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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보기] [1유기성_영성일기] [1] [1] [1] [1] [1] [1] [1] [1] [1] [방언] [88언론자료]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10-30 (일) 08:13
분 류 1
ㆍ추천: 0  ㆍ조회: 19      
IP: 220.xxx.165
"예수를 바라보자"가 24시간 예수님을 바라보라는 뜻인가?
유기성 목사는 뉴스엔조이의 "유기성 목사 '영성 일기 운동' 비판적 읽기"기사에 대해 반박하면서
다음과 같이 영성일기의 정당성을 말했습니다. 


히 12:2에서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 라고 하였습니다. 
NIV 영성성경에서는 ‘예수를 바라보자’를 “Let us fix our eyes on Jesus”라고 변역하였습니다. 
그래서 24시간 예수님을 바라보자고 한 것입니다.

(자료출처 유기성 목사의 페이스북 타임라인 2016년 10월 29일
            https://www.facebook.com/pastor.yoo/posts/892325384237756)


 저는 이런 관점이 성경적 해석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존 브라운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
독자들께서 읽으시고 판단하시는 데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을 줄 압니다.


온전케 하시는 이로 번역된 단어는 내가 이해하는 바로는 ‘보상주시는 이’에 해당되는 말이다. 바울 사도는 때때로 올림픽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소재로 삼아서 설명한다. 그리고 본문에서 예수는 이에 달린 경주에서 최고의 영예를 얻은 분으로 이제는 결승점 가까이에서 경주자들의 심판자로 높은 보좌에 앉으셔서 승리자들에게 씌워 줄 월계관을 그의 손에 들고 계신 분으로 묘사된다. 그는 신자들에게 상 주시는 분이시다. 그는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말씀하신다(계 2:10). 또한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계 3:21)고 말씀하신다. 
그 뒤에 이어지는 말씀들은 본문에서 우리 주님에게 주어진 이들 두 칭호들에 대한 해설인 것으로 내게는 보인다. 그는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셨기 때문에” 신자의 지도자요 모본이시다. 또한 그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그렇게 하셨다. 인간 예수 그리스도는 여기 지상에 계셨을 때 신앙의 삶을 사셨다. 그는 “보이는 일시적인 것들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들을 바라보셨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이를 위하여 고통을 참으면 자신이 장차존귀하게 되고, 그의 백성의 구원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는 것을 믿으셨다. 그러므로 그는 “십자가를 참으셨다” 그는 참을성 있게 인내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시고, 이를 위해 모든 것을 견디셨다. “그가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리고 그는 “부그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셨다.” 즉 그는 자신이 당하시는 불명예를 개의치 않으사 의무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조금도 하시지 않았다. 그는 “비난이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으나” 불명예를 재난으로 간주하시지 않고 어떠한 재난도 “아버지께서 행하라고 그에게 주신 일을 완성하려는” 그의 결의를 흔들 수 없는 것으로 여기셨다. 우리의 지도자요 모본이신 그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그렇게 행동하셨다. 이 구절은 여러분이 ‘위하여’라는 전치사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는가에 따라 두 가지 다른 해석들이 가능하게 된다. 그 본래의 의미는 “대신에”이다. 그러나 이 용어는 종종 “때문에”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만일 우리가 이 용어를 첫번째 방식으로 이해한다면 그의미는,우리의 지도자요 모본이신 예수께서 십자가를 견터시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영감과 즐거움의 상태를 포기하시고 수치를 개의치 않으셨다는 것이 된다. 그는 하나님과 본체이시나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취하셨다. 이러한 경우에 우리의 모본으로 “예수를 바라보라”는 권면은 빌 2:5의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니 …”라는 내용과 거의 평행을 이룬다. 이러한 해석 방식에 대한 유일한 반대는, “그 앞에 있는”이란 형용문구가 우리 주님의 선재적 영광을 말한다고 이해한다는 것은 타당치 않고 그보다는 그 앞에 놓인 그의 중재적인 수고에 대한 영예로, 그 보상으로 그에게 제시된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for라는 전치사를 두 번째 방식으로 이해하여 '때문에'라는 의미로 간주한다면 그 의미는 예수께서 장차 받으시게 될 영광이다. 이 영광은 그에게 부과된 틀을 완성할 때 주어지는 것으로 그로 하여금 인내로써 의무를 수행하고 그 수행과 결부된 재난들을 견디시도록 힘을 준다. 이것이 또한 참된 고리고 성경적인 의미이다. 우리 주님은 그에게 주어진 다음과 같은 약속들을 믿으셨다. 즉 그는 자신이 “존귀하여져 매우 높게 되시리라는 것”, 그가 “그의 영혼이 괴로움을 느끼게 될 것이지만 이후에는 진정한 만족을 맛보시리라는 것”, “그의 영혼이 분리 된 상태에 내버려지지도 아니하며, 그의 몸이 색음을 당하지 않으리라는 것”, “하나님께서 그에게 생명의 길을 보여 주시리라는 것”을 믿으셨다. 그리고 이러한 것을 믿었기에 그는 “좌절하시지도 낙심하시지도 않았다.” 그는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실 수 있을 태까지 말할 수없는 어려움과 고통 가운데서 견디셨다. 우리는 후자의 해석 방식에 더 호감을 갖게 된다. 왜냐하면 이 해석방식은 사도 바울이 히브리인들에게 본문에서 부과하는 의무 자체의 모범으로서 예수를 제시해 주기 때문이다. 즉 이 해석은 하나님의 뜻을 행함으로써 우리가 결부될지도 모르는 모든 위험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신앙의 영향 아래서, 그 뜻을 행하는데 인내하신 분으로서 예수를 제시해 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이 “신자의 지도자 또는 모본”이라는 명칭에 대하여 사도가 부여한 설명이다. “온전케 하시는 이” 즉 신자에 대해 ‘상 주시는 이’이신 그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 다시 말해서 그는 최고의 영예와 권위의 상태로 올리우셨다.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세”가 그에게 주어졌고, 그러므로 그는 죽기까지 변함없이 신앙인들에게 풍성하게 상 주실 수 있다. 그리고 그가 영광스럽게 상을 받으셨다는 것은 또한 때가 되면 신앙인들도 상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만족스러운 증거이다.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그들 앞에 놓인 경주를 인내로써 달림에 있어서 그들의 지도자요 모본으로, 그들을 온전케 하시는 이요 상 주시는 이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습관적으로 이러한 특성들에 있어서 그에 환한 진리를 그들의 믿음의 성찰의 주제로 삼아야 한다. 이는 마치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말한 것과 같다. ‘구약 신자들의 수고와 고통 그리고 승리에 대한 기록은 어려움과 시련 가운데 처한 여러분에게 교훈·동기·격려의 원이 될 수 있고 또한 되어야 한다. 그러나 여러분의 주요, 구주인 예수의 비교할 수 없는 수고·고난·영광에 대한 기록은 교훈·동기 격려의 더 큰 원친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일하여 행하신 것, 그리고 그가 그들을 위하여 장차 행하실 것에 대한 확고한 신앙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모든 생자할 수 있는 어려움과 시험에 맞서서 인내하며 “그들 앞에 당한 경주”를 달리게 하는데 핀요 충분한 원이 된다. 만일 그들이 “피곤하고 낙심하게 된다면” 이는 그들이 “그를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그들이 맡겨진 의무를 게을리 한다면 이는 그들이 구주를 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주님에 대하여 그를 아는 지식은 얼마나 무한하게 중요한가! 우리의 모든 위로, 우리의 모든 거룩함은 이 지식을 얼마나 제대로 아느냐에 달려 있다. 이제 사도 바울과 더불어, 이 놀라운 지식을 위하여 다른 모든 것들은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도록 하자. 이 지식을 결여한 사람들로 무엇보다도 먼저 이 지식을 얻도록 하게 하자. “이 지식은 루비보다도 더 귀중하며, 우리가 탐내는 다른 모든 것들이 이것에 비교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 지혜를 구하라. 간절함으로 이 이해를 구하자. 주님을 아는 사람들로 그를 아는 일을 추구하도록 하자. 
이제 바울이 이렇게 말한 목적이 다음에 나오는 단락을 통하여 명백하게 제시된다. 이는 히브리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기독교에 대한 신앙고백으로 초래되는 고통의 상태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배교에 대한 유혹을 경계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그가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처음으로 생각해 바라고 제시한 것은 자기 백성의 구원을 수행하시되 인내로 복종한 하나님의 아들의 고난이다. 

…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는 사도 바울의 권면에는, 부주의한 독자가 흔히 가정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이 권면에 포함된 모든 것은 사도의 목적에기여하기 위하여, 즉 히브리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그들이 고난을 당함으로 말미암아 낙심하고 굴복하는 것을 저지하고자 언급되었다. 따라서 “…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를 다른 말로 한다면 다음과 같다. ‘하나님과 그의 관계, 여러분과 그의 관계를 기억하라. 그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며, 하나님이 사랑을 많이 받은 아들임을, 즉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의 품격이 나타나신바 된 분이심을 기억하라. 만일 그가 고난을 당하셨다면 너희 피조물들인 죄인들이 고통을 당하는 것을 의아하게 여기며 또는 너희가 고통을 당할 때 불평할 수 있겠는가? 그가 너희의 주시며, 교사이신 사실을 기억하라. 제자가 그의 선생처럼, 종들이 그의 주인처럼 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그의 모든 고통이 너희를 위한 것임을 기억하라. 그렇다면 너희는 그를 위하여 고통을 당하는 것을 기피할 것인가? 고통을 당하신 것뿐만 아니라 그가 고통 당하신일을 생각하란. 자기에 대하여 죄인들이 거역한 일을 견디신 분을 생각하라. 그의 고난이 얼마나 무수하고, 얼마나 다양하고, 얼마나 혹심하고, 복잡하며, 중단됨이 없으며, 얼마나 오래 계속되었는지를 생각하라. 그의 고난에 비교할 때 너희의 고난은 얼마나 보잘 것 없는가? 그다음 그가 고난당하신 것을 생각할 뿐만 아니라 그의 참으심을 생각하라. 그가 얼마나 인간들에게 온유하셨으며 하나님에 대하여 복종적이셨는가!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생각하고 너희 고통에 한편으로는 인간들을 향한 적의를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향한 불만을 생겨나게 하지 않도록 하라. 그리고 특별히 그가 이 모든 것을 견디셨다는 - 그가 이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견고하게 서서 대가가 어떠하든지 간에 너희를 구원하는 목적에 흔들림이 없으셨다는 - 생각이 너희를 분발시켜, 어떠한 고통도 참아서 그에 대한 너희의 소속감을 흔들지 못하게 하겠다는 단호한 결심을 낳게 하라. 그리고 모든 비난, 모욕, 상함이 오직 그의 얼굴을 부싯돌처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듯이 너희가 당한 상해가 더욱 왕성하게 그리스도적 복종의 모든 원리를 북돋우게 하라. 그가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셨다는 것, 그가 너희를 위하여 고난 받으신 것과 그가 너희를 위하여 고난 받으신 경위를 앎으로써, 또 너희가 그를 위하여 당해야 하는 고난을 그가 얼마나 훌륭하게 당연한 것으로 견디셨으며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심으로,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케 되는 대신에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도록 본을 제시하신 것을 알아서, 환난이 인내를, 인내가 연단을, 연단이 소망을 낳게 하라.’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의 의무에 대한 부분적 또는 전체적인 포기를 조성할, 히브리 그리스도들에 대한 상해의 영향을 저지하기 위하여 제시한 첫 번째 생각해야할 내용이 이처럼 강력하고 힘이 있는 것이었다. 
두 번째로 생각해야 할 일은 그들이 당해 왔던 고난이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고난처럼 혹심하지는, 그들이 앞으로 받게 될지 모르는 고난처럼 혹심하지는, 다른 말로 그리스도뿐만 아니라 전 시대의 많은 신앙고백자들이 받아왔던 고난처럼 혹심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자료출처 존브라운성경주석, 히브리서, 김창엽·함영옥 역(서울, 아가페출판사, 1988), 274-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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