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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반포하시되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출 34:6)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09-16
ㆍ추천: 0  ㆍ조회: 8      
양낙홍, 에드워즈에게 성령은 신자에게 내주하는 하나의 원리



양낙홍, 에드워즈에게 성령은 신자에게 내주하는 하나의 원리
양낙홍 교수와 에드워즈 2

승인 2019.09.13  07:00:45

에드워즈에게 처음 관심을 가질 때 열심히 읽었던 양낙홍 교수의 책 <조나단 에드워즈의 생애와 사상>(부흥과개혁사)의 밑줄 그어진 부분들을 다시 보면서 정리하고 있다. 한번 읽고 지나가면 대부분의 내용을 망각하고 이후 다른 연구의 자료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에드워즈에 대한 방대한 자료가 담긴 이과 같은 한 권의 책은 엄청난 시간을 들인 저자의 수고의 산물이다. 이와 같은 책이 있으므로 우리는 쉽고 빠르게 에드워즈의 신학을 연구할 수 있게 되었다.

요약하는 김에 나의 설명을 조금 추가하여 일반 독자들이 에드워즈와 청교도 신앙의 문제점을 바르게 파악하도록 돕는 글들을 자주 올릴 예정이다. '에드워즈, 양낙홍, 373'라는 표기는 양낙홍 교수가 이 책 373몇 페이지에서 인용한 에드워즈의 말이라는 의미이고, "양낙홍, 191"은 이 책의 191 페이지에서 양낙홍 교수가 한 말이라는 의미이다. 

“나는 다가오는 영광스러운 교회 시대에 이 이적적 은사들이 회복을 기대하거나 원하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그 시대의 영광에 아무것도 더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을 감소시킬 것 같다. 나라면, 일 년 동안 예언적 환상들과 계시들을 보는 것보다는 차라리 15분 동안 성령님의 달콤한 영향을 즐기는 편을 택하겠다. 그리스도의 영적 신적 아름다움과 무한한 은혜, 생명을 주신 사랑을 보여 주고, 신앙의 거룩한 움직임과 신성한 사랑, 그리고 달콤한 만족 및 하나님 안에서의 겸손한 기쁨을 발하는 그 영향 말이다.”(에드워즈, 양낙홍, 373)

지금까지 에드워즈 연구자들은 이 내용으로 에드워즈가 계시의 종결성을 강력하게 수호한 탁월한 개혁주의자였다는 그릇된 주장을 강화하였다. 그러나 에드워즈의 이 글은 그가 계시의 종결성을 확신했던 신학을 가졌다는 증거라기 보다는 신비적 영성과 성향을 가졌다는 증거로 해석되어야 한다. 에드워즈는 성령에 대한 이해와 적용에서 심각한 오류를 보인 사람이었다. 에드워즈의 성령의 역사에 대한 설명과 주장들은 마치 현대의 신사도 운동가들의 말과 매우 유사하다. 또한 명상이나 관상기도하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과도 매우 유사하였다. 

오순절 운동에서 연속된 신사도 운동은 성령의 빈번하고 지속적인 임재를 강조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와 신약의 가르침에 의하면 성령은 구약의 성령과 같은 분이면서 동시에 다른 분이다. 본질적으로 제 3의 하나님이신 성령이시지만, 신약의 성령은 승천하신 그리스도가 십자가로 완성하신 구속을 지상의 교회와 신자들에게 적용하시고자 오신 분이다.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 요청하여 성령을 자기의 이름으로, 자기를 대신하도록 보내셨다. 그래서 신약 성경은 성령을 ‘예수의 영’(행 16:7), ‘주의 영’(행 5:9, 8:39, 고후 3:17), ‘예수’(행 3:20)라고 한다.

신약의 성령의 특징은 단 한 번의 영속적 임재이다. 구약에서는 성령이 특별한 자들과 외적으로 동행하였으나, 신약에서는 성령이 신자의 내면에 단회적으로, 영속적으로 임하신다. 한 사람에게 한 번 오시고 영원히 떠나가시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의 피 뿌리심으로 죄인을 위한 속죄와 칭의가 다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십자가로 완성하신 구속을 믿는 자에게 적용하시는 성령은 단 한번으로 완전하게 임하시어 성도의 몸과 마음을 성전(고전 3:16)으로 삼으신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이 반복되는 일이 아니듯이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성령이 지상에 오심도 반복되는 일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을 적용하여 교회를 세우시는 성령의 지상 강림은 사도행전 2장의 단 한 번의 일이고, 하나님 백성 개개인에게 성령이 임하시는 것도 단 한번으로 이루어지는 일이다. 성령이 지상에 그리스도를 대신하기 위해 강림하신 사도행전 2장의 사건이 이후에 또 반복되었다는 주장이나, 한 개인에게 성령이 내주하시고자 여러 번 임하신다는 주장은 큰 문제들을 야기하는 그릇된 주장이다.

신약의 성령은 부흥이나 하나님의 특별한 일을 추진하는 ‘하나님의 기운’이 아니고 하나님 그 분이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그리스도를 대신하시는 '또 다른 예수'이시다. 하나님이신 성령이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해진 성도에게 임하심으로 구약에서 예언된 가장 중요한 일이 이루어졌다.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렘 31:33)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겔 36:26)

그리스도께서도 떠나시기 전에 자기를 대신하기 위해 곧 오실 성령이 제자들 몸과 마음 속으로 영구히 임하실 것이라 하셨다.

“그는 진리의 영이라 ...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 14:17)

그리스도가 단 번에 죽으시고 피 흘리심으로 자기 백성을 완전히 정결하게 하였으므로 성령의 임하심도 단 번에 이루어진다. 이와 다르게 주장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성경을 파괴하고 다른 거짓 복음의 길로 들어서지 않을 수 없다. 그 경우의 가장 대표적이고 유명한 사람이 바로 조나단 에드워즈이다. 에드워즈의 성령에 대한 이해에서 성령이 그리스도의 구속을 지상 교회와 신자들에게 적용하는 분이라는 사실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에드워즈에게 성령은 구약의 에녹의 때부터 종말에 이르기까지 성령이 지상에 출몰하면서 탁월한 부흥을 일으키는 능력이다. 양낙홍 교수도 에드워즈가 성령을 그 같이 이해하였다고 말했다.

   
“성령을 성도의 마음속에 살아서 내주하시는 하나의 원리로 보았다는 것은 에드워즈의 성령론의 가장 중요한 특징들 중 하나이다. 그는 성령이 비중생자의 마음속에서는 ‘간헐적인 외적 행위자’(extrinsic occasional agent)로 작용한다고 주장한다. 성령은 비중생자와 연합하지 않으시나 성도와는 연합하신다는 것이다. 그 분은 성도를 자기의 성전으로 삼고 ‘생명과 행위의 새로운 초자연적인 원리’로서 성도에게 ‘영향을 주고 그를 움직인다.’”(양낙홍, 191)

어떤 사람이 알고 있는 성령이 ‘그리스도와 같은 분’,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분’, ‘주의 영’, ‘ 예수의 영’이 아니고 단지 부흥을 일으키는 하나님의 ‘힘’이나 ‘영적인 원리(에너지)’로 이해되었다면, 그 사람을 통하여 기독교는 심각하게 왜곡되고 오염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에드워즈의 부흥 집회에서 사람들이 쓰러지고, 움직이지 못하고, 비정상적인 통곡이나 웃음을 나타내고, 환상을 보고 ... 등의 일들이 나타났던 것이다.

양낙홍 교수는 자신이 에드워즈의 성령 이해가 그러하다는 것을 발견했으면, 그를 통하여 사단이 크게 장난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강하게 지적하고 설명했어야 했다. 그러나 독자들이 그런 사실을 경계하게 만드는 분명한 언급이나 논조가 보이지 않아 매우 아쉽다.

에드워즈는 기름부음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였고, 신자들과 목회자들이 부흥을 위해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간절히 구해야 한다고 늘 주장하였다. 특별한 때에 감람유를 사람의 머리에 부었던 구약의 의식은 성령의 특별하신 역사하심을 상징하였던 일이다. 그래서 신약의 저자들도 그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여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속받은 신자에게 찾아오시고 내주하시는 성령을 ‘기름 부음’(요일 2:20,27)이라고 하였다. 이미 신자 속으로 오시어 내주하시는 성령을 ‘기름 부음’이라고 하였지, 계속 리필되는 음료수처럼 지속적으로 성령이 찾아온다는 뜻으로 한 말이 아니다.

신약의 저자들과 다른 의미로 ‘기름 부음’을 찾고 구하면 성령이 아닌 거짓 성령들이 찾아오게 된다. 그것이 바로 오순절-신사도 운동에서 벌어지는 거짓 성령의 장난들이다. 에드워즈라도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에드워즈도 성경 앞에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하는 초라하고 가난한 영혼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런데 성령을 바르게 알지도 못한체 놀라운 부흥을 일으키는 걸출한 영웅이 되어 교회에 기름 부음이 더해지고, 각 신자들에게 기름 부음이 더 해지를 크게 구하였으니 지금의 신사도 집회에서 나타나는 괴상한 성령들이 출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속적인 기름 부음을 구한 에드워즈의 집회에 출몰하는 성령들이 만들어 내는 일들은 크게 두 종류였다. 하나는 현대의 신사도 집회에서 나타는 괴이한 현상들, 즉 몸에서 힘이 빠짐, 환상이 보임, 몸이 압도되어 움직이지 못함, 갑자기 희열이 몰려와서 웃거나 갑자기 통곡하는 현상 등이다. 심지어 에드워즈는 그런 일들을 성화로 연결시키어 이해하였다. 마치 남비에다 전을 올려서 지져 익히듯이 성령이 사람에게 와서 그런 일을 행하는 것 자체가 죄성을 죽이고 성화를 증진시키는 은혜라고 보았다. 성령 자체가 사람과 합일하여 성령의 거룩이 사람에게 수여된다는 식으로 이해하기도 했다. 그런 종류의 괴상한 성령체험이 많았던 자기 부인 사라가 최고로 성화된 사람이라고 칭찬하였다. 양낙홍 교수도 에드워즈의 성령 이해에서 그런 위험성이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그 분(성령)은 성도를 자기의 성전으로 삼고 ‘생명과 행위의 새로운 초자연적인 원리’로서 성도에게 ‘영향을 주고 그를 움직인다.’ 성령은 경건한 사람들 속에서 ‘자신을 전달’(communicate)한다. 즉, 자신의 고유한 본성인 ‘거룩을 그에게 전달’한다. 에드워즈는 성령의 특별한 역사로 인해 성도에게 일어나는 그러한 변화를 죽었던 시체가 살아 움직이게 되는 것에 비유한다.”(양낙홍, 191)

에드워즈에게 찾아온 성령들이 만들어 낸 또 하나의 일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행복감이었다. 에드워즈는 ‘달콤함’이라는 형용사를 통하여 자주 그 체험을 설명하고 기록하였다. 그런데 에드워즈의 그 체험은 신일합일을 추구하였던 중세의 신비주의 명상가 버나드가 강조한 것과 같은 것이었다. 버나드는 '달콤함'을 주는 하나님 환상 등을 체험하기 위해 깊이 명상하였던 사람이다. 버나드가 사도 바울의 3층천 체험과 같은 외적인 환상을 경험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말하지는 않았으나, 그가 추구한 하나님 환상 등의 체험들은 대부분 주관적이고 내면적으로 다가오는 하나님 환상 등의 신비체험이었다. 버나드는 그것을 신인합일로 이해하였고 , 장차 천국에서 완전하게 맛볼 것을 지상에서 부분적으로 잠시 체험하는 은혜이며, 삶과 신앙에 큰 변화를 일으키는 특별한 체험이라고 했다. 일생 동안 한 두번 체험할 수 있을까 말까 하는 그 일을 위해 ㅅ도사들은 일평생 명상과 수도에 전념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에드워즈는 18세 무렵부터 그런 신비적인 현상을 자주 체험했다. 외적이고 객관적이 하나님 현현이 아니고, 주관적이고 내면적인 하나님 환상이었다는 면에서 버나드의 신비주의와 동일했다. 성령의 달콤함, 그리스도와의 달콤한 대화, 그리스도의 사랑스러움 ... 에드워즈는 자신의 신비적 하나님 체험을 그렇게 표현했다. 마치 청춘 남녀가 연애하듯이 또는 신혼 부부가 신방을 꾸미듯이 신자와 감각적으로 결합(연합, 신일합일)하여 탁월한 신앙감정을 일으키는 이상한 성령이었다. 에드워즈는 그것을 ‘신적인 빛’, ‘빛이 비취는 체험’, ‘신령한 조명’ ... 등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성경의 성령은 그런 분이 아니다. 성경의 성령은 신자에게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말씀을 배우게 하여 그리스도인으로 자라고 성장하게 하는 분이다. 예수께서는 떠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곧 오실 성령을 이렇게 설명했다.

1) “저는 진리의 영이라”(요 14:17)

2)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 14:26)

3) “보혜사 ...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요 15:26)

4) “그가 죄에 대해 의에 대해 심판에 대해 책망하시리라” (요16:8)

5)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요 16:13)

6)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고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요 16:13)

7)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요 16:14)

에드워즈의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이 아니라 신자에게 달콤하게 찾아와서 연애하고 가는 신기한 성령이었다. 그래서 그가 인도하는 집회에서 그런 성령들의 장난이 많이 나타났다. 주로 공적인 집회에서는 신자들의 몸을 압도하고, 갑자기 통곡하거나 주체하지 못하는 희열로 웃게 만드는 장난을 많이 했고, 조용히 홀로 명상할 때는 주관적이고 내면적인 하나님과의 합일체험, 그리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희열을 주는 달콤한 영혼의 마약을 풀어주었다.

“일 년 동안 예언적 환상들과 계시들을 보는 것보다는 차라리 15분 동안 성령님의 달콤한 영향을 즐기는 편을 택하겠다. 그리스도의 영적 신적 아름다움과 무한한 은혜, 생명을 주신 사랑을 보여 주고, 신앙의 거룩한 움직임과 신성한 사랑, 그리고 달콤한 만족 및 하나님 안에서의 겸손한 기쁨을 발하는 그 영향 말이다.”(에즈워즈, 양낙홍, 373)

사도행전의 사도들처럼 성령으로 인해 환상과 계시를 체험하는 것보다는 15분 동안 성령으로 인해 특별한 신앙의 감정들을 체험하는 편을 택하겠다는 에드워즈의 이 말은 그의 이상한 성령의 신비주의를 드러내는 말이다. 에드워즈에게서 성령은 죄를 드러내고 그리스도를 믿고 높이게 만드는 말씀의 영, 예수의 영이 아니었다. 에드워즈의 성령을 신자들에게 탁월한 신앙 감정을 체험하고 증진시키는 이상한 성령이었다. 에드워즈는 자신의 집회에서 영혼이 각성되었을 나타나는 현상을 이렇게 기록했다.

“커다란 고뇌 뒤, 빛이 떠오르기 직전, 그들은 침착해지고 조용해져서 정의로우시고 주권적인 하나님께 굴복하게 된다. 그러나 육체적으로는 완전히 맥이 빠지고 때로는 목숨조차 거의 끊어진 것처럼 보인다 ... 그런 다음에 빛이 나타났다. 영광스러운 구속자가 그의 경이롭고 충족한 은혜와 함께 그들에게 제시되었다. 종종 성경의 어떤 달콤한 초청의 말씀 속에서 말이다. 때로, 그 빛은 갑자기 나타났으나 때로는 더 점진적으로 나타나 사랑과 찬양, 기쁨과 자기 비하로 영혼을 채웠다. 그들의 마음은 탁월하고 사랑스러운 구속주를 사모하게 되었으며, 그 분 앞에서 재 속에 눕기를 갈망하게 되었다.”(에드워즈, 양낙홍, 367)

에드워즈는 자신의 집회에서 나타난 이러한 특별한 성령의 현상을 무지한 영혼들을 깨우쳐 구원으로 인도하는 ‘신적인 빛’이라고 표현하였고, 이런 현상 자체를 성화와 직접 연결시켰다. 이런 현상을 많이 보인 자신의 아내를 성화가 깊이 이루어진 본 보기로 소개하기도 했다. 심지어 이런 현상들도 인해 예배가 훼손될지라도 그리 나쁜 일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만일 하나님이 사람들의 양심을 깨우치기를 기뻐하신 결과로 그들이 커다란 외적 표현(great outward manifestations)을 도저히 억제할 수 없다면, 그들이 참석하고 있던 공적수단들(public means, 청교도들의 예배, 기도회 등을 의미)을 다소 침범하고 깨뜨리는 결과가 생긴다 하더라도 나는 그것을 혼란이나 불행한 침범이라고 생각지 않는다.”(에드워즈, 양낙홍, 368)

에드워즈의 이런 모습을 양낙홍 교수는 어떻게 평가하고 판단했을까? 조금 아쉽다. 이미 에드워즈의를 칭송하고 높이는 분위기가 전 세계 교회를 견고하게 지배하고 있으므로 그 틀에서 벗어날 생각조차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상의 묘사에서 우리는 에드워즈를 비롯한 청교도 회심론이 아주 높은 수준의 감정적 체험을 요구하는 것임을 발견한다. 죄에 대한 강력한 깨달음, 심판에 대한 압도적 두려움,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확실한 발견 등은 분명 인간의 회심 체험들 중 가장 농도 짙고 교과서적인 유형에 속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청교도 자신들이 회심 방법을 규범화하는 편협한 신학을 가지고 있다고 비난할지 모른다.”(양낙홍, 367)

자료출처 http://www.good-faith.net/news/articleView.html?idxno=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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