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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보기] [1유기성_영성일기] [1] [1] [1] [1] [1] [1] [1] [1] [1] [방언] [88언론자료]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10-22 (수) 18:16
분 류 1
"읽기허용 레벨 3"
ㆍ추천: 9  ㆍ조회: 31      
IP: 183.xxx.45
유기성_영성일기_“주님으로부터 온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칼 융의 심리학과 영성" 

아래 글을 읽으면, 유기성 목사는 정말 성경에 충실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글 가운데에 나오듯이,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24 시간 주님을 바라보고 또 영성일기를 쓴다고 하면서,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것을 소홀히 하면 안됩니다."

24시간 주님을 바라보고, 영성일기를 쓰는 것 자체가 성경적일까요???
성경만으로 가야한다는 것이 아니라,
24시간 주님바라보고, 영성일기를 쓰는 것도 하고, 성경도 읽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대영성이 혼란을 일으키는 부분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온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유기성 2014-10-21 06:34

이따금 열심히 말씀을 전하는데, 제 심령은 오히려 공허해질 때가 있습니다. 말씀에서 은혜받았다는 말을 많이 듣지만 제 마음은 메마름으로 고통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그 때는 영락없이 제가 성경 말씀을 읽지 못하고 있을 때입니다. 말씀 전하는 시간은 많아질수록 정작 말씀을 읽는 시간은 적어집니다. 이 딜렘마를 극복하는 것이 제게 주어진 과제요 몸부림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성경말씀을 통하여 만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주님을 바라보는 비밀은 눈에 보이는 성경 말씀에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살아있는 말씀" (히 4:12)이라고 하였습니다. 
요한 사도는 “말씀이 육신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요 1:14)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가장 중요하고 가장 확실한 길이 말씀으로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때로 “하나님, 지금 말해 주세요”하고 기도할 때가 있으나,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읽으라고 하십니다. 
한번은 [기도 24365] 완주 감사예배 때, 개회 메시지를 전하게 되었는데, 메시지를 준비하던 중에 “범사에 감사하라” 하셨지만 북한과 사우디와 같이 극심하게 박해받는 교회에 대하여는 어떤 감사를 드려야 하나?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말씀을 통하여 박해받는 교회로 인하여도 감사할 이유를 깨우쳐 주셨습니다. 
마 5:11-12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주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이 신비스럽습니다. 
그러나 그 모두가 다 성경 말씀에 의하여 하시는 것입니다. 

성경 읽기를 소홀히 하고 주님의 인도만 구하면 영적으로 약해지고 미혹을 받게 됩니다. 
저는 목사가 되고도 열등감이 많았습니다. 인간적인 매력도 없고 말 재주도 없고, 카리스마도 없고, 공부를 많이 한 것도 아닙니다. 때때로 얼굴에 뭐가 많이 나는 것도 신경에 쓰였습니다. '나는 설교자로는 너무 부족해!' 하는 생각으로 힘들어 할 때, 성령님은 말씀을 통하여 제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고전 1: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성령님은 제 열등감의 뿌리는 저를 자랑하려는 마음 때문임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제게 필요한 것은 오직 주님께서 전하기 원하는 말씀을 정확히, 그리고 사람들이 알아듣기 쉽게 전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것만이면 충분하였습니다. 여기에 학력이나 인물이 무슨 상관이며 말 재주가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제가 할 일은 오직 말씀을 주시면 전하는 것이고 말씀을 주시지 않으면 가만있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깨닫고 제 마음에 평안이 왔습니다. 
그리고 또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일부러 악한 자 미련한 자 없는 자 천한 자 멸시받는 자를 택하여 쓰신다는 것입니다. 
고전 1: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그러니 너무나 감사한 것입니다. 자랑할 것이 많은데 자랑하지 않으려면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자랑할 것이 없으니 자랑하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쉽습니까? 

24 시간 주님을 바라보고 또 영성일기를 쓴다고 하면서,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것을 소홀히 하면 안됩니다. 아무리 주님을 바라보려 해도 영적으로 공허해지는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성경 말씀을 대하는 태도가 주님 대하는 태도여야 합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성경을 읽을 때, 교리체계를 세우려는 동기는 전혀 없었습니다. 그랬다면 성경이 이렇게 쓰여지지 않았고 교리서 처럼 씌였을 것입니다. 성경은 읽는 자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려는 목적으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볼 때, 주님과 교제하기 위하여 읽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을 읽음으로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지난 제자훈련 세미나 때 큰 은혜가 있었습니다. 한 교회에서는 교회 예산을 편성하여 주위 40교회 목회자들을 차례로 등록금을 주어 세미나에 보내주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10명이 오셨습니다. 그렇게 참석한 목사님 한 분은 매일 울고 또 우셨다고 고백하셨습니다. 
한 조에 편성된 네 분의 사모님들은 세마나 둘째날 평소에 가시같이만 여겼던 가족들, 남편 아이들 교인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전화, 사랑을 고백하는 전화를 하셨다고 했습니다. 같은 교회에서 오신 부목사님 두 분이 계셨는데, 불화 중이었는데, 세마나 중 서로 회개하고 용서하고 화해하셨다고 했습니다. 
세미나 중 이런 역사가 나타난 것은 4일동안 계속하여 말씀이신 주님 앞에 섰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말씀의 능력은 놀랍습니다. 

주님을 만나고 싶고 말씀을 듣기 원한다면 믿음으로 성경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주님, 저는 만나주지 않으셨잖아요?” “주님, 제게는 말씀해 주지 않으셨잖아요?” 할 사람이 없습니다. 성경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지금 옆에 있는 성경책을 펼쳐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으로부터 온 메시지가 도착해 있을 것입니다.

(자료출처 http://www.diarywithjesus.com/column-read?c_idx=644&nowPageNum=1)


유기성 목사는 필립 얀시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유기성
6월 10일 · 수정됨 · 
감정을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필립 얀시가 쓴 [아무도 말해 주지 않았던 것들]을 읽으면서 감정을 다루는 법에 대하여 많은 도움을 얻었습니다.
24 시간 예수님을 바라보려고 할 때 가장 힘든 것이 감정을 다루는 것입니다.
감정은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것이며 본질상 옳은 것도 그른 것도 아닙니다.
누구나 사람들의 칭찬을 들었을 때 기분이 좋으며 비난과 지적을 받았을 때, 화가 납니다.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배신을 당했을 때, 사랑하는 사람에게 실망했을 때 마음에 상처를 받습니다. 거짓말을 하면 죄책감을 느끼고 시험 기간이 다가오면 불안하며 성적이 떨어지면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감정은 항상 자신이나 주위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 일들을 솔직하게 반영합니다.
배우자가 약속한 것을 지키지 않았을 때, 화가 났다면, 비록 그에게 정당한 이유가 있었거나 또 용서를 구했다고 해도 자신의 감정이 상했으며 화가 난 만은 분명한 사실인 것입니다.
문제는 그 상처난 감정을 어떻게 해결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옳고 그르다 할 수 있는 것은 감정이 아니라 감정에 따라 어떤 행동을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감정은 항상 자신이 느끼는 것에 대하여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만,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고 신뢰할 만한 권면을 제공하는 것은 아님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를테면, 세계 일주 여행을 가는 것에 대하여 매우 흥미롭게 느낀다고 해서 꼭 가야만 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특히 그로 인해 직장을 사직해야 하거나 빚을 많이 져야 한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어려움을 당한 사람과 함께 울어주고 그를 꼭 껴안아 주고 싶은 충동을 따라 행동하는 것은 종종 멋진 일이지만, 어떤 사람을 때리고 싶은 충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그 감정에 따라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지를 결정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감정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자제하는 훈련입니다.
이 말은 자신의 감정을 완전히 무시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감정에 귀 기울이는 일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자신에게 왜 그런 감정이 일어나는지, 그 감정의 직접적인 원인을, 다음에는 그 저변에 잠재된 원인을 찾아 보아야 합니다.그렇게 되면 감정에 따라 성급히 행동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주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라”고 권면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을 때, 자신의 감정을 충분히 인식하면서도 그 감정이 치유되고 회복됨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그 감정에 대하여 예수님의 마음으로 반응하게 됩니다.
제가 24 시간 예수님을 바라보려 했지만, 처음에 상당히 힘들었습니다. 그것은 감정 조절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제 감정에 푹 빠져서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 것이 불가능하게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계속하여 주님을 바라보려고 하면서 제 안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저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면서도 감정에 따라 충동적인 말과 행동을 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주변 사람들 중에 저는 좋은 것도 없고 싫은 것도 없는, 감정도 없는 사람처럼 보는 이도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기쁠 때도 슬플 때도 만족할 때도 화가 날 때도 많습니다.
수시로 유혹을 느끼고 좌절도 느끼고 분노도 느끼고 두려움도 느낍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감정이 일어날 때,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 전보다 자연스러워진 것 뿐입니다. 그래서 말이나 행동을 할 때 감정에 치우치지 않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자신의 감정을 충분히 인식하고 그 원인을 파악하고 그리고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의 마음을 품는 것이 얼핏 복잡해 보이지만 24 시간 주님을 바라보기를 힘쓰면 어느 순간 한 과정처럼 되어짐을 느끼게 됩니다.
운동을 배울 때나 운전을 배울 때, 처음에는 기본자세를 따로 따로 배우지만 얼마가지 않아서 한 동작처럼 되어지는 것과 같다고 할까요?
게다가 주 예수님은 교리도 아니고 원리도 아니고 살아계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진정 주님의 마음을 품으려 하면 반드시 우리에게 능력으로 역사하십니다.
빌 4:13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다.

(자료출처 https://www.facebook.com/pastor.yookisung/posts/585871441510849)


특히 2014년 10월 9일 아현성결교회에서 열린 필립얀시 초청집회에 강사로도 참여했습니다. 
필립 얀시는 로마 가톨릭 관상기도의 대가인 토마스 머튼의 영향을 받은 사람입니다.

필립 얀시가 얼마나 신비주의 영성과 관련되어 있는지는 아래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Letter to the Editor: Radio Bible Class – Continuing to Go Contemplative – And Pushes “As Below, So Above”
 February 25th, 2014 |  Author: Lighthouse Trails Editors

To Lighthouse Trails:

We would like to assist in continuing to illustrate that RBC [Radio Bible Class] has yet to cease from “going contemplative” – regardless of their statements to the contrary. We offer two recent examples from their Our Daily Bread (ODB) product.
While searching your web presence on this topic, the most recent article I found was from Jan 31, 2013, which calls out Phillip Yancey’s contributions to ODB.

From the January 2014 ODB, specifically the January 9 entry, RBC sites that the article was excerpted and adapted from The Jesus I Never Knew, by Philip Yancey, 1995 Zondervan. The title of the RBC ODB article is “As Below, So Above.”1 Yancey does point out that “As Above, So Below”2 is an ancient pagan formula. We have many comments about the motivation behind introducing and “sensitizing or socializing” people to these words, – as well as associating it loosely with the Messiah; but, we suggest that you read it for yourselves (btw, Yancey is also in the February 2014 ODB).

Our second example is from the February ODB, specifically the February 26 entry. Here, the author (David McCasland) recommends Henri Nouwen’s book In the Name of Jesus: Reflections on Christian Leadership. Of course, anyone who frequents your ministry’s web presence should be acquainted with the name of Henri Nouwen.3 Again, we have many comments/questions as to the motivation of using a Roman Catholic, panentheistic, mystic who advocates that anyone (regardless of belief) who practices “the silence” can be in the presence of God.
In our opinion, the editors – or whoever approved these articles for final print – are at best spiritually ignorant, resulting in negligence; or informed enough to be practicing spiritual malfeasance (completely wrongful), resulting in leading people into the cruelness of deception.
Based on this year’s ODB so far, RBC appears to be compromised and continuing to go contemplative.
In Messiah,
M & N

Endnotes:
1. According to a website that has done partial translations of  the Emerald Tablets of Hermes, “As Below, So Above” is basically synonymous with “As Above, So Below.”
2. Please refer to Warren B. Smith’s article The New Age Implications of The Message “Bible’s” “As Above, So Below.”
3.  Henri Nouwen’s Affinity Toward Eastern Mysticism – A Valid Reason Why Christian Teachers and Leaders Should Not Promote Him

(자료출처 http://www.lighthousetrailsresearch.com/blog/?tag=philip-yanc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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