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서택 내적치유사역원_내적치유를 받아야 하나, 죄를 회개하고 말씀대로 똑바로 살아야
주서택 내적치유사역원_내적치유를 받아야 하나, 죄를 회개하고 말씀대로 똑바로 살아야 하나?
월간고신 8월호(2010년)에 보니, 내적치유에 대한 글들이 여러 편이 실려있다.
여기에 나와 있는 글들을 살펴보고 과연 그 글들이 맞는가를 생각해 보려고 한다.
------------------
제목을 그리 달았듯이,
내적치유를 받아야 하나, 죄를 회개하고 말씀대로 똑바로 살아야 하나?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주서택 목사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이들은 자신은 치유 받을 것이 없다 한다. 그러면 주님이 필요없단 말인가?
내적 치유에서 의미하는 치유란 심리학에서 말하는 사회에 적응치 못하는 이상증상의 치유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곳에서 치유의 의미를 어떻게 보는지 모르나 본인은 그렇다)
치유가 필요한 자는 주님 보시기에 병든 자로서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구부러진 마음을 가진 자이며
이기심에의 결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신앙적 지식은 많아도
속사람은 전혀 변화되지 않은 미성숙한 자를 의미한다.
그래서 치유가 필요할수록 치유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2010.월간고신. p23)
얼핏 보면 참 일리가 있어 보이는 말 같아 보인다.
"어떤 이들은 자신은 치유 받을 것이 없다 한다. 그러면 주님이 필요없단 말인가?"
이 말을 보면 마치 내적치유 받으러 안가면 예수님이 필요없는 사람같이 보인다.
치유라는 이름으로 먼저 나서기 때문에 문제다.
성경은 우리에게 먼저 치유받으라 는 말로 시작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에게 "죄를 회개하라"고 하신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였으니』(마 3:2)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마 4:17)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막 6:12)
소위 내적치유를 말하는 사람들의 그 치유라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기억치유"다. 다른 면에서는 최면치유로 사용이 되는 방법이다.
그것이 다만 기독교라는 이름이 들어가고 기독교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차이일뿐 아무런 차이가 없다.
신자된 우리에게는 내적치유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기억치유, 최면치유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앞에 죄를 회개하고 그 언약에 신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
"치유"라는 코드로 접근하기 때문에 이어지는 발언이 문제다.
"바울은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 자신은 의로운 자라는 확신과 자신감에 차있었으나 주님을 만난 후
사역의 마무리를 해 갈 즈음에 '나는 죄인 중의 괴수다'라고 고백한다.
김수환 추기경은 그의 취임식에서
'내 모습은 깨끗하지만 속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내 속에 있는 것들이 밖으로 드러난다면 여러분은 당장 이 자리에서 나를 쫓아낼 것입니다.'라고 했다.
베네딕트 수도원의 신부이며 영성학자인 토마스 키딩은 자신은 지금까지
'무언가의 중독에 빠지지 않은 자를 만나본 적이 없다'고 했다. "."(2010.월간고신. p23)
사도 바울을 말해 놓고서, 그 뒤로 말하는 사람들은 다 로마카톨릭 인물이다.
김수환 추기경, 토마스 키딩 신부~
어디 말할 인물이 없어서 이렇게 신부만 죽 늘어놓는가?
사람을 미혹하게 하는 말은 '영성학자'라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면 다 통하는 것이 문제다.
마치 로마카톨릭의 영성이 사도바울의 영성과 일맥상통하는 것처럼 속이고 있다.
토마스키딩은 관상기도에 앞장서는 사람이다.
그가 죽기 전에 한 말이 어떤 말인지를 조금이라도 읽어 보라.
(http://kr.blog.yahoo.com/pleamore/5455)
이런 글을 읽고도 뭐라고 궁시렁대면
목사되기를 그만두고 신자되기를 그만두고
로마 카톨릭으로 가라고 엄중하게 권하고 말하고 싶다.
그렇게 좋은 영성, 그렇게 코드가 맞는 로마카톨릭인데
뭐하러 기독교에 남아서 기독교를 타락시킬 이유가 없다.
문제는 왜 이런 사람들을 언급하는가 이다.
그것은 바로 "치유"라는 코드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그럴바에는 굳이 로마카톨릭 사람들을 언급할 것이 아니라 선불교를 언급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치유"라는 코드로 접근하기 때문에 경계를 뛰어넘어서 얼마든지 교통이 가능한 것이다.
오늘날 이런 개념들로 접근하기 때문에 교회는 무너지고 있다.
섞어서 가르치기 때문에 사람들은 혼란을 겪고 미혹을 받아 넘어진다.
복음도 말했다가, 아닌 것도 말했다가, 비슷한 것도 말했다가...,
이러니 분별이 안되는 사람들은 유명한(?) 사람들의 말에 넘어지고 만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내적치유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십자가의 보혈로 용서함을 받는 것이다.
그것 외에 다른 것을 전하면 가짜다.
내적치유는 세상의 심리학에 찌들고 오염된 악성 바이러스다.
내적치유세미나에 가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회개해야 한다.
두 눈 똑바로 뜨고 성경을 읽어보라.
『[1] 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이 이스라엘을 배반하였더라
[2]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 있는 그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매 사자를 보내며 저희더러 이르되
가서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이병이 낫겠나 물어 보라 하니라
[3] 여호와의 사자가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올라가서 사마리아 왕의 사자를 만나서 저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 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
[4]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엘리야가 이에 가니라』(왕하 1:1-4)
여호와 외에 다른 것을 의지하는 자들은 다 죽을 것이다는 말씀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살아계신데 왜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갔느냐고 하셨듯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살아계신데 왜 심리학에 찌들고 오염된 내적치유를 받으러 갔느냐고 물으실 것이다.
오늘도 거짓된 복음으로 가르치는 헛된 사상에 물들이지 말고
오직 예수, 오직 십자가만으로 자랑하고 그 새언약에 신실한 믿음의 백성으로 살아가자!!!
그것이 우리의 신자된 길이요 생명이다.
끝으로 사도 바울의 이 말씀을 명심하고 또 명심해야 한다.
『[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5] 영광이 저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8]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4-9)
아멘!!!
Esesang91.com 정태홍 목사
http://www.esesang91.com
월간고신 8월호(2010년)에 보니, 내적치유에 대한 글들이 여러 편이 실려있다.
여기에 나와 있는 글들을 살펴보고 과연 그 글들이 맞는가를 생각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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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그리 달았듯이,
내적치유를 받아야 하나, 죄를 회개하고 말씀대로 똑바로 살아야 하나?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주서택 목사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이들은 자신은 치유 받을 것이 없다 한다. 그러면 주님이 필요없단 말인가?
내적 치유에서 의미하는 치유란 심리학에서 말하는 사회에 적응치 못하는 이상증상의 치유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곳에서 치유의 의미를 어떻게 보는지 모르나 본인은 그렇다)
치유가 필요한 자는 주님 보시기에 병든 자로서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구부러진 마음을 가진 자이며
이기심에의 결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신앙적 지식은 많아도
속사람은 전혀 변화되지 않은 미성숙한 자를 의미한다.
그래서 치유가 필요할수록 치유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2010.월간고신. p23)
얼핏 보면 참 일리가 있어 보이는 말 같아 보인다.
"어떤 이들은 자신은 치유 받을 것이 없다 한다. 그러면 주님이 필요없단 말인가?"
이 말을 보면 마치 내적치유 받으러 안가면 예수님이 필요없는 사람같이 보인다.
치유라는 이름으로 먼저 나서기 때문에 문제다.
성경은 우리에게 먼저 치유받으라 는 말로 시작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에게 "죄를 회개하라"고 하신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였으니』(마 3:2)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마 4:17)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막 6:12)
소위 내적치유를 말하는 사람들의 그 치유라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기억치유"다. 다른 면에서는 최면치유로 사용이 되는 방법이다.
그것이 다만 기독교라는 이름이 들어가고 기독교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차이일뿐 아무런 차이가 없다.
신자된 우리에게는 내적치유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기억치유, 최면치유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앞에 죄를 회개하고 그 언약에 신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
"치유"라는 코드로 접근하기 때문에 이어지는 발언이 문제다.
"바울은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 자신은 의로운 자라는 확신과 자신감에 차있었으나 주님을 만난 후
사역의 마무리를 해 갈 즈음에 '나는 죄인 중의 괴수다'라고 고백한다.
김수환 추기경은 그의 취임식에서
'내 모습은 깨끗하지만 속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내 속에 있는 것들이 밖으로 드러난다면 여러분은 당장 이 자리에서 나를 쫓아낼 것입니다.'라고 했다.
베네딕트 수도원의 신부이며 영성학자인 토마스 키딩은 자신은 지금까지
'무언가의 중독에 빠지지 않은 자를 만나본 적이 없다'고 했다. "."(2010.월간고신. p23)
사도 바울을 말해 놓고서, 그 뒤로 말하는 사람들은 다 로마카톨릭 인물이다.
김수환 추기경, 토마스 키딩 신부~
어디 말할 인물이 없어서 이렇게 신부만 죽 늘어놓는가?
사람을 미혹하게 하는 말은 '영성학자'라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면 다 통하는 것이 문제다.
마치 로마카톨릭의 영성이 사도바울의 영성과 일맥상통하는 것처럼 속이고 있다.
토마스키딩은 관상기도에 앞장서는 사람이다.
그가 죽기 전에 한 말이 어떤 말인지를 조금이라도 읽어 보라.
(http://kr.blog.yahoo.com/pleamore/5455)
이런 글을 읽고도 뭐라고 궁시렁대면
목사되기를 그만두고 신자되기를 그만두고
로마 카톨릭으로 가라고 엄중하게 권하고 말하고 싶다.
그렇게 좋은 영성, 그렇게 코드가 맞는 로마카톨릭인데
뭐하러 기독교에 남아서 기독교를 타락시킬 이유가 없다.
문제는 왜 이런 사람들을 언급하는가 이다.
그것은 바로 "치유"라는 코드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그럴바에는 굳이 로마카톨릭 사람들을 언급할 것이 아니라 선불교를 언급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치유"라는 코드로 접근하기 때문에 경계를 뛰어넘어서 얼마든지 교통이 가능한 것이다.
오늘날 이런 개념들로 접근하기 때문에 교회는 무너지고 있다.
섞어서 가르치기 때문에 사람들은 혼란을 겪고 미혹을 받아 넘어진다.
복음도 말했다가, 아닌 것도 말했다가, 비슷한 것도 말했다가...,
이러니 분별이 안되는 사람들은 유명한(?) 사람들의 말에 넘어지고 만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내적치유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십자가의 보혈로 용서함을 받는 것이다.
그것 외에 다른 것을 전하면 가짜다.
내적치유는 세상의 심리학에 찌들고 오염된 악성 바이러스다.
내적치유세미나에 가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회개해야 한다.
두 눈 똑바로 뜨고 성경을 읽어보라.
『[1] 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이 이스라엘을 배반하였더라
[2]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 있는 그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매 사자를 보내며 저희더러 이르되
가서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이병이 낫겠나 물어 보라 하니라
[3] 여호와의 사자가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올라가서 사마리아 왕의 사자를 만나서 저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 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
[4]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엘리야가 이에 가니라』(왕하 1:1-4)
여호와 외에 다른 것을 의지하는 자들은 다 죽을 것이다는 말씀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살아계신데 왜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갔느냐고 하셨듯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살아계신데 왜 심리학에 찌들고 오염된 내적치유를 받으러 갔느냐고 물으실 것이다.
오늘도 거짓된 복음으로 가르치는 헛된 사상에 물들이지 말고
오직 예수, 오직 십자가만으로 자랑하고 그 새언약에 신실한 믿음의 백성으로 살아가자!!!
그것이 우리의 신자된 길이요 생명이다.
끝으로 사도 바울의 이 말씀을 명심하고 또 명심해야 한다.
『[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5] 영광이 저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8]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4-9)
아멘!!!
Esesang91.com 정태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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