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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신학 서론
제1부 교의신학의 개념과 역사 [1교의의성격] [2교의신학의개념] [3교의학의 과제, 방법론및 분류] [4교의학의역사]
제2부 교의학의 제원리 [5일반원리] [6종교] [7외적인식의원리(계시)] [8성경의영감] [9내적인식의원리]
신론
제1부 하나님의 존재 [10하나님의존재] [11하나님에관한인식의가능성] [12하나님의존재와속성의관계] [13하나님의이름들]
                              [14하나님의속성개요] [15비공유적속성] [16공유적속성] [17성삼위일체]
제2부 하나님의 사역 [18하나님의작정개요] [19예정] [20창조개요]
                              [21영적인세계의창조] [22창조에대한성경의설명] [23섭리]
인간론
제1부 원시상태의 인간 [24인간의기원] [25인간의구성적본질] [26하나님의형상으로서의인간] [27행위언약속에있는인간]
제2부 죄의상태안에있는인간 [28죄의기원] [29죄의본질적특성] [30죄의전이] [31인류의삶에나타난죄] [32죄의형벌]
제3부은혜언약안에있는인간 [33언약의명칙과개념] [34구속언약] [35은헤언약의성질] [36언약의이중적국면]
                                       [37언약의여러세대]
기독론
제1부그리스도의위격 [38기독론의역사] [39그리스도의명칭과성질] [40그리스도의일위성]
제2부그리스도의신분 [41비하의신분] [42승귀의신분]
제3부그리스도의직분 [43서론&선지자직] [44제사장직] [45속죄의원인과필요성] [46속죄의성질] [47속죄의제반이론들]
                              [48속죄의목적과범위] [49그리스도의중보사역] [50왕직]
구원론 [51구원론의개요] [52성령의사역개관] [53보통은혜] [54신비적연합] [55부르심일반과외적부르심]
           [56중생과효과적부르심] [57회심] [58신앙] [59칭의] [60성화] [61성도의견인]
교회론
제1부교회에관한교리/서론 [62교회의명칭과교회론의역사적개요] [63교회의성질] [64교회의정치] [65교회의권세]
제2부은혜의방편에관한교리 [66은혜의방편개요] [67은혜의방편으로서의말씀] [68성례개요] [69기독교세례] [60성찬]
종말론 [71서론]
제1부개인적종말론 [72육체적죽음] [73영혼의불멸성] [74중간상태]
제2부일반적종말론 [75그리스도의재림] [76천년왕국에관한견해들] [77죽은자의부활] [78최후의심판] [79최후의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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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시사자료]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1-11-11 19:08
홈페이지 http://www.esesang91.com
분 류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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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종말 이해의 토대
성경적 종말 이해의 토대
 
자료출처 http://www.kscoramdeo.com/
이번에 인터콥 단체가 한국 교회 앞에 한 고백은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쉽지 않은 결정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현재의 모습과 앎의 영역을 끊임없이 성경을 근거로 하여 변화시켜가는 노력을 해야 하며, 우리의 생각을 날마다 성경에 비추어 새롭게 해나가고 비성경적인 영역을 수술하듯이 변화 시켜가야 한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너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길 바라며, 본인은 인터콥 사역자들이 용감하다고 생각한다. 용감한 선교,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내가 봤을 땐 그리스도인다운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중세말기에 종교적 열심이 있었고, 카톨릭 교회의 가르침 대로 행동했지만, 그러나 비성서적인 것이 많았다. 선교사를 제대로 도우려면 우선 한국교회가 바로 서야 하고, 말씀 앞에서 교회가 자기개혁을 추구해야 한다. 교회가 성경적이지 않는 것이 선교를 방해하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당분간 침묵해야 하고,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점검하고 자기를 변화시키는데 노력해야 한다. 억울해도 한동안은 참고 들어야 하고, 어떤 일이 있어도 주님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Sola Scriptural(오직 성경)이 원칙이다. 최종적 권위는 성경에서 오며, 주께서는 성경으로 회복하는 길을 주셨다. 성경을 선별적으로 믿는 부류는 의미는 믿지만 사실로 믿지 않는 부류이다. 그와 반대로 성경을 믿는 것 외에, 성경에 다른 것을 더하는 경우도 있다. 조금 상대적이지만 중요하다고 여기고 덧붙이는 시도이다. 사도행전 16장에 성령이 바울이 아시아에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부분에서 말씀에서 나타나는 마케도니아 사람의 복식을 통해 많은 사람들은 그 사람을 알렉산더로 추론하는데, 이러한 추론은 믿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즉, 성경에 다른 것을 더하면 절대로 안된다. 처음엔 해석이라고 하다가 나중엔 덧붙인 것으로 성경을 해석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성경만 믿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계시를 믿는 경우도 있는데, 즉, 교주의 계시를 통해 믿는 몰몬교와 외경과 교회 전통을 통해 믿는 카톨릭의 경우다.



이와 같이 성경의 일부만 믿는 경우와 성경에 다른 것을 더하는 경우를 이단이라 한다.



마태복음 24장을 중심으로 강의하고자 하며, 이 본문 말씀에서는 “종말”의 모습을 그리고 있고 이를 대하는 기독교인들의 태도에 대해 바라볼 수 있다.



마태복음 24장 1절을 보면 유대인들은 ‘성전중심’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2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생각을 깨면서 성전은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아니하고 다 무너뜨려지리라’라며 철저히 성전이 무너질 것을 말하고 있다.


성전중심의 신앙생활을 한 유대인들에게 그것은 충격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지만 하나님에게 있어 성전은 결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십자가가 가져올 놀라운 변화 때문이었다. 십자가 이후에는 돌로 된 성전이 없다.


예루살렘에 현재는 모스크가 있다. 이슬람의 성지 중 하나인데 사람들이 이것을 끝까지 내놓지 않으려고 한다. 유대인들은 모스크를 허물고 성전을 세우려고 한다.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과 유대교를 믿는 사람들이 포기하지 않는 한 끝까지 싸울 것 같다. 그런데 정신나간 예수 믿는 사람들은 가서 모스크도 아니고 성전도 아니고 예배당을 세워야 한다고 세대주의자들은 말한다.



세대주의자들은 나중에 예루살렘에 예배당이 지어진다고 믿는다. 그것도 성경적인 예배당이 지어진다고 말한다. 또 그곳에서 실제로 제사를 지낸다고 설명한다. 구약시대는 십자가로 돌아갈 것을 바라면서 제사를 지내고, 십자가 이후에는 그 십자가 사건을 회고하는 제사를 드릴 것이라고 한다. 그런 이유는 구약시대를 문자적으로만 해석했기 때문이다.


세대주의자들은 성경을 그대로 다 믿지만 해석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지나치게 문자적으로 해석해서 나중에 예루살렘에 성전이 지어진다. 그렇기에 복음을 전도해서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가야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세대주의적인 것에서 온 것이다. 우리가 그런 것에 익숙하지 않느냐? 안 그렇다면 다행이다.



이러한 것을 ‘백투예루살렘’이라고 하며, 이는 하나님께서 성경의 역사를 의도적으로 유럽으로 돌리셨다가 미국으로, 또 일본을 통해 한국, 그리고 중국,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갈 것이라고 보는 것이며 그렇게 예루살렘에 주님이 임하시고 성전이 세워질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이런 것도 주님을 위해 열심이 있는 사람들만 생각하는 것이지 열심이 없는 사람들은 관심도 없다. 그런데 똑바로 정신 차려야 할 부분이다. 끝까지 돌로 된 성전은 없는 것이며 성전이 말하던 모든 것이 성취되고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완성하기 때문에 그렇다.



마태복음 24장 4절부터 14절까지는 십자가의 사건이 있으면서부터 세상 끝까지 되어질 일 전체 개요를 설명하고 있으며, 15절부터 21절 전반부까지는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으로 시작된 이야기, 21절 후반부부터 51절까지는 정말 세상 끝을 대해 말한다.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으면 실수하기 너무 쉽다.


십자가의 사건부터 세상 끝날까지 있을 일이 담겨있다는 4절부터 14절까지 ‘끝날’의 징조가 나타나는데, 첫째로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게 해라’라는 구절을 보듯 미혹하게 할 것들을 경고하고 있다. 현 시대에는 종말과 관련해 많은 사람들이 미혹케하고 또 미혹을 받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은 1세기부터 이런 말씀을 하셨다. 거의 모든 이단이 이 종말 문제와 관련돼 있으며, 더구나 다른 종교보다 기독교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심지어 성경의 이름으로 종말에 대해 미혹의 말을 많이 하고 있다


두 번째 ‘끝날’의 두 번째 징조로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라고 성경에서 말하고 있다. 이어지는 7절을 보면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난다는 전쟁과, 기근과 지진이 일어 날 것을 말하고 있다.


‘끝날’의 셋째 징조로 9절에서 보듯 ‘그때의 사람들이 환란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로 환란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환란은 6.25전쟁, 일제 강점기 등의 민족 전체의 고난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는 사람이 예수 믿는 것 때문에 받게 되는 것을 말한다.


마지막 ‘끝날’의 징조로 12절과 같이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라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은 곧 죄가 많아지고, 결국 죄가 많은 곳에 사랑이 없어지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 중 하나가 이러한 징조가 요즘들어 나타난다고 하니 종말이 오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 한다. 이것은 어느 한순간 종말이 오기 전에 발생하는 징조가 아니라 십자가 사건 이후에 ‘끝날’이 오는 그 순간까지 계속되어지는 징조이다. ‘끝날’이 언제 올지 모르는데 그 ‘끝날’이 언제인 줄 안다고 하는 것은 이단인 것이다.



여기서 밝힌 4가지의 징조는 나쁜 내용이지만, 딱 하나 ‘끝날’이 오기 전 좋은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14절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는 내용이다. 즉, 선교사가 된다는 것은 천국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교(국내외 모든 선교를 일컬음)하지 않는 일은 하나님의 일에 ‘반동’하는 것이나 다름 없으므로 복음전파에 힘써야 한다.



13절을 보면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라고 말한다. ‘끝날’이 오기까지의 징조를 견디며 천국 복음을 전하라는 말로 우리 기독교인들은 어렵게 살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기독교이다.



다음으로 ‘15절부터 21절 전반부까지는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에 관한 일인데, 멸망이 났을 때 해야 하는 행동들을 소개하는 17절, 18절, 19절, 20절에 등장하는 내용은 당시 유대인에 관련된 이야기로 현재 우리 삶에 적용해서는 안된다. 현재의 모습에 그대로 적용하려는 것 또한 경계해야 한다. 또 예수님께서는 15절부터 21절까지의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을 보여주며, 다시 한 번 제자들(유대인)에게 성전의 멸망이 중요치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이 세상 끝이 아니라는 것을 제자들에게 다시 한번 확신시켜 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21절 후반부부터 51절’까지는 세상의 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큰 환란이 있는데 세상 끝에 환란이 있지만 22절 말씀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를 통해 예수를 잘 믿는 사람들은 감할 것임을 밝히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끝날’을 준비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42절의 말씀처럼 어느 날에 주가 임할는지 알지 못하기에 늘 깨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면서, 언제라도 주를 맞을 준비를 하고, 날마다 종말을 준비하는 충성된 종으로, 사회의 청지기적 모습으로, 신실하게 자기 일을 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악한 종의 생각은 주께서 더디 오리라고 여기는 것이니, 잘못된 것을 깨닫고 고치는 마음을 가지고 늘 살아가야 하겠다.

2011년 10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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