물론 말은 한다. 무엇을 위해서 말하나?
그저 치유, 치유 그것뿐이다.
죄를 회개하고 말씀대로 살아라 그것이 성경의 요구다.
내적치유세미나에서 죄를 회개하라고 하는 곳도 있다.
그들은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온갖 것을 다 섞어서 사용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모르는 혼합주의자들이다.
이제는 교회가 내적치유 세미나에 미혹되어 빠지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와서
성경대로 살고 성경대로 죽는 것이 바른 길이다.
Esesang91.com 정태홍 목사
http://www.esesang9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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