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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반포하시되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출 34:6)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04-30
ㆍ추천: 0  ㆍ조회: 3      
정이철_능동순종과 웨민(WCF)의 무엇이 문제인지 다시 설명해 주세요



능동순종과 웨민(WCF)의 무엇이 문제인지 다시 설명해 주세요
정이철 승인 2019.04.30  13:30:13

질문>
정이철 목사님, 능동순종과 웨민(WCF)의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 설명을 바랍니다. 예수를 구원자로 믿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과 깊은 상관이 있는 것입니까? 다 예수 믿자고 하는 것이면, 굳이 따지고 가를 필요가 있습니까?

정이철 목사님 때문에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를 성경처럼 절대적으로 믿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반대로 목사님을 미워하는 어떤 사람은 유대교의 제도와 율법에 도전한 예수님을 유대교의 교리로 잡아 죽였던 것처럼, 정이철 목사님을 웨스트민스터를 절대적으로 따르지 않는 장로교단의 교리의 이단으로 만들어 죽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만났다고 하면서, 여기 저기에 카톡을 보내는 것이 저에게도 흘러 들어왔습니다.  

능동순종, 웨민에 대해 목사님이 말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한 번 더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답변>
성경은 하나님께 완전하게 순종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하나님께 배상하시기 위해 흘리신 피로 우리가 얻은 죄 사함이 곧 우리의 의라고 합니다. 만일 저의 형님(저는 장남이라 형님이 없음)이 저를 위해 피 흘리셨다면, 저는 하나님의 '의'를 얻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형님은 죄가 많은 분이고, 나를 구원하기 위해 저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모든 뜻에 완전하게 순종하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분의 피는 저의 죄를 사하지도 못하고, 그를 믿는다고 해서 저에게 하나님 앞에서의 의가 되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죄 없으신 분이었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명하신 모든 뜻에 완전하게 순종하셨습니다. 성육신하시는 순간부터 십자가에서 숨이 멎으실 때까지 완전하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그 분이 우리를 위해 대신 피 흘리고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가 사하여 졌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예수 믿음으로, 성령으로 예수와 연합됨으로 얻는 '의', 즉 하나님 백성이 될 수 있는 권리와 자격, 그리고 하나님 백성으로 살 수 있는 생존권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3:24)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롬 5:9)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 5:21)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와 연합되어 그의 피 흘리심의 효력을 덧입는 것이 우리의 '의'입니다. 종교 개혁자 칼빈도 그리스도의 피로 얻는 죄사함, 즉 죄책에서 벗어남이 우리의 의라고 했습니다.
 

   
“그는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바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 사함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롬 4:6-7, 시 32:1)고 말하였다. 여기서 바울은 칭의의 일부분이 아니라, 그 전체를 논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다윗이 죄를 값없이 용서받은 사람들은 행복하다고(시 32:1-2) 그 선언한 그 정의에 찬성한다. 이것을 보면 바울이 말하는 의는 단순히 죄책의 반대 개념인 것이 분명하다.” (기독교강요, 3.11.4)

한국의 정통 개혁신학자 서철원 박사도 그리스도의 흘리신 피로 얻는 죄사함이 성도의 의라고 합니다.
 

   
“의롭다 하심은 예수 믿음에 근거해서 죄를 용서하여 무죄하다고 선언하심이다. 믿음고백에 죄용서와 의롭다하심이 온다. 칭의는 단지 주 예수를 믿는다는 믿음고백에 대한 하나님의 무죄 선언이다.” (서철원, 교의신학전집 5: 구원론, 29)

그런데 칼빈이 죽고 대략 70-80년이 지나면서 칼빈의 후학들에게 ‘개신교 스콜라주의’(Reformed Scholosticism)라는 신학 방법이 도입되었습니다. 중세의 천주교 신학자들의 방법인데, 근본 원리는 아리스토 텔레스의 철학의 방식입니다. 칼빈을 신학의 조상으로 따랐던 그들이 서서히 사변적인 신학을 전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어서 얻는 의의 원리를 탐구하기 위해 성경이 말하지 않는 영역으로 파고 들어갔습니다. 다음과 같은 이론에 도달했습니다.

1) 그리스도가 우리 대신에 율법을 다 지키시어 하나님 백성 되기 위한 ‘의’(자격, 권리, 생존권)을 얻었고, 2) 그리스도가 흘리신 피로 인해 죄 사함(형벌 받아야 할 책임)에서 면제되었다.

특별히 이와 같은 사변적인 칭의론을 발전시킨 사람들은 영국의 종교개혁 그룹들 가운데 훗날의 조나단 에드워즈로 대표되는 회중파 청교도라는 집단이었습니다. 문제는 회중파에서 존 오웬 등의 걸출한 학자들이 너무 많이 배출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상을 발전시킨 사람들의 흔적이 칼빈의 종교개혁 사상에 기초하는 개혁된 교회(reformed church)의 개혁신학(reformed theology)의 중심에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장로교 신학의 교과서라고 여겨지고 있고, 장로교에서 성경과 거의 동동한 권위를 인정받는 웨민고백서(WCF, 1646년) 속에도 이 사람들의 흔적들이 있음을 그 동안 우리는 간과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교리가 정말 위험한 이유가 또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서 하나님 백성의 ‘의’(자격, 생존권, 권리)를 얻었다는 교리는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아담이 영생하기 위해 지켜야 할 율법과 함께 창조되었다는 성경에 근거하지 않는 상상을 동반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스스로의 힘으로 영생을 얻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율법과 함께 아담을 창조하셨는데, 아담이 율법을 지키지 못해 더 죽고 더 저주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아담을 대신하여 모세의 율법을 다 지켜서 하나님 백성되기 위한 '의'(권리, 자격, 생존권)을 얻어서 우리에게 주셨다고 합니다.

그러면 성경 어디에서 아담이 영생 얻기 위해 지켜야 할 율법과 함께 창조되었다는 말씀을 찾을 수 있을까요? 전혀 없습니다. 창세기 어디에도 아담이 영생을 얻기 위해 지켜야 할 율법과 함께 창조되었다는 내용이 없습니다. 성경에서 근거를 전혀 찾을 수 없는 사변을 만들어 기독교 신앙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아담이 영생을 얻기 위해 지켰어야 할 율법이 아담의 마음에 새겨져 있었다고 능동적 순종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가르칩니다. 그리고 웨민고백서에도 아담이 영생 얻기 위해 지켜야 할 율법과 함께 아담이 창조되었고, 그것이 나중에 모세의 시대에 돌판에 기록되었다고 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으며 그것은 율법이 마음에 새겨졌다는 것을 뜻합니다.” (프롱크, 도르트신조강해, 257)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실 때 율법을 마음에 새겨주셨습니다.” (프롱크, 257)

“1. 아담에게 주신 법: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행위 언약으로서 한 법을 주셔서 그것에 의해 그와 그의 모든 후손들을 인격적인, 완전한, 정확한, 그리고 영속적인 순종의 의무 아래 두셨고; 그것의 실행에 근거한 생명을 약속하셨으며, 그것의 위반에 근거하여 죽음을 경고하셨고; 그것을 지킬 힘과 재능을 그에게 부여하셨다.

2. 도덕법(Moral Law): 이 법은 그의 타락 후에도 계속 의(義)의 완전한 규칙이었고; 시내산에서 하나님에 의해 십계명에 그렇게 선언되었으며 두 돌판들에 기록되었는데; 처음 네 계명들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의무를, 그리고 그 나머지 여섯은 사람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담고 있다.” (WCF 19 장 1,2항)

너무도 무리한 성경해석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지어졌고, 하나님 섬김의 사명을 안에서 피조물들의 왕으로 지어진 아담이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하지 않고 하나님과 같아지기 위해 반역함으로써 창조주로부터 저주받고 영원히 죽게 된 것으로 원죄를 해석해야 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고 이후의 역사와 그리스도의 오심과 죽으심이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그런데 사변으로 성경에 접근하여 있지도 않은 율법을 가정하고, 아담이 그 율법을 지키지 않아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다고 이해함으로, 성경과 기독교 심하게 틀어져 버렸습니다.

능동적 순종 교리를 믿으면 여러 가지 신앙의 기형이 초래됩니다. 가장 심각한 신앙의 기형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높이는 사도 바울과 신앙과는 달리 그리스도가 우리 대신 율법을 지키신 것을 강조하고 높이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 1:18)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갈 2:20)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갈 3:1)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갈 6:14)

이와 같이 율법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최고 해설자인 사도 바울은 사나 죽으나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능동순종 주장하는 사람들은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는 신앙을 가르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백성을 위한 모든 계명에 완전히 순종하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 복음은 자신의 죄의 짐을 느끼는 죄인들에게 기쁜 소식입니다.” (코르닐리스 프롱크, 『도르트신조강해』, 268)

“복음은 죄인에게 회개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어떻게 회개가 일어납니까? 그때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율법을 다시금 우리 마음에 새겨 주시고, 우리는 마음에 새겨진 하나님의 율법을 사랑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이것이 당신이 구원받았는지 아닌지를 아는 방법입니다.” (프롱크, 264)

능동순종 주장하는 사람들은 구원 받은 성도가 율법을 지킴으로 성화를 이룬다고 하고, 율법을 지키는 것이 구원받은 증거라고 하고, 지금도 십자가 복음보다는 율법을 철저하게 가르쳐야 회개하고 구원에 이른다고 하고 ... 결국 율법, 예수 등의 성경에 있는 같은 단어를 사용하면서 다른 종교를 만들어 버립니다.

칼빈과 루터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아담이 욕망과 교만에 포로 되어 하나님을 배반하고 반역하여 저주받았고, 하나님께서 인간을 불쌍히 여기시어 죽이시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으로 다시 하나님 백성으로 삼아주신 은혜를 믿음으로 받음을 가르치는 종교개혁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이 지난 지 불과 100년 되기도 전에 다시 기독교가 율법 종교로 바뀌는 변질이 일어난 것입니다. 능동순종 주장하는 사람들은 공공연히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힘으로 율법 지켜서 영생을 얻도록 창조한 아담이 율법을 지키지 못해 저주받았다. 그리스도가 대신 율법 지켜 인간을 하나님 백성되게 해 주셨다. 구원받은 성도는 더 열심히 율법 지키는 백성이 되어야 한다. 율법 잘 지키는 것이 구원의 증거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법과 십자가의 보혈의 권세로 인간을 재창조하는 성령의 능력을 좇아서 살아야 재창조된 성도들을 다시 구약의 율법으로 돌아가게 하는 마귀의 속임수가 이미 교회의 깊은 곳으로 들어와 버린 것입니다.

웨민고백서는 당시 영국 성공회의 신앙의 원리인 39개조에 대항하고자 다양한 종파의 종교개혁 세력들이 힘을 합하고, 서로의 신학을 절충하여 만들어 낸 신앙고백서입니다. 장로교만의 신앙고백서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그것이 아니었음을 최근에 알았습니다. 결국 장로교와 신앙의 길을 달리하면서도 웨민고백서를 함께 만들었던 회중파 청교도들은 12년 후에 자신의 신앙고백서(사보이선언, 1658년)를 따로 채택하여 신앙의 길을 달리했습니다. 이 계보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조나단 에드워즈(17-3-1758)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웨민고백서를 전적으로 거부하겠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웨민고백서는 여전히 장로교회의 신학의 바탕임을 저도 당연히 인정합니다. 그러나 일부 내용에 오류가 있음을 보게하신 하나님의 역사와 부르심을 따라 그것을 알리자는 것이 저의 주장입니다. 저 혼자 이런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웨민고백서에 이런 문제가 있다는 것을 느끼고 지적했습니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같은 지적을 했습니다. 최근에 읽은 황대우 교수(고신대 역사신학)의 소논문 “개혁파이 선택론과 언약론”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보았습니다.
    
“칼빈의 신학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창조언약, 행위언약'과 같은, 후기 개혁파의 언약신학을 특징 지우는 개념들은 어떤 의미에서 바로 이러한 불링거의 언약사상에 의존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황대우 교수)

후기 개혁파들이 만든 행위언약 사상은 지금 웨민고백서 7장에 기술되어 있ㅅ습니다. 바로 그 내용이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의 원인입니다. 그런데 황대우 교수도 웨민고백서에도 기록된 행위언약 사상을 칼빈의 신학에서 찾아볼 수 없다고 했습니다. 바로 이런 내용입니다. 한 두 사람이 이런 지적을 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교단 차원에서 웨민고백서에서 칼빈의 신학과 다른 점들을 수정하는 날이 와야 합니다. 그 날이 오기까지 저는 웨민고백서를 큰 틀에서 마땅히 인정하면서, 동시에 지금처럼 성경과 칼빈의 정통 개혁신학으로 돌아가기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것을 계속 말할 것입니다. 

자료출처 http://www.good-faith.net/news/articleView.html?idxno=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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