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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8-23 (목)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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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05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_CCM의 수용에 대하여
고린도전서 105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찬송가 430장/ 284장 2018년 8월 22일 수요일

21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22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고전 9:21-22)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아 주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서 영혼 구원을 향한 진실한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22절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의 진심을 더 말해줍니다. 21절에서도 ‘얻고자 함이라’고 말한 그 의미는 사람들을 회심시키거나 그리스도인으로 만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22절에서는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라고 정확하게 말했습니다. ‘얻고자 한다’는 이 말은 ‘설득하다’, ‘적절한 견해로 인도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1)

 이것은 사도 바울이 얼마나 지혜롭게 복음을 전했는지를 말해주며, 이방인들이나 유대인들을 향해서 얼마나 너그럽고 열린 마음으로 전도를 했는지를 알게 해 줍니다. 
사도는 유대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유대인들에게는 유대인들처럼 어울렸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수준 낮게 보고 경멸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을 향해서도 여전히 열린 마음을 가지고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언제나 가능성을 열어두고서 접근했습니다. 교리적으로 포기하고 내용적으로 혼합하여 접근한 것이 아니라 외적인 부분들에 있어서 수용 가능한 측면에서 있어서는 최대한 양보를 했습니다. 그야말로 복음을 위한 양보였습니다. 
22절 초반에서,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라는 말씀을 매튜 풀은 이렇게 주석했습니다. 

지식과 믿음이 약해서, 그리스도인은 모세 율법에 의해서 요구된 할례와 결례 등과 같은 예식법으로부터 자유롭다는 확고한 확신을 가지고 있지 않은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되었다.” 즉, 나는 모세 율법 중에서 예식법에 속한 것들을 그리스도인들이 행해도 되고 행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그것들을 지키지 않아도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는 것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지식과 믿음이 약한 자들은 여전히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는 까닭에, 그런 경우에는 나는 그들이 그렇게 믿는 것이 지식과 믿음이 약하기 때문임을 알면서도, 그들의 양심을 다치게 하지 않기 위하여, 나의 지식을 사용해서 내게 주어진 자유를 마음껏 누리는 쪽을 포기하고, 도리어 그들이 믿는 대로 그 예식법을 지켜서 그들을 만족시키는 쪽을 택하였는데, 그것은 그들을 잃지 않기 위한 것이었다.2) 

사도 바울이 모든 것을 다 양보하고 맞추어준 것이 아니라 예식법에 있어서 유대인들의 방식에 맞추어 주었습니다. 예식법이란 제사와 절기, 음식법에 관한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보았듯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피로써 자기 백성들의 죄를 사하시고 부활 승천하시고 성령님께서 오심으로 유대인들이 이제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기 시작한지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시기였기 때문에 예식법에 대하여 어느 정도 관용이 되던 시기였습니다. 무엇보다 아직 유대인들이 복음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자기들의 것만이 제일 좋은 것으로 여기고 있는 그런 시기였습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의 이런 자세를 본받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유대인들의 예식법에 대해 관용했다면, 우리는 ‘이 시대의 문화 속에서 어떻게 관용의 자세를 가질 것인가?’를 깊이 고민해야 합니다. 우리는 유대인들을 대하면 유대인들과 어울릴 수 있는 방식을 생각해야 하겠지만, ‘우리의 문화 테두리 안에서 무엇을 관용해야 할 것인가?’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금하신 것들을 매우 주의를 기울여서 조심을 해야 할 일이지만, 명백히 금지 조항으로 말씀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 어떻게 기독교적으로 접근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아마 그 중에 하나가 CCM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CCM에 대해서 여러 번 문제점을 제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말한 것은 CCM이 그야말로 우리 당대에 수용가능한 문화적 요소가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모든 CCM이 다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너무 선을 넘어서 예배당인지 술집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요란한 조명과 엄청나게 큰 음악소리로 CCM을 부른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또한 무대의 설정이나 사람들의 의상이 타종교에서 가져온 듯한 모습들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CCM을 말하는 이유는 개혁신앙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CCM이라고 말하면 너무 비판적으로만 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CCM을 너무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개혁교회들이 ‘시편찬송만 불러야 한다’고 고집을 피우면서 예배 시간이나 다른 시간에도 시편찬송만 부르다보니 CCM에 대해서는 너무 거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은 구약의 시편만으로는 신약의 새 은혜들을 다 담아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약은 그림자이고 신약은 실체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메시아가 오시리라는 그 그림자가 오셨기 때문에 구약의 시편만으로는 신약의 은혜들을 다 담아낼 수가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가야 합니다. 또한 유대인들의 문화와 우리들의 문화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15장에서 예루살렘 공의회를 할 때에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28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가한 줄 알았노니 29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 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행 15:28-29)

사도들이 이 결정을 했습니다. 이방인들에게 다른 짐을 지우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29절에 나오는 대로,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 할지니라”고 권면하면서 그런 것들을 멀리하라고 말했습니다.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계명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일을 하는 것들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권하고 그 나머지 일에 대해서는 이방인들이 주를 믿는 그 믿음을 따라 처신하도록 맡겨두었습니다. 

이방인들에게 할례를 행하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 2장 25-29절에서 말하듯이 새언약 시대의 할례는 표면적인 육신의 할례가 아니라 그 마음에 할례를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보이기에는 별스러운 일이 아니지만 유대인들의 관습에 의하면 너무나도 큰일이었습니다. 할례를 받지 않으면 유대인의 총회에 들어올 수도 없는 아주 굉장한 의식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방인들에게는 할례라는 짐을 지우지 않았습니다. 

시편을 저작할 당시의 유대문화와 우리의 문화와는 매우 다릅니다. 우리 문화가 하나님을 대항하는 문화가 아니라면 여러 차원에서 고려해보고 수용할 것은 수용해야 합니다. 우리의 문화를 완전히 무시하고 복음을 전할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그것이 지나쳐서 혼합으로 가고 동화되는 길로 가는 것이 무서운 것입니다. 그래서 소위 토착화 신학이라는 것이 생겨났습니다. 윤성범 교수, 유동식 교수, 변선환 교수를 ‘토착화신학’ 1세대로 말합니다. 토착화 신학이란, “한국인 심성에는 이미 기독교적인 신학 요소들이 존재하고 있다”3) 는 것입니다. 환인 환웅 단군에 등장하는 단군신화를 삼위일체로 이해하려고 합니다. 한국의 토착화 신학은 민중을 역사의 주체와 사회의 실체로 해석하는 민중신학과 어울려서 성경에서 너무나 많이 벗어나 있습니다. 

그런 민중신학이나 토착화 신학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지켜가면서 어느 정도로 CCM을 수용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시편 찬송만으로는 새언약을 담아낼 수 없으며, 시편 찬송만으로는 우리 시대에, 우리 문화에 어울리게 할 수가 없습니다. 실제로 우리 시대의 교회에는 시편찬송만으로는 교회가 생명력 있게 만들어 낼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CCM을 다 수용할 수가 없습니다. 분명히 비성경적인 영성과 어울려서 온 것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 문화와 정서를 배제하고 기독교 문화를 억지로 주입할 수는 없습니다. 
개혁신앙이라고 해서 CCM을 부르면 너무 기겁을 하고 목사를 이상하게 볼 필요는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유대인들의 예식법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고 그들에게 어울리려고 했듯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일에 문제가 되는 일이 아니라면 진지하게 고려를 해 보아야 합니다. 교회가 함께 가사나 작곡자를 생각하고 고민을 해 보아야 합니다. 워낙 큰일이라서 교회 안에 여러 사람들이 함께 기도하고 살펴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사도 바울이 가졌던 그 마음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22절 하반절에서 사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

매튜 풀은 이 말씀을 다음과 같이 주석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 지식과 믿음의 정도에 있어서 서로 격차가 있기 때문에, 나는 어떻게든 각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을 받는 데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그들에게 수준에 맞춰서 처신해 왔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하나님께 죄가 되는 일인데도, 그들이 원한다고 해서, 그 일을 하여 그들을 만족시키고 그들의 비위를 맞추는 것을 하였다는 것이 아니고, 단지 하나님의 율법에 의해서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그런 일들에 대해서만, 사람들로 하여금 영원한 구원을 받게 하는 데, 내가 그 일을 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유익한 경우에는 그 일을 하였고, 그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조금이라도 유익한 경우에는 그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4)

매튜 풀에 의하면, 사도는 아무 일에나 양보를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위임하여 주신 일에 대해서만 양보를 했고, 그것도 유익이 되는 쪽으로만 복음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처신을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라면 복음의 본질에 영향을 주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그들에게 자기를 맞추었습니다. 
그렇게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이 되는 것은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함입니다. 자기 안에 사사로운 욕심이 있으면 그런 삶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이 될 수 있는 것은 생각이 없고 머리가 비어서가 아닙니다. 사도 안에 충만하게 의미와 통일성을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고 그들과 대화하고 그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은 자기 존재감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하게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존재감 정도가 아닙니다. 영원 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자기를 보고 다시 오늘에서 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주의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자로서 기쁨을 누리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여러 사람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먼저 내 안에 의미와 통일성이 충만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어야 다른 사람들과 만남에서 부드럽게 어울릴 수가 있고 그리스도께로 인도해 갈 수가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도 따뜻하게 대할 수 있는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살아가는 삶이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한 영혼이라도 주께로 인도하는 것이 사명이라는 것을 알고 우리 앞에 있는 영혼들을 위해서 낮아지고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의미와 통일성이 충만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 각주 ---
1. 찰스 핫지, 고린도전서주석, 김영배·손종국 역 (서울: 아가페출판사, 1985), 242. 
2. 매튜 풀, 고린도전후서, 박문재 역 (경기: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15), 144-145. 
3.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612876/ 이덕주, (2016.08.31.). <이 교수(감리교신학대 이덕주 교수)는 “윤 교수는 한국인 심성에는 이미 기독교적인 신학 요소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며 “환인 환웅 단군이 등장하는 단군신화를 삼위일체의 전(前) 이해라고 주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윤 교수는 자신의 토착화신학을 ‘감’ ‘솜씨’ ‘멋’으로 설명했다. 감은 재료, 솜씨는 재주, 멋은 결과”라며 “감은 한국인 마음 바탕, 솜씨는 기독교의 교육과 훈련, 멋은 그 결과로 빚어진 기독교”라고 말했다. 이 교수가 역사신학을 전공한 계기는 스승이 고민했던 토착화 문제를 한국교회 1세대 신자들이었던 길선주 양전백 신석구 최병헌 등도 고민했다는 것을 발견하면서다. “통성기도 새벽기도 날연보 삼일기도회 등은 서양 기독교에서는 찾을 수 없는 한국교회만의 신앙 양태였어요. 유불선 종교에 익숙했던 당시 한국교회 신자들이 자기 식으로 신앙을 표현한 것이죠.” 이 교수는 “한때 토착화란 말만 써도 종교다원주의로 몰았다. 하지만 토착화는 예배당에 있는 피아노를 몰아내고 북과 장구로 대신 하자는 게 아니다”라며 “토착화는 당대 문화와 언어에 익숙해지자는 것이지, 과거로 돌아가자는 복고주의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나는 토착화신학을 ‘시루떡신학’으로 표현하고 싶다. 한국 종교 토양의 맨 밑바닥에는 애니미즘이 있다. 그 위는 샤머니즘 불교 도교 유교가 쌓여있고 맨 위는 기독교”라고 말했다. “지금의 한국교회는 이처럼 엄청난 문화 토양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요. 거목이 되려면 양분을 토양에서 얻으면서 뿌리를 깊게 내려야겠지요.” 이 교수는 “지금도 토착화신학 작업은 이어지고 있다”며 몇 가지 사례를 언급했다. 장례에 남아있는 3·5일장 방식이나 추도예배, 일천번제기도회, 직분의 위계질서, 헌금에 깨끗한 지폐 사용, 작정기도, 100일 기도 등이다. 그는 “건강한 신앙이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복음적 신앙과 민족주의적 사회참여, 토착 문화에 대한 주체적 해석 등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말했다.>
4. 매튜 풀, 고린도전후서, 박문재 역 (경기: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15), 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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