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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의미와 통일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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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고침(신유)에 대한 성경적 자세 1 - 성경적 신유와 오늘날 신유와의 차이점
병고침(신유)에 대한 성경적 자세 1 - 성경적 신유와 오늘날 신유와의 차이점

-------------- 인용 자료 시작 ------------------
병고침(신유)에 대한 성경적 자세 1 - 성경적 신유와 오늘날 신유와의 차이점 -윤석준-
 
오늘날 한국 기독교회 안에는 성령에 대한 혼잡한 이해들이 있습니다. 성령의 특별한 역사라고 여겨지고 있는 것 중에 병 고침, 즉 신유라는 것도 있고, 축사나 방언 같은 것도 있습니다. 성령에 대한 이해의 새로운 국면으로서 이런 성령의 역사라고 생각되는 여러 가지 현상들에 대해 주목하고 있는 것은 전 세계 교회에서 보편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긴 하지만, 특별히 한국교회들은 이런 부분들에 더 민감한 듯 하고, 특히나 순복음 교회들과 같은 곳에서는 거의 이런 양상들이 신앙의 핵심인 것처럼, 혹은 신자들의 삶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내용들에 대해 그저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요? 정말 이런 내용들 곧, 방언을 하고, 병 고침을 받고, 귀신을 쫓아내는 종류의 일들이 모두 성령의 역사로 일어나는 일들일까요? 이 장 전체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은 바로 이런 것들입니다.
 
이것이 과연 성경적으로 옳은 것인지에 관하여 우리는 정확한 이해를 가져야 합니다. 만약 이것이 성경 말씀의 지지를 얻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것이 우리의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라 할지라도, 그리고 내가 직접 경험한 일이라고 해도 믿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오감은 정확한 판단을 하지 못할 때도 많이 있고, 세상에는 우리가 “신앙”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신앙이 아니라 다른 어떤 “현상”인 경우도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내가 경험했기 때문에 병이 나은 것을 그저 성경에 나타나는 신유라고 말하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왜 그러한 병 고침의 기적이 로마 가톨릭에서도, 불교에서도, 이슬람교에서도, 심지어는 인디언의 주술들과 아프리카 무속신앙에서도 나타나는지를 설명해야 합니다. 기독교인인 내가 기도를 통해 병이 나은 것이 무조건 성령의 역사라고 한다면, 옆집에 사는 아주머니의 딸이 무당이 해주는 내림굿을 받고 나서 병이 나은 것은 무엇으로 설명해야 합니까? 그것도 성령의 역사입니까? 아니면 그저 쉽게 악령의 역사라고 말할 것입니까? 그러면 왜 성령과 악령의 역사가 똑같은 방식으로(병 고침으로) 나타납니까?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저는 주위에서 “자기가 경험했기 때문에 무조건 하나님의 역사다”라고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요! 우리는 우리의 오감이 얼마나 왜곡되기 쉬운 것인지에 대해 잘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아니 아주 많이 사실이 아닌 것을 보고 듣게 됩니다.
 
예를 들어 죽음의 문턱에서 천국을 보고 왔다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 본 천국과, 불교를 믿는 사람이 본 천국이 다릅니다. 기독교인은 천사가 자신을 데리러 온 것을 보지만, 불교도는 저승사자가 자신을 데리러 온 것을 체험합니다. 기독교인은 천사를 따라 가 그리스도와 아브라함과 모세를 만나지만, 불교도는 염라대왕과 지장보살을 만납니다. 왜 같은 사후세계인데 그 사람이 가진 문화적 배경이나 종교적 배경에 따라 다른 양상을 보는 것입니까? 그것은 그러한 체험이 진짜 사후세계를 갔다 온 것이 아니라, 단지 뇌의 가사상태가 빚어내는 환상이나 착각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뇌는 종종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영상이나 상황을 거짓으로 만들어 낸다는 것은 학계에 잘 알려져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는 것만을 믿어야 합니다. “내가 경험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다”라고 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오만입니다. 그것은 언제든지 왜곡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자신이 겪은 일들을 믿기 이전에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정확한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보고 듣는 것은 오류가 있을 수 있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오류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신유가 과연 성경적인지를 살펴보기 위해 본 글에서는 “성경에 나타나 있는 신유와 오늘날의 신유가 어떤 점에서 차이가 나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다음 글에서는 신유에 대한 성경적 근거를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 나타나 있는 병을 고치는 일들이 지금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것인지를 검토하는 것입니다. 만약 오늘날 우리가 신유라고 하는 것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과 같은 신유라고 한다면, 우리에게 나타나는 양상과 주님과 사도들이 행했던 것이 내용적으로 똑같아야 합니다. 성령께서는 동일하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혀 그렇지 않다면 둘은 동일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신유와 오늘날의 세계에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소위 ‘신유’라고 하는 것은 사실 전혀 같지 않습니다. 병이 낫는다는 점만 동일할 뿐이지, 그 속의 내용에 있어서는 전혀 다릅니다.
 
이를 논증하기 위하여 아래에 7가지의 주제를 적었습니다. 만약 오늘날의 신유가 성경의 신유와 같은 것이라고 증명하려면, 제가 아래에 들고 있는 내용들에 대해 효과적으로 반박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아마도 아래의 질문들을 우리가 정확하게 마음에 새길 수만 있다면 우리는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소위 ‘신유’라고 하는 것에 대해 조금은 더 비판적인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견해가 생길 것이라 생각합니다.
 
1. 첫째로, 예수님이나 사도들에게는 고치기 쉬운 병과 고치기 어려운 병의 차이는 없었습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예수님이나 사도들에게는 병에 쉽고 어렵고가 없었습니다. 단순한 열병을 고치시는 일이나, 삼십 팔년 된 병자를 고치시는 일에서 차등이 없었습니다. 즉 더 어렵게 고치시는 것은 없습니다. 예수님이나 사도들에게는 모든 병이 다 같은 범주에 속합니다. 성경에는 단 한 번도 더 중한 병이기 때문에 몇 번 더 기도했다든지, 아니면 쉬운 병보다 어려운 병을 고칠 때 더 힘들어 하셨다는 식의 언급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병 고치는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비교적 쉬운 병은 많이들 고치고 낫습니다. 그런데 어려운 병은 낫기도 더 어렵습니다. 잘 안 낫습니다. 쉽게 말해 암 같은 병은 정말로 가끔가다 낫지, 암 걸린 사람이 쉽게 쉽게 낫는 일은 없습니다. 말 그대로 어려운 병은 병 고친다는 사람한테도 어렵습니다. 조금 좋지 않은 표현으로 하자면 “안 되면 할 수 없고, 나으면 재수” 이렇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낫는 빈도가 매우 낮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전혀 성경과 같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이나 사도들은 어떤 병에 대해서도, 두 번도 기도한 적이 없습니다. 원하는 병자에 대해서는 즉각적으로 병이 나았습니다. 어려운 병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의 신유 은사를 받았다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중한 병에 대해서는 병원치료 하듯이 여러 번에 걸쳐서 기도를 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비성경적입니까? 예수님이나 사도들이 “당신은 췌장암이니 일주일에 세 번씩 3개월 정도는 기도를 해야 낫겠소” 이렇게 한 적이 있습니까? 이들로부터 행해진 신유는 “진짜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행하신” 일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힘든 병이라 해도 그저 한 번으로 족했습니다. 이런 사실은 오늘날의 신유와 전혀 다릅니다.
 
2.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도출되는 것으로서, 둘째...예수님이나 사도들은 병자를 고치려고 시도했다가 실패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이 점을 사람들이 왜 못 알아채는지 참 궁금합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예수님이나 사도들은 병자를 고치려고 기도하면 반드시 다 고치셨습니다. 실패한 경우는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병 고친다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확률 싸움입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낫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아무리 많아봤자 10프로도 될까 말까입니다. 만약 어떤 신유은사를 받았다는 사람이 정말 10프로를 고친다면, 그 사람은 어마어마하게 유명해질 것입니다. 저도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 중병을 앓으셔서 그런 기도원을 많이 다닌 경험이 있습니다. 집회에 천명이 오면 한 두 명도 낫기 어려운 것이 신유와 관련된 오늘날의 현실입니다. 10프로? 만약 10프로를 고친다면 문턱이 남아나지 않을 정도로 사람들이 들끓을 것입니다.
 
결국 소수의 나은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그냥 낫기를 기대하고 있지만, “나으면 정말 다행이다”라고 생각하지, “반드시 나을 것”이라고 바랄 수도 없고, 또 실제로 반드시 낫지도 않습니다. 여기에서 성경과 명백한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이나 사도들은 병자를 고치려고 시도하시거나 기도하실 때 반드시 나았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신유를 한다는 사람들은 반드시 낫지 않습니다. 가끔 낫기도 하지만, 안 낫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그래놓고 낫지 않으면 기도 받는 사람 믿음 탓을 하곤 합니다. 당신이 믿음이 부족하니까 안 낫는거다....이런 억지가 어디 있습니까? 병을 고치려 함에도 불구하고 병이 낫지 않는 경우가 더 많은 오늘날의 신유를 어떻게 성경에 나와 있는 그런 기적들과 동일시할 수 있습니까? 전혀 같지 않습니다.
 
3. 셋째, 오늘날 소위 병 고친다는 사람들은 완전히 불가능한 병은 못 고칩니다.
 
사람들이 자주 놓치는 것이지만, 실은 이것도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주님께서 고친 사람들에 대한 언급에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 “날 때부터 앉은뱅이된 사람” 과 같은 표현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왜 이런 사람이 중요한 사람일까요?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날 때부터”입니다. 성경이 그냥 소경, 앉은뱅이....라고 하지 않고 “날 때부터”를 붙인 이유는......이것은 낫는다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질환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건장했던 사람이 불치병에 걸린다거나, 사고로 불구가 되었을 때는 종교와 관련 없는 영역에서도 아주 기적적인 일이 간혹 일어납니다. 낫기도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주위에서 “정말 불가능한 병인데 하나님께서 낫게 하셨다”라고 할 때는, 우리가 볼 때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는 것 뿐이지, 과학적으로, 의학적으로, 상식적으로 완전히 아예 말이 안 되는 불가능은 아닙니다. 정말 가끔이지만 낫는 사람들이 있는 경우입니다.
 
그런데, “날 때부터” 그런 사람들은 이것과 차원이 다릅니다. 이해가 쉽게 하기 위해서 “날 때부터 앉은뱅이”를 생각해 보십시다. 후에 앉은뱅이가 된 사람은 나을 수도 있습니다만, 날 때부터 앉은뱅이인 사람은 태어날 때 아예 다리가 붙어 나온 사람입니다. 그러니까......정말 일억만분의 일이라도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아니고, 아예 낫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사람입니다. “날 때부터 소경인 사람”은 무엇을 말합니까? 눈이 기능이 있었는데 상실한 게 아니고, 아예 애초에 태어날 때부터 볼 수 있는 눈을 갖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이나 사도들은 이런 사람들을 고치셨습니다. 말 그대로 완전히 불가능한, 확률 제로의 사람들을 낫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단 한건도....소위 오늘날 신유 한다는 사람들이 이런 사람을 낫게 한 적은 없습니다. 아니 없을 수밖에 없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불가능한 것은 할 수 없는 오늘날의 신유 은사자들과 예수님이나 사도들의 기적이 어떻게 같을 수 있습니까?
 
4. 그러므로 넷째로, 오늘날 신유한다는 사람은 죽은 사람을 살리지 못합니다.
 
“고칠 수 없는 질병”의 극단에 “죽은 사람”이 있습니다. 절대 고칠 수 없는 질병의 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 역시 매우 중요한 점입니다. 오늘날 신유하는 사람들은 죽은 사람은 살리지 못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예수님이나 사도들은 ‘병고침’만 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죽은 사람도 살렸습니다. 만약 오늘날의 신유를 한다는 사람들이 그 시대와 같은 기적을 행하는 것이라면, 오늘날의 신유 은사 가진 사람들은 왜 죽은 사람은 살리지 못합니까? “에이! 죽은 사람을 어떻게 살려요!”
 
맞습니다. 죽은 사람을 못 살리니까 예수님이나 사도들의 기적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사람들이 행하는 것은 “성경의 그 기적”이 아닙니다. 성경에, 예수님께서 폐병환자는 조금 쉽게 일으키시고, 죽은 사람은 며칠 금식하면서 살리셨습니까? 전혀 아닙니다. 예수님께는 질병이나 죽은 자나 똑같았습니다. 죽은 자를 살린다고 더 힘을 쓰신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날 죽은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경우는 없습니다. 아니 아예 단 한 번도 이런 일은 일어난 적이 없습니다. 혹여 이 글을 읽으시는 분 중에 그런 예를 들은 적이 있는 분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케이스는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데서 나오는 것처럼 가사상태에 빠졌다가 살아나는 경우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이 살리신 나사로처럼 완전히 죽어 썩고 있는 상황에서 다시 살아나는 종류의 기적은 역사가 시작된 후로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신유는 성경의 신유와 같지 않습니다.
 
5. 다섯 번째로, 예수님이나 사도들이 병을 고칠 때는 황홀경이 동반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예수님이나 사도들이 병을 고칠 때는 요란한 것이 없습니다. 쉬운 예를 들면 예수님께서 손을 얹으시고 “에바다” 라고 말씀하시거나, “나사로야 나오라”,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정도가 전부입니다. 여기에는 치료를 받는 대상자의 격렬한 영적 황홀경 상태가 동반되지 않습니다. 그냥 가만히 앉아서 주님의 말씀을 듣고도 그대로 병이 나았습니다. 이것이 증명하는 것은 “어떤 감정적 도구나 주술적 도구가 개입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신유집회 등에서 병이 낫는 경우는 많은 경우 치료를 받는 사람의 열광적인 기도나 찬양 중에 혹은 영적 황홀경 속에서 병 고침이 나타납니다. 즉, 정상적이고 평상적인 감정상태, 곧 다른 어떤 감정적이거나 종교적인 아무런 개입이 없는 상황에서 일어나는 것은 적고, 대부분의 경우 그 사람이 비정상적인 어떤 영적 체험 속에서 병이 낫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의심의 소지가 있습니다. 의심의 소지란, 과연 그것이 하나님께서 낫게 하신 것인지 아니면 영적 황홀경 때문에 나은 것인지 알 수 없다는 말입니다. 영적 황홀경 상태로 나은 것이라면 다른 종교에서도 이런 일이 동반되는 것이 이해가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 때문이 아니라, “사람이 본성적으로 가지고 있는 어떤 영적인 힘” 때문에 나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역시 이런 점에서도 예수님과 사도들의 그것과 오늘날의 병고침은 다른 것입니다.
 
6. 여섯째로, 그러므로 이방종교에서 나타날 수 없는 성경의 신유와 오늘날의 신유는 다릅니다.
 
서론에서 말씀 드린대로, 만약 이것이 “성령의 역사”라면, 다른 종교에서는 이것이 나타나지 않아야 합니다. 하지만 신유는 거의 모든 종교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현상입니다(앞에서 다룬 방언도 사실 거의 모든 종교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현상입니다). 모든 종교에서 이런 현상이 다 나타난다면, 그것은 “성령의 역사”라기보다는, “종교적 현상”이라 하는 것이 더 옳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종교적 황홀경이 동반되면 어떤 종교이건 간에 병고침이라는 현상은 나타난다”라고 말하는 편이 더 옳습니다. 이것은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과 사도들의 기적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즉 사람이 본래부터 타고난 본질적 능력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반화할 수 있는 법칙입니다. “사람은 원래부터 종교적 카타르시스에 도달하면 치유능력이 발생되도록 만들어졌다.” 실제로 오늘날 의학이 발전하면서, 사람은 본래 종교적 카타르시스에 도달할 때 몸 속에서 어떤 호르몬이 분비되어 기적적인 치유능력을 발휘한다는 것이 입증되었습니다. 이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 모든 종교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일 뿐입니다.
 
사람을 그렇게 만든 것도 하나님이시고, 결국 자연만물의 모든 법칙을 운행하시는 것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광의적으로는 이것도 역시 하나님께서 낫게 하신 것이 맞습니다(실로 모든 병은 다 하나님께서 낫게 하시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것을 가지고 성경에 나타난 예수님과 사도들의 신유와 같은 것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병이 낫는 것은 단지 하나님의 은혜일 뿐이지, 신유와 같은 것이 아닙니다.
 
7. 끝으로, 성경은 병고침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생각할 부분은, 성경이 이에 대해서 얼만큼의 강조점을 가지고 있느냐에 대한 부분입니다. 누구든 한번쯤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 동안 그렇게 병 고침을 열심히 하셨는데, 왜 정작 복음서 외의 나머지 성경들에서는 병 고침이 거의 나오지 않는가....라는 점입니다. 이것은 다음 글에서 살펴보겠지만, 그 병 고침의 본질이 다른 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병 고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것이 가장 중요한 듯 그 사역에 전체를 겁니다. 사실 말을 그렇게 안한다 뿐이지, 신유 쪽을 강조하는 사람은 고친다는 사람도, 찾아오는 사람도 정작 복음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자신의 병을 고치고, 고침 받는 데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복음서 외에는 서신서 등에서는 불과 몇 번을 제외하면 아예 이것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신약성경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거짓 선지자들로부터 진리를 수호하는 일, 교회의 중요성, 복음이란 무엇인가, 성도의 생활....이런 것들이지만, 예수님께서 그렇게 열심히 하셨던 병 고침 사역은 실제 거의 없습니다. 이것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신유에 지나치게 치중하는 것은 비성경적이라는 생각을 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일곱 가지 측면에서 성경의 신유가 오늘날의 것과 다른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비록 제가 논증한 것이지만, 여기에는 반박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습니다. 논박할 수 있는 개인적인 주장이 아니라, 그냥 사실 그대로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우리가 눈앞에 보이는 사실 때문에 이런 점들을 거의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아니 조금 다르게 말하자면, 성경을 보는 안목이 없어서 경험에 치중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종류의 신앙은 정통 기독교 신앙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기억하도록 합시다.
(자료출처 http://blog.daum.net/sbchunew/319)
--------------- 인용 자료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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