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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9-05-29 (수)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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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모_폭포처럼 쏟아지는 참나의 눈부신 빛살을 보라!



폭포처럼 쏟아지는 참나의 눈부신 빛살을 보라!
by 봄날 송순현 | 2018-12-23 | 봄날인터뷰 | 0 comments

폭포처럼 쏟아지는 참나의 눈부신 빛살을 보라!
윤종모 신부에게서 듣는 영성 치유 

행복이나 사랑, 자유와 같은 말은 어쩐지 닳고닳은 듯한 느낌을 풍기지만, 그렇다고 일상어는 아니다. 오히려 생활 속에서 그런 말이 튀어나올 때, 우리는 그 생경함과 쑥스러움에 당황하곤 한다. 그러나 분명 그 단어들은 구체적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그것을 관념으로 유희하기보다는 현실 속에서 얻기를 바란다. 어쩌면 영성도 그런 것인지 모른다. 베일에 가려져 나와는 상관없는 무엇으로 여겨지나 알고 보면 우리 삶과 존재가 겨냥하는 목표고, 기준이며, 나아가 방법인 어떤 것.
이 대담은 바로 그 ‘어떤 것’의 실체를 느껴 보고자 마련된 것이다.

송순현_  신부님은 얼마나 행복하십니까?

윤종모_  행복하려고 노력하지요. (웃음)

송순현_  영성 치유가로 활동하고 계신데, 영성하고 행복은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윤종모_  행복의 필수 조건이 영성이라고 할까요. 영성을 강조하는 게 곧 행복해지자는 내용 에 다름 아니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행복, 혹은 절정을 경험하길 원하는데, 보통은 세속적인 것을 통해 얻으려 하잖아요. 물질이라거나 마약이나 섹스나 뭐 그런 거요. 하지만 그런 요소들은 정신을 파괴시키고 망가뜨리는 경향이 있지요. 반면 영성은 같은 행복이라 해도 정신적인 면과 상관이 있고요.

송순현_  그렇다면 영성 치유란 정신적으로 불행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이해 해도 되겠습니까? 신부님께서 치유하고 있는 대상, 말하자면 병든 영성은 어떠한 특징을 보이는 지, 그 얘기를 들으면 이해가 빠르겠군요.

 

영성이란 신을 닮은 궁극의 마음

성공회 신부이자 영성 치유가로 활동하는 윤종모 님은 연세대와 캐나다 토론토에서 신학 및 상담학을 공부, 귀국하여 성공회대, 연세대, 서울신학대 상담대학원 등에서 영성 치유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KBS 제2라디오 ‘밤을 잊은 그대에게’ 및 한국여성의 전화 프로그램에 참여해 지속적인 상담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주요저서로 『적당한 열등감은 필요하다』 등이 있다.

윤종모_  심리치유에서는 인간이 불행과 고통을 느끼는 상황을 세 가지로 구분해요. 첫째가 환경장애죠. 예를 들어 실직을 했다든지, 남편이 외도하고 술만 먹는다든지, 신체에 장애가 있다든지 하는. 그 다음은 정서장애를 포함한 심리장애예요. 불안증, 신경증, 우울증 등이 그것이죠. 나머지 하나가 영성장애인데 이를테면 이런 거예요. 종교인이나 수행인이 아니어도 사람이 살면서 한번쯤은 삶의 의미를 묻게 되잖아요. 내가 왜 사는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이런 걸 생각하게 되고. 이것이 바로 영성이 있기에 나타나는 질문들이고, 또 영성자체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해답은 인간이 내려줄 수가 없어요. 환경장애나 심리장애는 수평적인 문제여서 인간의 힘으로 해결 가능하지만, 영성은 수직적인 문제여서 인간을 초월한 존재와의 만남, 접촉이 있을 때만 해결될 수 있거든요. 여기서 초월적인 존재라 함은 하나님, 신, 깨달음 등으로 표현되는 것이라 보면 됩니다. 그러니까 영성치유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부분에 대한 치유이기 때문에 사실 모든 사람에게 다 필요한 것이죠.

송순현_  그렇군요. 하지만 영성이라는 말 자체의 개념이 쉽지 않으니, 우선 그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게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윤종모_  영성이라는 건 인간의 가장 깊숙한 내면에 있는 어떤 것이라고 봐요. 석가가 그랬죠. 내면을 들여다봐라, 거기에 부처가 있다고. 또 예수는 마음속에 천국이 있다했고요. 이런 표현이 다 영성을 얘기한 게 아닌가싶어요. 해롤드 쿠쉬너Harold Kushner라는 사람이 『왜 선한 사람에게 불행이 오는가』란 책을 썼는데 거기에서 영성에 대한 재미난 해석을 하더라고요. 창세기를 보면 조물주가 새, 파충류, 어류, 포유류를 창조한 후 잠시 쉬었다가 마지막으로 사람을 창조하는 내용이 나오거든요. 그때 조물주가 한말이 “자 이제 우리를 닮은 인간을 만들자”였는데, 저자는 왜 조물주가 ‘나’라고 안하고 ‘우리]’라 했을까 의문을 제기하면서 이렇게 답합니다. 인간이 먹고 마시고 배설하는 건 동물과 똑같지만 영적으로는 신을 닮은 특수한 존재이기에, 조물주가 동물들을 보면서 ‘육체는 너희를 닮고 영적으로는 나를 닮은 인간을 만들자’고 해서 우리라는 복수형이 나오게 된 거라고요. 진위여부를 떠나서 저는 이게 일리 있는 말이라고 봅니다. 어쨌거나 영성은 동물과 다른 수준의 고차적인 마음을 뜻하니까요. 자아초월심리학으로 유명한 켄 윌버Ken Wilber는 9가지로 인간의 마음을 구분하지요. 제일 아래쪽에 있는 것이 신체적, 감각적인 수준의 마음이라면, 제일 높은데 있는 것은 궁극적인 마음이죠. 결국은 영성이 그 높은 차원의 정신이나 마음이 아닐까요.

송순현_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신을 닮은 영성이 있으므로 영성의 치유 또한 모두에게 필 요한 과정이다, 그 말씀이시군요. 그러면 영성치유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 실제 방법에 대해 말씀해 주시지요.

윤종모_  대학에서 영성치유 과목을 강의하면서 이론공부도 물론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무엇보다도 실습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제가 주로 활용하는 방식은 집단 심리치료에 명상을 결합한 거예요. 아무래도 치유를 목적으로 할 때는 혼자 하는 것 보다 여럿이 함께하는 방식이 좋거든요. 처음에는 사람들이 명상에 몰입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렇게 해서 마음이 고요해지면 문제가 무엇인지 드러나게 되는데, 그때 적절한 조언을 하기도 하고 또 문제 자체를 들여다보게도 하지요. 그럼으로써 자기 내부에 있는 더 높은 자아를 발견하도록 만들고요. 아싸지올리Assagioli라는 사람이 정신종합요법이란 걸 소개했는데, 그 내용이 알고 보니 영성 치유법이더라고요. 아픔과 상처, 실존적인공허감, 의미상실 등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더 깊은 차원으로 들어가 현재의 자아가 아닌 더 고차원적인 자아를 만나게 하는 건데, 그 고차원적인 자아라는 게 말하자면 칼 융Carl Gustav Jung이 말한 참자아true self 같은 거거든요. 그처럼 참되고 커다란 존재, 정신세계와 만나면 작은 것들, 이를테면 상처나 분노나 미움 같은 것들이 밀려 나면서 시원해짐을 느끼죠. 이게 바로 영적치유의 과정입니다. 다시 말해 영성치유라는 것은 그 대상을 영적으로 성장시켜 치유하는 것이죠. 영적 성장이 이루어지면 세계를 대하는 태도와 가치관이 바뀌고 그러면 치유는 저절로 되니까요. 물론 누구에게나 효과가 동일하게 나타나는 건 아닙니다. 마음이 갈급한 사람일수록, 그리고 중년 이상의 사람들에게 효과가 크게 나타나죠. 칼 융도 그랬어요. 자기가 치유한 환자들 가운데 중년층은 영성의 문제로 고민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고요.

송순현_  그런데 영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의 의미가 정확히 무엇인지요. 이미 온전한 영성을 지니고 있는데 그게 깨어나지 못해서 진정한 자아가 빛을 발하지 못하니까 그걸 깨어나게 해야 한다는 것 인가요, 아니면 말 그대로 영성이 자라난다는 것인가요?

윤종모_  자라난다기보다는 때를 닦는다고 해야 맞겠죠. 인간의 마음속에는 우주적인 정신, 신의 형상을 한 영성이 있다는 게 인간을 이해하는 가장 큰 전제거든요. 하지만 세상이 진공관이 아닌 이상 살면서 세속적인 가치관에 물들게 되고, 또 그 과정에서 물질주의나 성공 등에 집착하게 되므로 영성에 때가 끼는 겁니다. 그러니까 본래의 자기 모습을 찾아가는 것, 그게 바로 영적인 성숙인 것이죠.

 

영성치유, ‘참나’로 돌아가는 여정
송순현_  아까 치유 방법으로 심리치료와 명상을 결합한다고 말하셨는데, 명상은 어떻게 유도하시나요?

윤종모_  보통 명상이 그렇듯이 심호흡부터 시작합니다. 정신을 집중하기 위한 거죠. 그렇게 숨이 깊어지고 고요해지면 자기문제를 바라보게 해요. 가장 고통스러운 것, 집중된 에너지의 흐르는 방향을 객관화시켜 본질을 바라보게 하는 거죠. 그런데 그 상태에서 그냥 끝내면 정리가 안 됩니다. 그래서 저는 명상 중에 자기가 새롭게 느낀 것, 깨달은 것, 마음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눠요. 이렇게 집단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객관화하고 나누다보면 훨씬 이야기가 풍부해지고 또 건강한 방향으로 정리가 되죠.

송순현_  문제의 본질을 바라보게 한다고 하셨는데, 그게 쉽게 되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윤종모_  현재의 자아라는 틀 안에서는 쉽지 않죠. 하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인간의 욕 구중에 초욕구라는게 있어요. 존재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초월을 경험하고자 하는 건데, 이런 욕구야 말로 인간의 내면에 초월적인 무엇, 즉 신성이나 영성이 있다는 증거거든요. 자기 안에 그런 게 있다는 걸 일단 발견하게 되면 일종의 깨달음의 상태가 되지요. 그리고 그때 절정을 경험합니다. 사람은 보통 큰 감동을 받았을 때와 깨달음을 얻었을 때 궁극과 절정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 순간 모든 문제들이 더 이상 문제로 느껴지지 않게 돼요. 부어 스타인Boorstein이라는 정신과 의사가 있는데 그가 말하길 심리치료로는 치료되지 않는 것이 명상으로 치유될 수도 있다고 했어요. 그러면서 명상이나 수련을 통해 얻어야 할 것은 몇 가지 초능력이 아니라 좀 더 맑고 깊은 차원으로 변화하는 것, 무한한 사랑과 자비심을 갖는 것, 나와 타자간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라 했죠. 이게 바로 영성치유가 아닐까 싶은데요.

송순현_  좀 더 구체적으로 치유과정을 들었으면 하는데요.

윤종모_  심리학자들은 흔히 인간의 욕구를 5단계로 얘기하는데 그 마지막이 자아실현의 욕구예요. 여기서 자아실현이라는 건 말하자면 궁극적인 마음의 획득을 의미하죠. 그런 상태에 놓이려면 무엇보다도 허구의 자기에 가려져 있는 본래의 자기를 볼 수 있도록 해야 하죠. 전에 상담했던 청년 중에 학력에 대한 열등감으로 가득한 사람이 하나 있었어요. 외모도 출중하고 말솜씨도 좋은데, 지방대학을 나왔다는 자괴감이 아주 강했지요.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그런 열등감은 그림자라고. 열등감이 무업니까? 주위의 가치관에 의해서 자기를 판단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남과 나는 다르다는 것에 생각의 초점을 맞추면 문제 될 게 없거든요. 키 큰사람이 있으면 작은 사람이 있고 노래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춤 잘 추는 사람이 있듯이 말예요. 하지만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데서 비영성적인 사고가 생기는 거죠. 링컨에 한 일화가 하나 있는데요, 그 사람이 키가 크잖아요. 어느 날 장관들이 키에 대해 갑론을박하고 있었어요. 큰 게 좋으니 작은 게 좋으니 하면서요. 그걸 듣고 있던 링컨이 “키라는 건 발바닥이 땅에 닿으면 족한 거 아니냐” 했대요. 자부심pride과 자존감self esteem은 좀 구분해서 봤으면 좋겠어요. 자부심은 남보다 자기가 우월하다고 생각하는데서 나오지만 자존감은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거거든요. 사실 잘난 것도 못난 것도 없는 거예요. 그 자체를 인정하는 것, 우월이니 열등이니 하는 그림자의 허상에서 벗어나도록 생각을 바꾸는 것, 그게 영성훈련이지요.

송순현_  일종의 자기 긍정훈련 같은 거네요?

윤종모_  그렇습니다. 비슷한 것으로 행동요법도 있죠.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이런 걸 잘한 다 하는 자기암시 같은 건데, 이것도 상당한 효과가 있어요. 시각화 요법이라 해서 평화롭고 고요한 순간을 떠올리는, 예를 들어 고향풍경이나 자연의 향기나 어머니의 얼굴 같은 것을 떠올려 보는 것도 사람을 숙연하게 하고 본성으로 돌아가게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거죠. 특히 죽음을 심각한 문제로 고뇌하는 사람들에게는 죽음 자체를 대상으로 한 명상을 권하죠. 깨달은 자들이 죽음에 대해 어떻게 얘기했는지 들려주고, 자기의 죽음을 바라보게 하기도하고, 이런 과정을 통해 죽음과 친해지고 또 카타르시스를 느끼죠. 아, 그런데 원장님께서는 혹시 〈벤허〉라는 영화를 보셨습니까?

송순현_  보긴 봤습니다만 하도 오래돼서…. 그래도 전차 경주하는 장면이나 노예선 장면 등 은 기억에 남는군요.

윤종모_  제가 왜 벤허 얘기를 꺼냈냐 하면 그 영화에 영성치유의 전형이 나오거든요. 벤허가 나중에 복수를 하고 나서는 고백하기를 “쇠로 된 칼은 손에서 놓았지만 보이지 않는 칼은 여전히 들고 있다.”고 해요. 복수를 했으되 마음은 더 무겁고 허망한 거죠. 그러던 어느 날 벤허가 예루살렘 거리에서 십자가 지고 가는 남자, 즉 예수를 보게 되죠. 가만 보니 옛날에 자기가 노예로 팔려갈 때 사막에서 물을 준 그 청년인거예요. 벤허는 자기한테 어질게 대해준 청년이 왜 흉악범으로 처형당하는가, 궁금한 마음에 그의 뒤를 따라갑니다. 그리고는 로마병사들이 그의 손발에 못 박는 광경을 목격하죠. 그때 예수가 이렇게 말합니다. 저사람 들은 자기들이 하고 있는 일을 모른다, 그러니 저들을 용서해 달라고요. 그 청년의 말에 충격을 받은 벤허는 자기가 놓지 못하고 있던 보이지 않는 칼자루가 비로소 스르르 빠져나가는 걸 느낍니다. 바로 그때 문둥병에 걸려 있던 벤허의 어머니와 동생의 병이 낫고요. 이것은 치유에 대한 신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죠. 감동을 받아서 집착하고 있던 것을 놓았을 때 치유가 일어난다는 거예요. 작가가 어떻게 벤허를 쓰게 됐는지 아십니까? 성경의 그 대목에서 감동을 받은 거예요. 무한한 자비와 사랑이야말로 모든 자를 고통에서 해방시킬 영성치유의 방편임을 안 거죠.

 

그림자에서 벗어나면 기적이 찾아온다
송순현_  그런데 우리가 깨달음의 상태가 되기 힘든 게 ‘에고ego(자아)’ 때문 아닙니까. 말하자면 영성을 가로막고 있는 게 에고라고 할 수 있는데 영성치유가로서 에고를 무어라 정의하시는지요?

윤종모_  에고엔 자기집착의 성향을 나타내는 에고도 있고, 이성적인 작용을 하는 에고도 있고 그렇죠. 칼 융은 참자아를 에고와 대비시켜 말하기도 했고요. 어찌됐건 자기에 대한 집착은 영성치유에서 버려야 할 것으로 보죠. 불교에서도 그러잖아요. 마음을 비우라고요. 나한테 집착하는 한 영성의 특성은 살아나기 어렵죠. 저 역시 치유시간에 사람들한테 그럽니다. 흘러가게 하라고, 그냥 놓아버리라고요.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과 고통이란 대부분 자기중심에서 비롯된 무거운 짐과 같거든요.

송순현_  놓아버리려 한다고 쉽게 놓아 지나요? 그게 잘 안 되니까 문제인거 아닌가요?

윤종모_  4년 전 연세사회교육원의 상담과정 중에 영성치유에 관한 강의를 한 적이 있어요. 그때 제가 수강생들에게 삶에서 나타나는 고통을 물처럼 흘러가게 하라, 저절로 흘러가게 놓아두라고 자주 강조했는데,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한 부인이 말하길 머리로는 받아들일 수 있는데 실제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저는 될 때까지 꾸준히 생각하고 실천하고 노력하라고 했죠. 고통 없이는 영적인 성장도 없으니까요. 그렇게 1년쯤 지났을까, 그 부인이 어느 날 이러더라고요. 식사 후 커피를 마시는데 갑자기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자비로워지는 걸 느꼈다, 왜 이런 현상이 갑자기 찾아온 것이냐고. 그래서 제가 그랬죠. 그게 갑자기 일어난 게 아니라 오랫동안 스스로 그렇게 되기를 갈구하고 노력한 결과로 일어난 거라고요. 영성치유란 바로 이런 거예요. 일 더하기 일은 이라는 수학공식이나 이렇게 하면 이렇게 된다는 심 리치료 같지가 않아요. 한마디로 법칙이 없는 거죠. 그 사람의 갈구 정도에 따라 다르고, 경험이나 가치관, 성격에 따라서 다 다르거든요. 다만 위기를 경험한 사람이나, 삶의 에너지를 외부가 아닌 내면으로 투사하는 사람의 변화 가능성이 더 큰 건 있습니다. 또 중년 이전에는 돈이니 결혼이니 출세니 성공이니 하는 것들에 얽매이게 되므로, 아무래도 중년 이후에 존재론적인 의문이 싹트면서 영성에 대한 관심도 증가하게 되는 경향이 있죠.

송순현_  사회생활을 하려면 에너지의 외적 투사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개개인이 안고 있는 사회적인 역할도 중요하니까요. 그런 점에서 저는 영성을 추구하는 것과 사회적인 활동의 조화를 이루는 게 큰 과제라고 보는데요.

윤종모_  예를 들어 전문 수련인이나 스님 같은 분들, 다시 말해 출가한 이들의 경우 영성과 깨달음만 추구하는 것이 문제될 게 없지만 일반 생활인들은 또 다르지요. 출가라는 게 사실은 기세 출가, 즉 세상을 버리고 홀로 가는 것이거든요. 그러니 출가하지 않은 보통사람들은 생활 속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거죠. 스트레스 클리닉이나 5분 명상, 이런 게 다 그 방법들인데, 아침저녁으로 5분씩만 투자해도 삶이 엄청 달라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저는 사찰이나 특정 수련원에서 며칠씩 운용하는 프로그램에 참가해 보는 것도 권유해요. 어떤 분들은 절에서 고작 며칠 명상하고 가는 게 무슨 소용이냐고 하는데 제 생각은 달라요. 다만 일주일, 열흘이라도 속세에 거리를 두고 명상의 태도를 배우거나 영적 성숙의 경험을 하면 훨씬 삶이 풍요로워지고 너그러워지거든요.

송순현_  꾸준한 실천으로 본인이 스스로 느끼고 체험하는 것의 중요성을 말하셨는데, 신부님 개인은 어떠셨습니까? 얼마 전에 입적하신 중광스님이 “괜히 왔다간다” 하셨다잖아요. 신부님께서는 언제 “내가 왜 왔다 가는 것일까”를 진지하게 고민하셨나요?

윤종모_  제가 상담을 전공한 게 30중반이에요. 캐나다 토론토에 가서 심리치료를 공부했는데 그 후 성공회대학교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또 여성단체 같은 곳에서 직접 상담을 하면서 나 자신이 많이 성장했지요. 명상을 접하게 된 건 심리치료를 공부한 한참 후의 일이고요. 캐나다 에드먼톤이라는 도시의 알버타 대학에서 겨울마다 세미나가 열렸는데, 겨울 방학을 이용해서 세미나에 참석하곤 했습니다. 그곳이 캐나다 최북단 도시인데다가 시기도 한겨울인 1월이라 엄청 추웠어요. 거기 갈 때마다 작은 수녀원에서 묵었는데, 수업 없는 날은 뭐하겠어요? 추워서 돌아다니지도 못하니 무료하고 해서 수녀원 안에 있는 명상방에 들락거리기 시작했죠. 2평 남짓한 아주 작은방이었는데 분위기가 그만 이었어요. 통유리로 눈 내리는 것도 보이고 가끔 순하게 생긴 짐승들이 왔다갔다하기도 하고. 그런데 거기 앉아 있자니 나도 모르게 내면을 들여다보게 되는 거예요. 차츰 그 맛을 알게 된 저는 책을 통해 본 명상 이론을 실험해 보기도하면서 길게는7, 8시간, 짧게는 한두 시간 앉아 있곤 했습니다. 그냥 이런저런 생각을 따라가기도 하고, 놓아보기도 하고, 또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도 하고, 상상 속에서 되살려 보기도 하고, 여행을 다니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초대해 보기도 하고, 그러다가는 또 마음을 텅 비우고 고요하게 내 모습만 바라보기도 하고 그랬죠. 그때 알았어요. 명상을 사과에 비유하자면, 명상이란 사과에 대해 설명하는 게 아니라 먹어보는 거라고요. 적당히 책 읽고 남 얘기 듣는 것으로는 변화를 체험할 수 없다는 얘기죠. 직접 해봐야 변화가 와요. 마음이 아주 편안하고 즐거워질 뿐 아니라 심리학적인 이론들이 아주 명쾌해지더라고요. 아주 미세한 마음의 움직임이 다 잡히는 거예요. 예를 들어 인간관계에서 사람들이 왜 상처를 입고 그게 어떻게 치유되는지 같은 것들이요. 그때 명상이 정말 필요하구나, 생각했죠. 그 후 저 개인적으로는 꾸준히 하고 있고, 제가 속해 있는 ‘한국기독교 상담심리치료학회’에서는 상당히 명상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막을 건너며 고정관념 깨기
송순현_  아주 귀한 체험을 하셨군요. 여덟 시간이나 명상 속에 잠겨 있었다니, 그게 쉬운 건 아닌데요. 그 이후 개인생활에 어떤 변화가 있던가요?

윤종모_  초월적인 경험을 하면 일단 마음의 눈이 열리는 것 같습니다. 왜 우리가 비행기를 타고 갈 때 난기류에 휩쓸리면 무섭잖아요. 놀라고 불안하고. 그런데 그런 경험을 하고 난 직후에는 비행기가 푹 가라앉아도 마음이 여유롭더라고요. 하지만 한국에 돌아와서 다시 일상에 휩쓸리다 보니 원점으로 돌아가더군요. 다시 얼굴 찡그리고 화내고 그렇게 되는 거죠. 결국 관건은 초월적인 경험을 일상에서 어떻게 체화하느냐 하는 점이에요. 한번 경험했다고 해서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란 힘들어요. 흄즈라는 신학자도 그랬죠. 생활인의 영성이란 사막과 일상을 시계추처럼 왔다갔다하는 거라고요. 여기서 사막이란 건 침묵이나 가공되지 않은 어떤 것, 순수한 내면 등을 의미하죠. 히브리말로 사막을 ‘미드바르’라고 하는데, 이게 ‘말씀을 듣는다’는 의미예요. 신의 말씀일 수도, 내면의 소리일 수도 있겠죠. 아무튼 흄즈의 말은 사막에서 그런 시간을 가지고 자기를 충전해야 사회에 나와서도 평상심을 유지하며 살수 있다는 뜻이겠죠. 생활 속 명상으로 늘 자기를 새롭게 해야 하는 것도 그래서일 거고요.

송순현_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영성 치유란 말이 생소한 감이 있어요. 국내외 현황은 어떤가요.

윤종모_  국내 상황만 보면 영성 치유라는 말을 쓰긴 하지만 아직 체계화되지는 않은 상황이 라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외국에서는 활성화 된 편이죠. 심리학자나 정신과 의사들도 많이 활용하고 있고요. 우리나라에서도 활성화되려는 추세에 있는 건 사실이에요. 종교계에서 치유 아카데미 같은 걸 운영하기도 하고 영성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하고요.

송순현_  흔히들 21세기를 영성의 시대라 하는데요, 영성 치유가 활성화되어서 각자의 영성 이 개화하면 전 인류적으로 영성이 꽃피어난다고 봐도 되는 건가요?

윤종모_  물질문명의 한계에 직면하다 보니 진정한 자아, 즉 궁극의 본성을 찾으려는 사람들 의 노력도 그만큼 활성화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현상은 매우 긍정적이지요. 개인의영성이 개화하면 사회적, 전 인류적으로도 성숙해지니까요. 단순하게 보더라도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들의 인간관계는 아주 평화롭거든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자기 자신이 평화롭고 인생을 관조적으로 대하게 되니까 남한테도 긍정적인 기운을 주게 되는 거죠. 그러니 사회 분위기가 그런 방향에서 조성되는 거고요.

송순현_  상처를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받지도 않겠죠?

윤종모_  아무래도 덜 받겠죠. 예를 들어 똑같은 이혼이라도 어떤 사람은 크게 상처받고 좌절하는데 또 어떤 사람은 그보다 덜합니다. 나라와 문화에 따라서, 보는 관점에 따라서 그에한 태도 또한 달라지는 거죠. 우리나라 사람들의 경우 이혼을 인생의 패배, 뭔가 잘못된 것으로 보는데, 서양 사람들은 헤어질 수도 있는 일로 보거든요.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영성은 모든 문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데서 시작합니다. 판단하지 말라, 이게 기본적인 태도예요. 말하자면 이혼은 이런 것이야, 이런 고정관념이 잘못되었다는 얘기죠. 어떤 사물이나 사건으로부터 한 발자국 떨어져서 내가 지금 이런 상태구나, 관조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여유가 생기고 너그러워져요. 반면 그 상태 안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건 그림자예요. 그림자 안에 갇혀 생각과 감정에 사로잡히는 데서 문제가 생기죠.

 

영성 지수에 따라 달라지는 사회
송순현_  그런 내용을 개인이 아닌 사회에 적용해서 테러 같은 폭력사건을 판단해 보면 어떨 까요. 9∙11 미국 테러사건 같은 것을 영성적이지 못한 사회에서 파생된 문제로 봐도 되나요? 또 그에 대한 미국의 반응도 영성적이라는 생각은 과히 들지 않는데….


“자기 안에 있는 영성을 만나는 초월적인 경험을 하게 되면 마음의 눈이 열리는 것 같아요. 그래서 불안과 공포가 없어지고 여유와 너그러움이 생기죠. 하지만 일상에 휩쓸리다 보면 원점으로 돌아가기가 쉽습니다. 그러니 중요한 건 초월적인 경험을 일상에서 어떻게 체화하느냐 하는 거죠. 한번 경험이 근본적인 변화로 이어지는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생활 속 명상 등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윤종모_  불교든, 이슬람교든, 기독교든 다른 것을 수용하지 않고 배타적으로 자기 것만 주장 하는 근본주의는 어찌됐건 반영성적이라고 봅니다. 문제는 반영성적인 태도에서 폭력이 시작되면 계속 악순환 된다는 거예요. 그게 법칙이죠. 종교나 정치가 영성적이면 폭력 대신 상생의 방향에서 문제가 해결돼요. 물론 아무리 사회가 영성적이어도 정치에 따른 문제는 얼마간 존재할 겁니다. 정치의 속성상 기본적으로 이해관계나 권모술수에서 벗어나기 힘든 게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처럼 선과 악이 공존하는 게 인간사회 아닐까요? 영성으로 충만하다면 그게 곧 하늘나라일 테니 말예요.

송순현_  그래도 선과 악 사이에서 일종의 자정능력을 가지려면 영성이 필요하고 그만큼 의식적으로 영성 지수를 높여야 한다고 보는데요. 그런 점에서 영적 지도자라 할 수 있는 종교인들의 역할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현재 그들이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는 미지수지만요.

윤종모_  종교인은 분명 영적 지도자죠. 하지만 현재 종교 지도자들의 역할이 과연 그러한지 에 대해 저 개인적으로는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종교인 중에서도 명상과 수련을 통해 자기성찰과 깨달음을 이룬 사람은 많지 않아요. 오히려 현재 종교는 자꾸 권위적, 교조적으로 되어가는 경향이 있죠. 그리하여 폐쇄적이고 독단적인 근본주의가 파생하는 거고요. 겉옷은 영적 지도자인데 내용은 고집스러운 사람에 불과한 거죠. 특히 한국 교회엔 그런 성향이다 다분히 많고요. 하지만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전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명상 속에서 얻은 깨달음이나 느낌에 비하면 자신이 이전에 집필한 방대한 신학 서적은 검불과 마찬가지라고. 또 중세시대의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신을 바깥에서 신을 찾지 말고 내면에서 찾아라, 외면에서 찾으면 잃어버릴 수 있지만 내면에서 찾으면 절대 잃어버릴 수가 없다고 했어요. 많은 교회들이 이런 정신을 회복하는 게 과제라고 봅니다. 그나마 90년대 들어서 세계 교회들이 영성과 치유 쪽으로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다행이지요.

송순현_  결국 영성이란 진선미眞善美, 즉 인간의 참된 본성을 발견하고 사랑을 베풀고 정 의를 실현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만약 영성 치유가인 신부님께서 미국의 대통령이었다면 어떻게 대응했을까요, 궁금한데요? (웃음)

윤종모_  제가 정치가가 아니라 정치의 복잡한 이면을 모르고 하는 얘기일지 모르지만, 일단 은 피해자들에게 충분히 애도를 표현하고 나서 그쪽 지도자들과 대화를 할 거 같아요. 너희의 아픔은 무어냐고 묻고, 우리의 아픔은 이거라고 말하기도하고, 또 어떻게 서로 상생하는 방향으로 나갈 것인지 논의도 하고요. 뭐든지 자기 입장만 생각할 때 문제가 생기는 거거든요. 그래서 처음엔 듣는 게 중요합니다. 상대방의 처지와 생각, 거기에 공감해 주는 거죠. 흔히 심리치료에서 정신분석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사실 정신분석은 이해하고 분석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치유는 잘 안 된다는 약점이 있어요. 말하자면 그건 테크닉인 거죠. 치유는 관계 속에서 일어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관계가 우선이고 테크닉은 그 다음이라는 거죠. 그러니 문제를 해결하는 첫째는 상대방의 입장을 공감해주고, 그 다음 무조건적으로 수용해 주는 겁니다. 세 번째는 전략과 전술이 배제된 진실성을 보여주는 거예요. 그러면 상대방이 신뢰와 친밀감을 갖게 되는데 이를 라뽀rapport(신뢰 혹은 친밀관계)라고 합니다. 치유란 이런 관계 속에서 가능한 것이지요. 국가 간에도 역시 라뽀가 먼저 형성되는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국의 이익과 이해는 일단 뒤로 미루어야겠지요.

송순현_ WHO(세계보건기구)가 건강의 척도를 제시하면서 영적인 건강Spiritual Health 개념을 추가한 사실이 있습니다. 기존에는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 건강을 기준으로 했는데 거기에 영적 건강 개념이 덧붙여진 것이지요. 이게 점차 영성이 중요시되고 있다는 증거긴 한데, 또 한편으로는 영성이 병든 사람이 많다는 의미도 되거든요. 실제로 우리나라 정신병원에 가보면 스스로를 빙의환자라 하는 이들이 그렇게 많다고 해요. 자기 영혼이 병들어 다른 영혼의 조종과 영향을 받는다고 믿는 거죠. 신부님께서는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시나요?

윤종모_  흔히 귀신 들린 사람이나 정신분열 환자의 경우 어릴 때 경험한 극단적인 상처나 아픔이 병으로 외화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증세는 근본적으로 치유하기가 참 어려워요. 다만 치유가와 환자사이에 라뽀가 형성되면 환자가 상담가의 말을 믿고 의지하고 지시로 따라하는 모습을 보이지요. 그렇다고 이걸 근본적인 치유로 보기는 힘듭니다. 그런 점에서 영성치유는 사후 책보다 사전예방을 중시합니다. 명상하고 수련하고 하는 건 병 들어서 하는 게 아니거든요. 어쩌면 이게 기존 치료와 다른 점이기도 하죠.

 

생의 ‘의미’를 물을 때 깨어나는 영성
송순현_  사전예방이 중요하다는 말에 참으로 공감합니다. 사람이나 사회나 이미 망가진 다음에는 회복이 어려우니까요. 그렇다면 전문가의 입장에서 어떤 계획이나 특별한 전략이 있을 것 같은데요.

윤종모_  현재 대학과 단체, 또 요청이 들어오면 소규모 그룹에서도 영성치유를 하고 있습니다만, 중요한 건 어떻게 중화할 것인가의 문제 같아요. 특히 제가 성직자다 보니 독자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여지가 그렇게 넓지 않거든요. 그래서 나중에 여건이 되면 ‘영성치유센터’나 ‘치유명상센터’ 같은 것을 세워 운영해 보고 싶습니다. 뭐 아직 구체화된 건 아니지만요.

송순현_  그러면 스스로 할 수 있는 간단한 치유 방법 같은 걸 소개해 주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윤종모_  지나친 신비주의나 사이비 종교가 아닌 건강한 방식의 수련은 다 치유와 맥이 통하니까요, 참선이든 명상이든 좋다고 봅니다. 외국 종합병원에서는 스트레스 클리닉이라 해서 명상하는 공간을 운영하기도 해요. 메사추세츠 대학교 종합병원만 해도 8주간 스트레스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도 그런 게 생긴다면 참여를 권장할 만하죠. 다음으로는 선각자들의 영성을 느낄 수 있는 책을 읽는다거나 음악을 듣는다거나 하는 것도 좋다고 봅니다. 또 자연 속에서 신비를 느끼고 깨닫는 것도 중요하고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모든 것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덜어내고 온전히 마음을 텅 비운채 고요히 머물러있는 경험을 하는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머리로가 아닌 가슴으로 진정한 평화를 느낄 수 있죠. 심리 치유 같은 이론도 공부할 수 있으면 하는 게 좋다고 봅니다. 명상수련과 결합되면 효과가 훨씬 커지거든요. 영성에서 지향하는 것 중 하나가 ‘전인성’인데, 이게 말하자면 흔히 들 말하는 아이큐, 이큐, 엠큐 등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것에 다름 아니에요. 그래서 영성 치유를 전인건강이라고 하기도하죠.

송순현_  오랜 동안 대담하시느라고 수고하셨는데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이 감동할 만한 얘 기를 들려주신다면요? 실제 경험도 좋고 들은 얘기도 좋고요.

윤종모_  그럼 빅터 프랭클이라는 사람의 얘기를 해볼까요? 이 사람이 유태인이어서 아우슈비츠에 수용된 적이 있어요. 거기서 남자 막사 끝 쪽에 기거했는데, 여자 막사와의 사이에 작은 공간이 있었나 봐요. 나무도 몇 그루 있고 새들도 가끔 울고 가는. 그런데 어느 날 부턴가 한 중년여성이 쉬는 시간마다 그리로 와서 미소를 짓고 있더래요. 남들은 그걸 보고 미쳤다고 했는데 정신과 의사인 프랭클이 보기에 그 미소는 미쳐서 흘리는 게 아니었대요. 너무 평화로워 보였던 거죠. 그래서 그 여인에게 직접 물어보니 그 여자가 말하길, 자신은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풍요롭게 살아서 지금껏 인생이 뭔지 몰랐는데 이곳에 와서 고생도하고 어려움을 겪다보니 인생이 뭔지 그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니 나는 운명의 신 에게 감사한다, 이러더래요. 그리고는 누구나 한번은 겪는 거니 죽음은 두렵지 않다고, 내일가스실에 간다 해도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즐긴다고, 죽을 준비가 되어있다고…. 나중에 프랭클은 이 경험을 토대로 의미요법이라는 것을 주장했어요. 어떤 상황, 사건에서 의미를 묻고 찾는 것이야말로 그 자체로 고귀한 정신의 표현이자, 치유의 과정이라는 것이죠. 저도 여기에 공감합니다. 생의 의미를 아는 것, 일상의 작은 부분에서 생에 대한 통찰력을 얻는 것이 바로 영성적인 깨달음에 다름 아니니까요. 그 여인의 태도는 그런 거잖아요. 너희가 내 육체를 짓밟을 수는 있지만, 고귀한 정신은 손댈 수 없다, 나는 온전한 평화를 누릴 수 있다. 이게 영성이 아니면 뭐겠습니까.

송순현_  마무리를 멋있게 장식해 주셨습니다. 그러고 보면 인간이 참으로 묘한 존재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나약하지만 또 강하기도 하고, 동물적인 본능에 사로잡히지만 신을 닮고 있기도 하고. 존재 자체가 신비로운 것 같아요.

윤종모_  그렇습니다. 스핑크스가 외디푸스에게 낸 수수께끼의 답이 인간인데, 어쩌면 인간이야말로 수수께끼 같은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누구나 영성을 갈고 닦아서 다른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존재가 되어야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는 게 또 인간이지요. 그러니 너무 큰 업적이나 성취를 바라기보다는 일상 속에서 그 과업을 풀면서 살아가는 태도를 가졌으면 합니다.

자료출처 https://bomnahl.mhjn.kr/폭포처럼-쏟아지는-참나의-눈부신-빛살을-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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