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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03-12
ㆍ추천: 0  ㆍ조회: 8      
고경태의 ‘능동적, 수동적 순종’에 대한 현재까지 이해



고경태의 ‘능동적, 수동적 순종’에 대한 현재까지 이해
고경태  승인 2019.03.12  08:06:19

칭의 이해(구원 탈락 가능성)에 대해서 2016년부터, 그리고 ‘능동적, 수동적 순종’에 대해서는 2017년부터는 담론을 전개하고 있다. 필자는 칭의 이해에 관해서는 직접 토론에 참가하였고 CLC를 통하여 <현대 칭의론 연구>을 출판했다. 그리고 ‘능동적, 수동적 순종’에 대해서는 관객으로 참여하고 있다. 나중에 이것도 저술로 묶는다면 또 하나의 좋은 신학담론을 한국 교회가 소유하게 될 것이다.

‘능동적, 수동적 순종’에 대한 담론은 짧은 기간에 형성된 것이 아니라, 상당한 기간을 걸쳐서 누적된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또한 칭의 이해와 관련되었다고 생각한다. 칼빈의 말처럼 칭의 이해는 신학에서 경첩(hinge) 역할을 하고 있다. 문짝이 경첩과 연결되지 않으면 제 구실하지 못할 것이니, 루터의 말처럼 칭의에서 잘못되면 교회는 무너지고 말 것이다. 칭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 Sola fide et Sola gratia이다. 이 교리가 성경(Sola Scriptura)에 근거했다는 것이 종교개혁의 중요 외침이다.

아직 필자가 물었던 다음의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을 듣지 못했다.

“그리스도가 능동적 순종으로 자기를 구원받게 해야 했다”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은 두개의 의인가?”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이하 WCF)의 고백처럼 완전한 순종과 죽음이라는 표현은 가능하지 않겠는가?”

첫째 질문에 대해 답을 한다고 했는데, 다음에 다시 동일한 문장을 반복하기 때문에 그 답변을 신뢰할 수가 없다. 그리고 확인된 것은 “능동적 순종의 의가 종교개혁의 핵심이다”라는 말이었다.

현재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 어휘에 대해서 꾸준히 찾고 있다. 학문에서는 어휘 개념을 확립하는 것이 시작이다. 유력한 신학 연구자들이 참여해서 좋은 이해를 제시해줄 것을 요구한다. 여기에서 확장된 논의는 “WCF(잉글랜드 범교회)와 사보이 선언(회중파)의 관계”가 될 것이다.

첫째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 어휘는 1646년의 WCF에 없다. WCF에서는 ‘완전한 순종과 죽음’이라고 했다. 11장(칭의) 1항 ‘그리스도의 순종과 만족을 그들에게 전가시킴으로써’(but by imputing the obedience and satisfaction of Christ unto them), 11장 3항 ‘그리스도께서 그의 순종과 죽으심으로 말미암아’(by his obedience and death)이다.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 1658년의 사보이 선언 10장 칭의에서 ‘모든 율법에 대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을 전가함으로써’(by imputing Christ’s active obedience to the whole law, and passive obedience)라고 등장하였다.

두 어휘의 의미가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완전한 순종과 죽음”이라고 사용해도 될 것이다. 또한 16세기에도 ‘능동적 순종’ 취택에 대한 논쟁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누가 찬성하고 반대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분명한 것은 WCF에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이라는 어휘는 없다는 것이다.

둘째, 칼빈에게서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이라는 어휘를 발견하지 못했다.

“생의 그 마지막까지 성도들에게는 여기에 기술된 의 외에 다른 의가 없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언제나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하게 하시는 중보자로 계시며 그리하여 그의 죽음은 영원한 효력을 지니기 때문이다. 곧 우리의 모든 불의를 덮는 정화(淨化, 씻음, ablutio), 무름 (satisfactio), 속죄(expiatio), 그리고 마지막으로 완전한 순종(perfecta obedientia)이 그것이다.”

위 문장은 문병호 교수가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에 따른 성도의 그리스도와의 연합: 『기독교강요』에 개진된 칼빈의 이해의 고유성”에서 Inst. 3.14.11 (CO2.572)을 번역한 내용이다. 칼빈은 “그의 죽음, 정화, 무름, 완전한 순종”을 모두 한 의미의 동의어로 사용했다고 볼 수 있다. 이 부분에서 칼빈은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 두 부분이 아닌, ‘죽음’과 ‘완전한 순종’ 그리고 정화, 무름(만족), 속죄를 동의어로 놓았다.

(참고. Hence believers have not even to the end of life any other righteousness than that which is there described. Christ ever remains a Mediator to reconcile the Father to us, and there is a perpetual efficacy in his death—viz. ablution, satisfaction, expiation; in short, perfect obedience, by which all our iniquities are covered(Inst. Ⅲ.14.11, trans. Beverage)

셋째,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이라는 최초의 어휘를 회중파 정교도의 신앙선언문 사보이 선언에서 찾았고, 대표적인 회중파 청교도 신학자 존 오웬에게서도 발견했다. 2차 자료로서는 장현민의 “약속과 보존 : 존 오웬의 모세 연약론 연구”(아신대 대학원 박사논문, 2014년)에서 오웬의 언약 이해가 WCF의 언약 이해와 다르다는 내용 속에서 찾을 수 있었다. (WCF 삼중언약-구원협약, 행위언약, 은혜언약 <-> 오웬, 사중언약-구속언약, 행위언약, 은혜언약, 모세언약 구도). 이 사실은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을 주장하는 것은 곧 WCF의 언약 이해와 다른 언약 체계를 가지는 것임을 의미한다.

넷째, 종교개혁의 칭의 이해는 “단번에 이루신 구원”에 대한 명료한 서술이다(참고. 안토니 셀바시오, 김은득 역,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유산, 단번에 주신 믿음>, CLC, 2014). 종교개혁 신앙을 계승하는 것은 이신칭의, 즉 단번에 이루신 믿음을 확고하게 세우는 것이다.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면서 미시적인 부분에서 합의점이 도출되지 않을 때, 거시적인 부분에서 확인하고 다시 진행할 수 있다. 그것은 주와 구주 예수를 믿는 믿음, 단번에 주신 구원에 대한 확고한 이해이다. 참고로 바빙크 <개혁교의학>(그리스도의 비하 부분)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바빙크가 능동적 순종에 대해서 제시는 하지만, “그리스도의 구속 교리”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철원 박사는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 어휘’를 스콜라적 어휘라고 제시했다. 스콜라적 어휘의 근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윤리학, 형이상학이다. 개혁신학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체계를 수용한 것은 누구나 인지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능동 지성과 수동 지성’이라는 어휘가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두 지성 개념을 거부하고, 인간 안에 있는 <지성단일성>을 주장했다.

그런데 능동과 수동 개념이 분분하면서, 계시 개념에 대한 이해는 사라졌다.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고 준수함에 있어 성경 권위를 높여야 하는데, 능동적 순종으로 전가 받은 의를 실현하는 방안으로 나가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철학계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지성 이해는 단일, 두 지성, 혼합 등등 지금까지 의견이 분분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이 체계적이지만, 성경 이해를 위한 구조로는 적합하지 않다. 성경은 단순한 복음을 믿고 적극적으로 나가 담대하게 복음 전하기를 명령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유가 필요한 것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시를 떠난 사유 자체는 교회를 파괴한다. 교회 사역자는 이해를 위한 사유가 아니라, 교회를 세우기 위한 사유, 복음을 세우기 위한 사유를 하도록 겸손하게 훈련해야 한다. 그릇된 사유가 들어오면 그 사유를 극복하기 위해서 불필요한 논쟁에 휩싸이게 된다. 사유 논쟁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고 전파하려는 논쟁과 합력이 된다면 좋겠다. 

자료출처 http://www.good-faith.net/news/articleView.html?idxno=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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