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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9-10-09 (수)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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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방언, 과연 성경적인가 "하늘의 언어" vs "중지된 은사"
오늘날 방언, 과연 성경적인가 "하늘의 언어" vs "중지된 은사"


오늘날 방언, 과연 성경적인가 "하늘의 언어" vs "중지된 은사"
크리스찬투데이 기사입력: 2008/12/10 [19:31]  최종편집:

한국교회에 방언에 대한 논쟁이 다시 일고 있다. 방언이 하나님의 은사인가, 아닌가 하는 논쟁은 사실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지난해 김우현 감독이 쓴 <하늘의 언어>란 책이 선풍적 인기를 끌며 방언 열풍을 불고 왔다. 올해 들어와선 옥성호 씨가 <방언, 정말 하늘의 언어인가>란 책에서 '현대의 방언이 성경적 방언이 아니다'며 반박하고 나섰다. 이런 차에 최근 출간된 <방언은 고귀한 하늘의 언어>는 그 반발에 대해 다시 반발하고 있다. 논쟁이 본격적으로 불붙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이 책들의 주장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 <하늘의 언어>-김우현
"방언 회복은 이 시대 부흥 위한 하늘의 전략"
 
방언은 구원과 능력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깊은 것을 통달하시는 성령님과 더불어 기도하는 하늘보좌로부터 흘러나온 '하늘의 언어' 이다.

방언은 '영의 언어'이기 때문에 당연히 우리가 알 수 없는 언어이다. 우리가 알 수 없는 언어로 계속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성경이 그것을 권하기 때문이다. 방언은 특별히 '순종'을 배울 수 있는 축복의 은사다. 적어도 하루 30분 이상, 성령님을 의지하여 한 달 정도 깊은 방언에 순종하면 바람이 임의로 불 듯이 변화된 우리의 모습과 만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방언을 하기 위해선 정말이지 순전하고 집요한 순종과 매달림이 필요하다. 방언을 사모했던 많은 이들이 엄청나게 애를 썼지만 받지 못한 기억이 난다. 방언은 우리 영이 기도하는 것이기에 어떤 형태든지 이미 우리는 그것을 하고 있는 것이다. 깊은 기도와 찬양 가운데 우리 영은 그것을 너무나 표현하고 싶어했지만 지식의 부재로 하지 못한 것이다. 다만 그것을  인정하고 입을 영어서 시도를 하지 않았을 뿐이다.

기독교 출판사인 규장과 자매회사인 갓피풀닷컴의 직원 70여명이 근무 중 한꺼번에 방언을 받는 큰 사건이 일어났다. 이 상상치도 못한 놀라운 일은 2007년 4월6일 오후4시에 일어났다. 이들은 3시간이나 업무를 중단하고 방언기도에 전념했다.

갓피풀 닷컴의 조한상 사장은 내가 하는 방언을 그냥 따라하는 순간, 방언을 받았다. 은지라는 자매도 손기철 장로의 사역팀을 통해 '할렐루야'라는 말로 방언을 했다. 집회를 인도하면서 많은 사람을 상대해야 할 때 '방언을 말하다'의 헬라어인 '랄레오 글로사' 중 '랄레오'라는 단어만으로 기도한 적도 있다. 예수원 출신의 한 형제는 '아버지'란 말을 간절히 반복적으로 구했는데, 방언이 터졌다고 한다.

방언은 성령께서 영으로 비밀을 기도하게 하시는 것이므로 사탄도 알아들을 수 없다. 방언을 통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것은 아버지 사랑이며 그 영광의 보좌이다. 방언은 그 사랑의 비밀을 하나님께 고하고 나누는 밀어이다. 사탄의 방해 없이 아버지의 심장으로 곧바로 가는 길이다. 방언은 성령님의 역사에서 가장 기초이며 놀라운 능력이다.

방언은 단지 하나의 은사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이 시대 주님이 여시려는 ‘하나님 나라의 본질’과 연결되어 있다. 방언은 무엇보다 방언을 하는 개인의 덕을 세우고 영적으로 충전시켜주며, 나아가 교회를 섬기고 새롭게 하는 데 유익하다. 방언은 또 사회와 각자의 삶의 영역에서 주님의 권세와 능력으로 살도록 한다. 하나님의 영광과 사랑의 보좌 가운데 나아가기 위해, 우리 영혼이 더욱 충만해지고 세워지려는 데 방언의 목적이 있다. 

따라서 아직 방언을 받지 못한 이는 받기를 소원하고, 이미 받은 사람은 날마다 방언으로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비밀을 발견하고 체험해야 한다. 방언의 회복이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부흥을 위한 '하늘의 전략' 이다.

▲ <방언, 정말 하늘의 언어인가?>-옥성호

"배워서 할 수 있는 것이 성령의 은사인가"
 
<하늘의 언어>를 읽은 후 너무도 큰 충격을 받았다. 주변에서 수도 없이 방언하는 사람들을 보았지만 사태가 그토록 심각하다는 것을 그때 비로소 생생하게 알았다. 연이어 손기철 장로의 <성령님 고맙습니다>와 손 장로가 멘토로 삼는다는 마헤쉬 챠브다의 <방언체험>을 비롯해 여러 권의 번역된 방언 관련 책들을 읽으면서 굳이 <하늘의 언어>에 실린 내용이 독특한 것이 아니라 방언을 중요하게 여기는 분들에게 있어서 ‘일반적인 얘기 수준’이라는 점을 깨닫고 더 충격을 받았다.

수많은 방언 책들을 보면, 고린도전서 14장 2절을 중심으로 한 서너 개의 구절을 장식용으로 붙이고 나머지는 세상에서 듣고 보도 못한 얘기들로 채워놓았다.

방언이 등장한 최초의 성경은 사도행전이 아니라 고린도전서 이다. 게다가 최초로 등장한 방언은 권장할 대상으로서의 은사가 아니아 조심하고 선별해야 할 대상의 은사로 소개됐다. 고린도전서 14장 22절은 방언이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유일한 성경구절일 뿐만 아니라 방언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기도 하다.

'성령의 기적적인 은사'는 오늘날 중지되었다. 압언과 예언, 지식이란 세 가지 은사를 완성된 성경이 없었던 초대교회 시절에 하나님의 계시를 전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시가 성경을 통해 완성되자 사라졌다. 따라서 목적을 완수한 방언은 그쳤다. 

고린도교회 안에 있었던 방언은 오늘날 교회 안에서 유행하고 있는 방언이 아니다. 고린도전서 14장을 통해, 우리는 바른 방언이 반드시 통역될 수 있으며 개인의 유익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계시의 은사로 사용됨을 분명히 볼 수 있다. 하지만 오늘 우리 주변의 방언은 언어가 아니기에 통역될 수 없으며 공동체를 위해 사용하지 않고 철저히 개인의 경건생활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방언에 대한 가장 권위있는 연구를 수행한 킬달 박사는 통역의 신빙성을 확인하기 위해 한 방언을 녹음한 후, 통역 은사를 받았다는 7명에게 각기 틀어주고 통역을 요청했다. 그 결과 일곱 가지의 통역 중 비슷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킬발 박사는 '오늘날의 방언은 학습된 현상이다. 방언을 하는데 필요한 심리적 조건이 갖추어진 사람은 누구나 쉽게 배워서 할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오늘날의 방언은 성경적 방언이 아니다. 오늘날의 방언은 학습과 훈련으로 습득 가능하다. 은사는 하나님이 당신의 뜻에 따라 주시는 선물이다. 은사는 우리가 달라고 조른다고 해서 얻을 수 잇는 것이 아니다. 선물인 은사를 달라고 집단으로 모여 떼쓰는 것이 믿음이라고 할 수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달라고 떼쓰고 조르는 과정을 통해 얼마든지 방언이 학습되고 훈련될 수 있다는 점이다. '주여, 주여' 또는 '할렐루야, 할렐루야' 등의 간단한 발음을 반복해 말하면 누구라도 혀가 꼬이게 되고, 곧이어 발음은 '랄랄랄, 랄랄랄'로 바뀌면서 유창한 방언을 할 수 있게 된다. 오늘날 '쪽집게' 방언 전문가들이 등장해 전국을 돌면서 사람들이 방언을 하도록 유도하는 일을 직업적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이 방언을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인양 말하면서 보급하는 그 어떤 움직임도 중지되어야 한다.

오늘날의 방언은 기독교 밖에 더 많이 있다. 오늘날의 방언은 하나님께서 성령강림의 놀라운 역사적 표적으로 사용하셨던 오순절 방언이 아니다. 우리 주변의 흔하디 흔한 이 방언은 어디에나 언제나 있었던 소리이다. 약 2500년 전의 그리스 플라톤의 기록에서부터 발견되는 방언은 그리스 시절 각종 신전에서 사제들이 돈을 받고 알려주는 신비한 예언의 통로로 사용됐다. 또 오늘날에는 북극의 에스키모들의 종교의식에서부터 히말라야 티벳의 사원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 <방언은 고귀한 하늘의 언어>-김동수

"하나님께 영으로 기도하는 신비의 언어"
 
옥성호씨가 저술한 <방언, 정말 하늘의 언어인가?>의 주장은 이와 같다. △누가는 사도행전을 쓰기 전에 고린도전서를 읽었다. △오순절에 성령이 임한 것은 사도들에게 만이었다. △방언은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 위한 표적이다. △바울이 주장한 방언은 외국어였다. △방언 통역이 있다는 것은 방언은 실제 언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폐품을 쓰지 않는다. 방언은 이방 신전에서 쓰던 폐품이었다.

이는 잘못된 주장이다. 누가가 고린도전서를 읽고 사도행전을 썼다는 말은 전혀 증명되지 않은 상상이다. 사도행전 내러티브를 보면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120명이 계속 그곳에 있다가 오순절에 성령을 받았음이 분명하다. 이들 중 어떤 사람도 그곳을 떠났다는 기록이 없다.  방언이 믿지 않는 유대인들만을 위한 표적이라는 논증은 성경 구절을 이리저리 꿰어 맞추어 결론을 이끌어 낸 논리 전개이다. 방언이 실제 외국어였다는 것은 고린도전서 14장 2절의 '알아듣는 자가 없고'라는 말을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다. 오히려 실제 외국어였다면 어떤 경우에는 그 언어를 아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통역이 필요 없게 된다. 방언이 이방 신전에서 쓰던 폐품이었다는 말은 성경과 그 배경의 기본을 전혀 모르고 주장하는 것이다. 만약 이 주장이 옳다면 구약의 제사·계명들이 고대 근동 사회에서 행해지고 있는 것과 유사한 것이 많은데, 구약에서 하나님은 상당한 정도로 폐품을 쓰신 것이 된다. 최근 방언이 신약 성서 이전에도 있었는가 하는 문제를 가지고 유대교와 헬라 문헌을 광범위하게 연구한 호벤덴(G. Hovenden)에 의하면 신약의 방언과 같은 것은 이전의 그 어느 문서에도 확인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 기독교 이전에 신탁이라는 형태의 광범위한 영적 현상이 있었으나 기도로서의 방언은 바울이 처음으로 말한 것이다.

또 이 책의 저자는 고린도전서 14장 22절이 방언을 해석하는 열쇠가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장의 형식으로만 판별해서 그것이 유일한 방언에 대한 정의 구절이기 때문에 그것을 따라야 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거의 수긍이 가지 않는 주장이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생각하는 대로 바울의 방언에 대한 정의는 14장 2절에 나타나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 구절에 따르면 방언은 하나님께 영으로 기도하는 신비의 언어인 것이다.

신약성서 이전에 유대교나 헬라 문화에서 성경과 같은 종류의 방언이 존재했다는 주장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 당시 이방 신전에서 행해졌던 것은 신탁이지 방언이 아니었다. 신탁은 설명되는 언어이지, 방언처럼 말하는 사람이 모르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방언은 그 방향이 하나님께, 신탁은 사람에게 향해 있다. 기독교 이전에 신탁이라는 형태의 광범위한 영적 현상이 있었으나 기도로서의 방언은 바울이 처음으로 말한 것이다.

또한 '방언을 사모하라'는 가르침이 '은사는 하나님의 뜻대로 나누어준다'는 가르침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성령의 은사를 사모하라는 가르침에 대해선, 그것은 오히려 은사를 사모하는 것을 꾸짖는 바울의 레토릭(수사학적 표현)이라고 한다. 특히 고린도전서 14장 1절에 '신령한 것'을 사모하라고 할 때, 그것을 예언으로만 제한한다. 이것은 논리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바울이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고 말했을 때 이것이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듯이, 성령의 은사가 하나님의 주권으로 신자의 사모함으로 받는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상을 통해서 볼 때 ‘본래 방언은 사도시대에만 한정적으로 주어졌던 것이며, 방언은 모두 실제 외국어였고, 방언은 바울이 혐오했던 것이었기 때문에 현대 방언은 성서의 방언이 아니라’는 저자의 주장은 그 성서적, 논리적 근거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우형건 기자>

자료출처 http://www.christiantoday.us/14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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