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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아담스의 권면적상담이론 형성배경

아담스는 사실상 목사로서 상담방법에 대한 아무런 지식도 갖추지 못했으며 그는 가난한 교구민들을 돕는 과정에서 깊은 좌절을 맛보아야 했다. 죽음을 앞두고 찾아온 성도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체 충격을 받은 그는 유능한 상담자가 되어 보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도 처음에는 Rogers와 Freud에게서 도움을 얻어 보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그러나 성경에서 ‘죄’라고 하는 것을 ‘질병’이라고 하는데 환멸을 느끼고, 심각한 고민이나 문제를 가진 성도들을 정신과 의사에게로 보내었다. 그러면서도 연구를 계속했다. Freud의 정신분석학과 Rogers의 비지시적 상담에 대한 강의를 듣고 연구하면서도 무언가 석연치 않았다. 점차로 아담스는 맞든 안맞든 상담의 유형에서 벗어나 즉석에서 성경적인 교훈을 적용시켜 보는 습관에 빠지게 되었다. 이때부터 아담스는 어느 때보다도 성공적인 상담자로서의 경험을 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될 수 있는대로 상담에 대한 많은 책을 읽고, 일리노이 대학의 상담학 과정에 등록하여 여름 학기동안 성경적인 것은 아니지만 같은 입장에 서있는 Mowrer에게서 배웠다. Mowrer의 ‘The Crisis Psychiatry and Religion'과 ’The New Group Therapy'는 아담스의 눈을 뜨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Mowrer와 그의 동료들은 ‘신경증환자’, ‘정신신경증 환자’, ‘정신병자’로 분류되는 사람들의 이탈된 행동에 대해 ‘죄를 고백’시키고 개인적인 ‘책임’을 지게 하므로 치료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많은 사람들이 ‘부도덕한 행실’, ‘탈세’등의 죄를 저지르고 나서 마음의 고통을 당하다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면키 위하여 정신병원으로 도망친다.⇒“정신과 치료 중인데요”라고 말하면서 모든 책임을 면한다.

이러한 행동에 대하여 Rogers 학파는 "내 경험으로는 어떠한 방법으로든 당신을 도울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당신이 나보다 더 좋은 결정을 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나는 이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안내자의 역할과 공명판과 같이 될 수 있습니다."고 말하면서 피상담자가 상담자 앞에 말을 하면 상담자는 그의 말을 빈틈없이 요약 되풀이 하므로 피상담자가 듣고 판단하도록 도와준다. 상담자는 충고나 훈계를 할 필요도 없고 해서도 안된다. 피상담자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현재의 상태를 중시하고 용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어떤 죄를 범했더라도 그것을 문제 삼아서는 환자를 치료할 수 없다. 그런 모든 문제는 뒤로 미루고 현재의 질병상태를 호전시키는데 관심을 쏟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담스는 이것을 "무책임의 윤리"라고 혹평했다. 죄를 범하거나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책임을 지기 싫으면 정신병원으로 도피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을 무조건 용납해서 감정을 치료한다고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Rogers 학파의 기본전제는 완전히 자유주의적 인본주의 사상 즉 인간의 문제는 인간이 해결한다는 사상과 일치한다"고 아담스는 지적했다. 그는 또 인간은 자율적 존재이므로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없다는 ‘죄악된 신념’ 위에 세워진 Rogers의 주장은 철저하게 배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무책임한 용납"(Irresponsible Acceptance)은 환자를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없고, 오히려 죄를 숨기는 일을 방조하여 오래 병중에 머물도록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인간의 문제는 인간이 해결한다”⇒세상 상담과 치유의 원리가 된다.

흄(Hume)도 "내담자 중심의 방법은 생각과 실천의 관계를 파괴한다. 이 방법은 상담자가 내담자의 허물을 인정하므로 내담자가 자신의 가치판단은 옆으로 밀어 두도록 만든다"고 평하고 있다.
그러면 프로이드학파는 정신병 또는 신경증 환자를 어떻게 치료하는가? 그들 대부분의 정신질환은 성격 억압 때문에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하나는 초자아(Superego)가 자아(Ego)와 본능(Id)을 지나치게 억압하므로서 정신질환이 발생한다고 본다.
억압으로 발생한 질환을 치료하는 방법은 억압(抑壓 Depression)을 풀어주는 것이라고 한다. 이것을 통풍작용(通風作用 Ventilation) 또는 전이(轉移  Transference)이론이라고 한다. 모든 문제는 자기에게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고 주변 사람들과 사회로 말미암아 발생한다고 생각하게 하여 억압된 감정을 풀어 놓자는 것이다. 그래서 프로이드 학파의 추종자들은 병자의 행동의 책임을 할머니, 어머니, 교회 혹은 특정한 개인이게 전이 시키기 위해 그 대상을 찾기에 바쁘다. 여기에서 무책임의 윤리가 질병을 치료하는데 사용된다.
Mowrer는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 지적하고 책임을 지도록 하는 방법을 통해 로저스학파나 프로이드학파가 "수 년에 걸쳐서도 할 수 없었던 심리치료를 불과 몇 주일만에 성취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Mowrer도 역시 "무책임의 윤리"를 "책임의 윤리"라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대체했을 뿐 역시 인간의 판단에 기초한 상담을 한다. 아담스는 Mowrer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했다. 이 말의 뜻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모든 것은 인본주의요, 인간의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의 이성에 기초한 것임을 밝히는 말이다.

죄라는 기준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캐논이다. 인간의 캐논으로 보면 인간의 행동은 죄가 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다. 죄가 되는 것도 죄가 안되게 한다.

결국 아담스도 Mowrer와도 결별하고 성경과 하나님에 대한 기초한 권면적 상담을 제창하게 되었다. 아담스는 "그리스도의 상담자들은 내담자의 생활 속에 권면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하므로 로저스 학파가 주장하는 문제 해결의 ‘방관자’, ‘조력자’, ‘무책임의 방조자’로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것을 밝혔다. 그는 또 권면적인 상담자는 내담자의 죄악된 감정을 용납(Acceptance)하고, 다른 사람에게 전이시키기 보다는 오히려 회개(Repentance)와 화해(Reconcilation)를 성립시키는 적절한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죄를 범한 자가 억압(Depression), 즉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시 32:4), 이것을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죄를 회개하고 용서받는 것이다. 권면적 상담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죄를 지적하여 회개하게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하고 싸매는 역할까지고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담스는 현대에 논의되는 정신병을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하나는 뇌의 손상이나 종양, 유전인자나 화학적 질병으로 인해 두뇌에 영향을 주어 일어나는 기능장애를 ‘정신병’이고 본다. 다른 하나는 범죄나 양심 가책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인데 이것을 정신병으로 분류할 수 없는 것으로 본다. 이는 일종의 죄의 병으로 본다.
아담스는 로저스 학파의 용납(Acceptance) 이론이나 프로이드 학파의 전이(Transference)이론은 그릇된 인간관에 의한 자율적인 철학과 무책임의 윤리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상담에 진전이 없고 실패하는 일이 많다고 지적한다.

인간의 문제들에 대한 이해
아담스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모든 심리적, 사회적 제반 문제들을 단순한 병리현상으로 보는 것을 거부하고, 하나님 앞에서의 범죄의 문제로 본다. 단순한 병리현상으로 보게 되는 것은 그런 문제에 있어서 피상담자 자신들의 책임을 전혀 고려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여기는 일이 된다. 그에 비해 상담자가 피상담자들의 제반 문제들을 피상담자 자신에게 책임이 많음을 강조하게 된다.
인간의 많은 문제들이 "정신병"이라는 이름의 "큰 우산"(Big Umbrella) 아래서 얼버무려지고 있다. 상담을 통해 취급하거나 해결 및 치유를 위해 노력해야할 인간의 문제들을 이와같이 전적으로 질병의 의미에 따라 "의학적인 모델"로 취급하는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프로이드이다. 그들은 모든 이간들로 하여금 그들의 문제를 취급함에 있어서 그들에게 어떠한 책임도 묻지 않고 오히려 그들이 처해 있는 주위환경에 책임을 전가하도록 만들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개인적 문제들의 원인자를 질병으로 여긴다는 것은 인간의 모든 책임의 개념을 빗나가게 한다. 개인의 책임보다는 사회에게 책임을 추궁한다. 또는 사람의 문제를 취급하면서 그 사람의 문제에 책임이 있는 다른 사람들이 과거에 어떻게 잘못을 범했는가를 알아 내고자 하는 식으로 자신의 책임을 면해주는 것이 오늘날 상담의 주된 흐름이다. 오늘날의 내적 치유도 이런 흐름으로 가고 있다. 치유도 역시 본인 자신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전문가들이 해결해 주어야 할 문제로 이해한다. 프로이드는 죄의식을 잘못된 자아의식이라고 본다. 마음의 질병이라고 불리는 것은 Id가 자아 의식에 의해 바르게 표현되지 못하고 오히려 Superego에 의해 억눌림을 받는데서 기인한다고 보며, Id가 Superego에 의해 "억눌림"을 받으면서 잘못되게 느끼는 의식이 곧 죄의식이라는 잘못된 자아의식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프로이드의 영향을 받은 상담가들은 피상담자들이 가지는 일체의 죄의식을 허위적인 의식인 것으로 생각하여 죄의식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죄를 고백해야 한다는 사실을 철저히 배격한다. 프로이는 바로 인간의 이와 같은 허위적인 죄의식을 실제적인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것이 기독교를 위시한 대부분의 종교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종교는 인간의 허위의식에 근거한 것으로 그 허위의식이 배격되어야 한다는 것과 꼭 같은 이유로 배격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뇌의 손상, 종양, 유전인자, 선(腺)이나 화학적인 질병들로 인하여 두뇌에 영향을 주는 유기체적인 기능장애는 분명히 정신병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으로 아담스도 생각한다. 그러나 그와 같이 정확히 정신병이라고 부를 수 있는 증상 외에 수많은 인간들의 문제들이 어떤 뚜렷한 질병으로 인해 발생되었다는 증거가 없는 가운데서 막연히 "정신병"으로 분류되어 왔다는 것이다. 성경은 인간의 모든 문제들을 육체적 비정상에서 기인되는 질병과 죄악에서 기인되는 문제의 두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그러므로 현대인들이 새롭게 "정신병"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것이 특별히 육체적 기관에서 유래되는 것이 아니라면 오히려 죄의 문제와 결부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 아담스의 강한 주장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실제로 육체적인 기관의 이상에서 연유되는 질병 외에 죄와 관련된 인생의 문제들까지 "정신병"이라고 부르면서 하나님 앞에서의 죄와 그에 따른 책임들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인간 자신들이 별로 책임이나 부끄러움을 느낄 필요가 없는 즉, 도덕적으로 극히 중립적인, 의학적으로 취급될 문제들고 생각해 버린다. 심지어 의도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이들은 하나님 앞에서의 범죄와 결부된 문제들을 의도적으로 괴상한 행동 뒤에로 숨기고자 한다. 자신의 문제를 다름 아닌 정신병적인 것으로 위장하여 자신의 죄악을 감춘다. 그러나 아담스는 인간 자신이 근본적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중생할 뿐 아니라 성화(sanctification)를 이루어 나감으로서 비로소 극복되어질 문제라고 본다.

아담스는 권면적 상담은 프로이드 학파나 로저스 학파의 이론을 따를 수 없는 이유를 세가지로 말한다.
첫째, 상담자가 피상담자의 죄를 방조하거나 동참하기 때문이며,
둘째, 죄를 묵인하거나 용납하기 때문이며,
셋째, 이들의 방법을 따르는 것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방법이야 어떻게 하든지 병만 나으면 된다는 사고방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는 것이다.
결국 권면적 상담은 죄로 병든 심령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수술하고(죄의 고백), 말씀의 위로로 소망으로 권면(치료: 죄 용서의 확신과 위로)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권면적 상담에서는 상담을 성령의 사역이라고 보고, 인간에게 모든 판단과 결정을 맡기지 않고 성령의 인도와 지도하심을 겸손하게 간구하는 것이다.


권면적상담이란?
권면이란 헬라어로, nouthesis인데 이 단어의 전통적인 개념은 훈계하다(damonish), 경고하다(warn), 가르치다(teach) 등으로 번역되나 이 단어를 명확히 표현해주는 단어가 없으므로 그대로 음역하여, 권면(nouthesis)이란 말로 사용한다. '권면'이란 명사형과 '권면하다'의 동사형이 나타나는 신약성경은 대부분 권면이라는 의미를 이해하도록 귀납적으로 이끌어 가고 있음을 살필 수 있다. 특히 신약에 나타난 권면이라는 단어 속에는, 내담자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결되어야만 하는 죄로부터 결과되어진 문제를 가지고 있으며, 이 문제는 성경에 사용된 언어에 의해 해결되어야 하며, 이 해결은 내담자가 그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를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을 돕도록 사랑으로 행해야 한다. 즉 권면적 상담은 성경의 독특한 용어로, 내담자는 죄와 결부되는 문제를 지니는 자라는 전제에서 때로 지시, 책망, 징계까지도 포함하는 언어적인 것으로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와주어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도록 돕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다윗에게 말씀하셨다. 죄가 무엇인지 직접 말씀하셨다.

권면적상담의 목적
첫째,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담자를 도와 주는 것이며, 인간적 지혜를 멀리하고 성경에 있는 무궁한 자료를 내담자에게 보여주고 계속해서 도움을 받게 하여 현재의 문제해결뿐 아니라 미래의 문제를 미연에 방지한다.
둘째, 하나님의 명령하신대로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을 촉진시키고 하나님의 영광과  명령을 성취한다.
셋째, 신앙, 가치, 처신, 변화, 문제해결 및 인간관계 등에 대해 말함으로 올바른 신학을 가르쳐 준다.
넷째, 내담자로 하여금 예수를 믿는 것은 성경적 책임을 다하는 것임을 알게 한다.
다섯째,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소망을 주신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여섯째,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며 내적으로 변화되도록 돕는 것이다.
그러므로 권면적상담의 조건은~
하나님은 주권자이시며,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인 성경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과 하나님은 상담할 때, 그 말씀을 사용하도록 우리에게 말씀하신다는 것이다.


권면적 상담의 과정
디모데후서 3장 16절에 나타나 있는 상담과정을 4단계로 제시하여 성경적 상담을 실시한다.
1) 그리스도인 내담자로 하여금 성경에 제시된 신앙과 삶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에 직면하게 한다-교훈
2)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게 하기 위해 적절한 성경구절을 사용한다.-책망
3) 용서를 통하여 내담자로 하여금 곤경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어,
  하나님과 또한 이웃과의 관계가 변화하도록 한다.-바르게 함.
4) 내담자에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경적 삶의 모순들을 제시하고,
  전에 가졌던 삶의 패턴들 대신에 새로운 삶의 패턴을 개발하도록 도와준다.
  -의로 교육

진정한 기독교 상담은 근본적으로 성령에 의해 행해지는 것이고 인간 상담자들은 바로 그 성령사역의 도구로서 동원되는 것으로 보아야한다. 그러므로 기독교인 상담자나 피상담자는 모두 그 상담의 행위에 있어서 성령의 주권성을 인정해야 한다.

진정한 기독교 상담은 근본적으로 성령에 의해 행해지는 것이고 인간 상담자들은 바로 그 성령사역의 도구로서 동원되는 것으로 보아야한다. 그러므로 기독교인 상담자나 피상담자는 모두 그 상담의 행위에 있어서 성령의 주권성을 인정해야 한다.


본질적인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마 23:2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외식이란 무엇인가? 자기 의를 쌓는 것이다. 언약의 내용인 율법을 지켜 행함으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잘남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자기 의는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정죄해서 죽이는 것으로 결과 밖에 없다.

(눅 11:39)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인즉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본질의 변화는 인간의 힘으로는 안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역사로 거듭나야만 본질적으로 새사람이 된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의 노력의 산물이 된다. 율법주의로 간다. 자기 의에 도취되어서 산다.
이렇게 가는 이유는 인간론이 틀렸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언약을 떠난 인간의 죄악을 인식하지 못하고 자기 안에 ‘나는 너와 다르다’라는 생각으로 가득해서 구원받아야 될 은혜와 자비의 대상이 아니라, 이미 능력과 자질을 갖춘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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