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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선진들2

20세기 후반의 중산층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

1권 6부 부록 .2 20세기 후반의 중산층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
자료출처 http://cafe.daum.net/CPI2002/6qY2/128

1권 6부 부록 2. 20세기 후반의 중산층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

나는(쉐퍼) 정통적 복음주의가 20세기 후반에 힘 있고, 아름답기 위해서는 다음의 세 가지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1. 역사적 기독교의 온전한 교리적 입장을 분명하게 견지해야한다.

2. 모든 솔직한 질문에 솔직한 대답을 주어야 한다. 그저 믿으라고 하는 것은 비성경적이다.

3. 역사적 기독교가 우수한 변증법이나 심리적 통합점보다 더 낫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20세기에 존재하심을 개인적, 공동체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현대의 복음주의와 정통주의 중산층 교회는 이념과 도덕의 적용이라는 점차 중요해지고 있는 두 영역에서, 대부분의 지성인이나 노동자 또는 기독교 가정의 젊은이들에게 까지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지성인들과 노동자들과 젊은이들을 있는 그 모습대로 만나는 일에 진정으로 관심을 기울이려면 언급한 세 가지 원칙을 모두 실행하려는 솔직하고 용기 있는 시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속한 라브리 공동체는 불충분하긴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이 원칙들을 실천하려고 애썼을 때, 20세기의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을 보았다. 교회가 우리 세대에 이 세 가지 요점을 진지하게 말하고자 하는 곳, 어디서나 이 요점들은 지극히 중요한 것이 될 것이다.

이 책의 내용과 견해가 세계의 지성인과 창조적인 사람들에게 호소하는 색다른 기독교 활동에만 국한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내용을 파악하려고 시간을 보낸 많은 사람들이 이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이 내용과 견해를 훌륭하게 사용하고 있다. 이 점에 대해서 우리는 감사한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날 대체로 복음주의와 정통주의로 이루어진 “중산층”교회와 기관에도 이와 같은 이해와 내용을 적절하게 사용하면 유익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첫째로 이 일은 중산층 교회와 선교회와 기관에 새로운 차원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부요함”을 안겨다 줄 것이다. 둘째로 그들은 위의 세 원칙들이 대체로 어제 사실만을 대변하는 하위문화 정도라고 무시하기가 훨씬 더 어렵게 될 것이다. 셋째로 그들은 다음 세대를 보호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비단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뿐만 아니라 자녀들의 문제를 진지하게 대하지 못하는 위험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 충고를 하자면 우리가 확고하게 말하고자 했던 원칙을 이해하고 적용하는 일은 단순히 정적인 틀이나 용어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죽은 사물에 불고할 것이다. 우리가 하는 일에서 맛보는 하나의 기쁨은 참으로 많은 젊은이들과 많은 성숙한 교사들이 이 사고 방식을 자신의 학문 분야와 예술에 실행하고 있고, 자기의 관심 분야의 경향과 나란히 자기 연구 활동을 발전시키고 있는 사실을 보고 듣는 일이다.

이제 20세기 후반의 중산층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려 할 때, 우리가 피해야 할 일들이 있다.

첫째로 단순히 교회의 젊은이들이 안고 있는 문제와 선교는 많이 말하지만, 잘 알고 있는 문제를 제기하면 고통스럽기 때문에 그저 현재 상황을 그래도 받아들이는 일이다. 이런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은 조직에서나 재정을 장악하고 있어 “고요한 연못에 파문 일으키기”를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이런 책임은 젊은이나, 젊은 사역자, 젊은 선교사가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적 진리와 단지 우리에게 편안했던 일들을 구별할 수 있는 용기를 내야한다. 교회 바깥의 사람들이나 자녀들에게 충분히 관심을 갖지 않으면서 “다만 단순한 복음”을 전하는 것을 우리는 종종 듣곤 한다.

둘째로 지적이고 문화적인 속물 태도와 엘리트주의의 팽배가 있다. 우리는 이에 빠지지 않도록 서로를 돕는 일이 없으면, 성령을 근심하게 하며, 세우기보다 무너뜨리고, 그 어떤 것보다도 추하게 된다. 우리는 실수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이 두 가지 오류를 피해야한다.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우리 시대의 기독교 활동에서 자기 몫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도록 젊은이들을 훈련할 때 다음의 두 가지 개념을 염두에 둘 것을 제안하고 한다.

첫째 무엇보다도, 교회와 기관의 구성원들은 하나님의 어린양임을 기억해야한다. 그들은 20세기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지성인들과 청조적인 사람들과 젊은이들만큼 관심과 도움을 필요로 한다. 새로운 문제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을 가지 않는 사람도 필요한 양식을 공급받고 목양을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중산층 복음주의 교회의 일반적은 설교와 가르침은 새로운 문제에 대하여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들을 혼란하게 하고 상처를 주고 혹은 그들의 필요한 것을 제대로 주지 못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반면에 젊은이들과 그 외 사람들이 좀 더 깊은 문제를 책에서 읽고 토론을 하거나 강의를 갈 때는 설교를 하거나 가르치지 말아야 한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모든 주일 학교와 성경 학교와 교육 자료들을 준비해야 한다고 제안하고자 한다. 이 말은 설교와 가르칠 자료와 성경 연구 교재 등을 좀 더 관심을 기울여 준비해야함을 뜻한다. 모든 사람이 똑같이 이 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적응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독교 기관이 이전의 오류를 범하지 않고 총체적인 문화 변증학적 사고를 훈련받은 사람을 채용하려 한다면, 모든 사람이 도움을 받을 것이다.

둘째로 20세기의 문제를 안고 있거나 장차 안게 될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도록 교회와 기관과 선교회에서는 특별한 시간을 준비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것은 대담이나 토론이나 세미나가 될 수 있다. 교회와 상관없는 사람들도 참여할 수 있다. 이런 모임은 순전히 지적인 것이 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지적인 문제에 충분히 깊이 들어가면 깊은 영적인 문제와 실재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며 또한 반대로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런 식으로 훈련된 사람들은 어디로 가든지, 사람들이 직면하고 있는 20세기의 문제들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 두 가지 제안을 실천하려는 의식을 가지고 노력하지 않는 한 설교학이나 변증학 강좌는 오늘날 실패와 슬픔으로 끝날 준비를 하고 있는 데 불과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모든 사람이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이해력과 아울러 영적 성장과 사랑을 강조하면서 지나치게 서둘러 시작하지 않는다면, 대부분 한 지붕아래 두 교회가 될 필요가 없을 것이며 다툼이 일어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교회 바깥 사람들과 참된 해답을 갈구하고 있는 우리의 젊은이들을 바로 지금의 추잡한 현실 속에서 숨막히게 내버려 두는 것보다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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