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esang91.com 정태홍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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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blical healing...
내적치유 분석&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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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치유 게시판
성경적치유 게시판에 있는 글들은 독자들의 기존의 입장들과 차이가 나실 수 있습니다.
전화 통화를 나누면 훨씬 이해가 잘 되실 수 있습니다.
이영숙-좋은나무성품학교-자비명상이란 무엇인가?
이영숙-좋은나무성품학교-자비명상이란 무엇인가?
 
심리학에 오염된 내적치유와 수많은 프로그램들의 실체를 알 수 있는 필독서 입니다.
   

이영숙 박사는 "아이의 행복키우기"라는 책을 추천평을 써주었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크리스틴 카터(Christine Carter)이며, 사회심리학자입니다. 
그녀가 말하는 "아이의 행복키우기"와 이영숙 박사의 좋은 나무성품학교는 같은 방향이기 때문에
책에 대한 추천평을 다음과 같이 써주었습니다.
 
“성품이 가르치고 연습함으로써 더 좋은 성품을 소유할 수 있는 것처럼 행복도 가르치면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이 시대에 꼭 필요한 능력은 공부 잘하고 성취 잘하는 능력보다 다른 사람과 행복한 관계를 잘 누릴 수 있는 능력이다. 이 책은 그 길을 쉽게 가르쳐주고 있다.” 
- 이영숙 (좋은나무성품학교 대표)

(자료출처http://www.ibookpark.com/shop/item.php?it_id=1303327330)

크리스틴 카터는 이 책에서 "자비명상"을 가르치라고 합니다.
"자비명상"은 티벳의 명상훈련 법입니다.
아래의 글에 나오는 대로, 사랑과 자비의 근원이 인간 안에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자비명상으로 훈련하고 활용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책에 대하여 추천평을 써주는 것을 보면
그녀가 왜 불교방송을 마다하지 않는지 생각하게 합니다.
(참고, 15번 이영숙-좋은나무성품학교-좋은나무성품학교와 불교는 무슨 관련이 있는가?를 읽어 보십시오)

문제는 이런 티벳종교와 관련되고 불교와 관련된 것이
이영숙 박사의 좋은나무성품학교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될까요?
좋은성품으로 가기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다 활용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은 기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도움이 된다면 아무런 종교를 도입해도 된다는 교리는 없습니다.
그것은 기독교교리로서는 절대로 용납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교회는 좋은나무성품학교를 배워와서
교회학교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매우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만일 교회에서 좋은나무성품학교를 가르친다면
곧바로 중지하셔야만 합니다.
 
그로인해 여호와 하나님께서 책임을 물으신다면
과연 무엇이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고 우상을 섬겼다고 욕하면서,
정작 현대교회는 이런 성품교육이라는 명목으로
내적치유라는 이름으로 교회 안에 세상의 종교를 끌어들여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만 욕하고 있으니 심히 안타까운 일입니다.
 
*참고자료*
아래 자료는 "자비명상"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참고 자료입니다.
-------------- 인용 자료 시작 ------------------ 
우리가 통렌 수행을 진정으로 닦을 수 있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안의 자비를 일깨울 수 있어야만 한다.
 
그것은 우리가 흔히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왜냐하면 사랑과 자비의 근원이 종종 우리에게 감추어져 있고 우리는 거기에 접근하기 위한 아무 준비도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운좋게도 우리의 감춰진 사랑을 일깨우는 것을 돕기 위해 불교에서 “자비심을 훈련하는 특별한 기법” 서너 개를 개발했다.  유용한 방법들이 많이 있지만, 나는 다음의 기법들을 선별했고, 그것들을 특별한 방식으로 배열시켜 현대인이 가능한 한 최대한도로 활용할 수 있게 했다. 
 
다정한 보살핌: 근원을 드러내기
자신에게 충분한 사랑이 없다고 생각할 때, 그것을 발견하고 염원하는 방법이 있다.
 
마음속으로 거슬러 올라가 어떤 사람이 우리에게 주었던 사랑,
아마도 우리의 어린 시절에 받았을 사랑을 떠올려 형상화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어머니와 우리들에 대한 그녀의 오랜 헌신을 생각하도록 배웠다.
 
만일 그렇게 하기가 껄끄럽다면, 할머니나 할아버지 또는 자신에게 크게 친절했던 누군가를 생각할 수 있다.
그들이 우리에게 진정한 사랑을 베풀었던 특별한 경우들을 돌이켜보고 그 사랑을 생생하게 느껴보자.
이제 그 감정이 우리 마음에 다시 떠오르게 하고, 감사의 념에 젖어들자.
그렇게 함에 따라 우리의 사랑이 그것을 일으켰던 사람을 향해서 자연스럽게 드러날 것이다.
 
우리가 비록 항상 충만한 사랑을 받은 것이 아니었더라도 단 한번만이라도 진정한 사랑을 받았다면 그것을 기억
할 것이다. 이를 안다면, 그 사람이 그때 당신으로 하여금 그렇게 느끼게 했듯이, 우리가 사랑받을 만하고 참으로 사랑스럽다는 것을 다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마음을 활짝 열고 사랑으로 흘러넘치게 하자. 그리고 우리의 사랑이 모든 존재에게 미치게 하자.
자신과 아주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시작해, 우리의 사랑을 친구, 친지, 이웃 사람, 모르는 사람에게까지 확대한다.
 
우리가 좋아하지 않거나 우리를 어려운 처지에 빠뜨렸던 사람에게까지, 심지어 “적”으로 간주하기도 했던 사람에게까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주 전체에까지 우리의 사랑을 넓힌다.
  
이 사랑을 끝없이 뻗어나가게 한다.
평온함은 다정한 보살핌, 자비, 환희와 더불어 네 가지 기본적인 요소 가운데 하나로, 이 네 가지 기본적인 요소를 갖춰야 자비심이 널리 충만해진다고 불교 가르침은 강조한다.
 
일체를 포용하고 어디에도 쏠리지 않는 평온함이야말로 자비심의 출발점이자 자비심이 흘러나오는 토대이다.
이 수행을 통해 사랑의 근원이 열리는 것을 발견하고, 우리 안에서 자신의 사랑스러운 다정함이 드러남으로써
그것이 자비를 표출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리라.
 
왜냐하면 미륵불이 아상가에게 제시한 어느 가르침에서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자비의 물줄기는 다정한 보살핌이라는 운하를 통해서 흘러간다.”

자비 :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과 똑같이 생각하기
내가 앞 장에서 제시한 것처럼 자비심을 일으키는 한 가지 효과적인 방법은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을 똑같은 존재로 생각하는 것이다.
 
달라이 라마는 이렇게 풀이한다.
   
“모든 인간 존재는 똑같이 살과 뼈, 피로 만들어졌다.
 우리는 모두 행복을 원하고 괴로움을 피하려 한다.
 더욱이, 우리는 똑같이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지닌다.
 다시 말해, 인간으로서 우리의 평등함을 실현하는 것은 중요하다.”
예를 들어 어머니나 아버지, 남편이나 아내, 연인이나 친구같이 사랑하는 사람과 문제가 있다고 상정해 보자.
 
그가 어머니나 아버지 또는 남편의 “위치”에 있는 게 아니라, 자신과 똑같은 감정과 행복에 대한 갈망, 괴로움에 대한 두려움을 지닌 “또 다른 자기”, 즉 자기 자신과 똑같은 존재로 간주하기만 한다면, 아주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게 되면,
그에게 우리 마음이 열릴 것이고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지 통찰력이 생겨날 것이다.
만일 다른 사람을 자기 자신과 똑같다고 여기면
인간 관계가 좀 더 원활해지고 여기에 새롭고 좀더 풍부한 의미가 부여된 것이다.
 
만일 사회와 국가가 이와 똑같은 방식으로 상대방을 바라본다고 상상해 보자.
지상에 평화로운 분위기가 조성되어 모든 사람의 행복한 공존을 위한 굳건한 토대가 구축되리라. 
 
자비 :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의 처지에 세워보기
누군가 고통에 신음하고 그를 어떻게 도와야 할지 당황스러울 때,
과감하게 자기 자신을 그의 자리에 놓아보자.
 
만일 똑같은 고통을 받는다면, 우리가 무엇을 겪게 될지 가능한 한 생생하게 상상해 본다.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본다.
 
“내 기분이 어떻지?
 나는 내 친구들이 어떻게 대해 주기를 바랄까?
 내가 친구들로부터 가장 기대하는 것은 뭘까?”
자기 자신을 이런 식으로 다른 사람의 자리에 놓을 때,
자신의 애착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다른 존재로 곧바로 옮겨갈 수 있다.
 
따라서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의 자리에 놓는 것은 자아에 대한 애착과 집착에서 자유로워져
우리의 자비심이 유출되게 하는 매우 좋은 방법이다.

자비심을 끌어내기 위해 친구를 활용하기
고통에 신음하는 사람을 위해 자비심이 일어나게 하는 또 다른 감동적인 기법은
아주 가까운 친구 또는 진정 사랑하는 친구를 바로 그 사람의 처지에 놓는 것이다.
자신의 형이나 딸 또는 부모, 가장 좋은 친구가 이렇게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해 있다고 상상해 보자.
아주 자연스럽게 우리 마음이 열릴 것이고 자비심이 자신 안에서 일깨워질 것이다.
 
이런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말고 그가 다른 무엇을 바라겠는가?
 
이제 우리 마음에서 자비심이 흘러나와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전해지도록 하라.
그렇게 함으로써 당신의 도움이 좀더 자연스럽게 우러나오고 좀더 쉽게 그것의 방향을 가리킬 수 있게 된다.
사람들이 때때로 내게 묻는다.
“만일 우리가 이렇게 하면, 고통받고 있다고 우리가 상상하는 친구나 가족이 어떤 해를 입게 되지는 않을까?”
 
그와 달리, 사랑과 자비의 마음으로 그를 생각하게 되면 그가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심지어 그가 지난날 겪었고,
지금 겪고 있고, 앞으로 겪어야 할 어떤 괴로움이나 고통이 치유될 수도 있다.
단지 한순간에 불과하지만, 그를 도구로 활용하여 자비심을 일으킴으로써 우리는 그에게 커다란 이익을 주고
공덕을 쌓게 하는 것이다.
 
그들은 당신이 마음을 열고 죽어가는 사람이나 병든 이들을 자비로 돌보는 데 부분적으로 도움을 준 것이므로
그러한 행동으로 비롯하는 공덕은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우리는 또한 마음을 열도록 도와준 친구나 가족에게 그 행위의 공덕을 마음속으로 헌정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가 잘 지내기를 바랄 수 있고, 그가 앞으로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기도할 수 있다.
 
친구에게 감사를 표하게 될 것이고, 만일 우리가 그 친구에게 자비심을 일으키도록 당신이 도왔다고 말한다면
그들 또한 기운이 북돋워지고 고맙게 생각할 것이다.
따라서 “내 친구나 가족이 아픈 사람이나 죽어가는 사람의 처지에 놓여 있다고 상상하면 그가 어떤 해를 입지는 않을까?”라고 묻는 것은 자비심의 활동이 얼마나 강력하고 놀라운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자비심은 관련되어 있는 모두에게 축복을 내리고 치유한다.
 
예컨대 자비심을 일으킨 사람, 자비심이 일어나도록 이끈 사람,
그리고 저 자비심이 그를 향해 일어나도록 한 사람.
  
셰익스피어의 작품 <베니스의 상인>에서 포티아는 이렇게 말한다.
          자비는 곡해될 수 없다.
          그것은 하늘에서 감로수가 내리는 것처럼 흘러내린다.
          저 아래에까지------두 배로 축복을 내린다.
          그것은 베푸는 사람, 또 입는 사람에게 축복을 내린다……..
자비는 소망을 실현시켜 주는 보석으로, 치유의 그 빛은 모든 방향으로 퍼져나간다.
 
내가 좋아하는 매우 아름다운 이야기가 이를 예증한다.
 
붓다는 깨닫기 전인, 자신의 전생 이야기 하나를 자세히 밝힌 적 있다.
어느 위대한 황제에게 아들 셋이 있었는데, 그중 붓다가 가장 어린 왕자로 마하사트바라 불렸다.
 
마하사트바는 천성적으로 다정하고 자비심이 충만한 어린 소년으로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을 자기의 형제라 생각했다. 어느 날 황제가 황실 관리와 함께 숲으로 소풍을 갔다.
 
왕자들은 나무 사이에서 놀고 있었는데 잠시 후 아기 호랑이를 낳은 어미 호랑이를 만났다.
그때, 어미 호랑이는 배고픔에 시달려 자신의 귀여운 새끼 호랑이를 먹으려는 찰나였다.
 
마하사트바가 형들에게 말했다.
“어미 호랑이가 기운을 차리려면 무엇이 필요하나요?”
 
형들이 답했다.
“신선한 고기나 피겠지.”
그가 물었다.
“어미 호랑이가 영양을 공급받아 자신과 아기 호랑이를 구할 수 있도록 누군가가 자기의 살점과 피를 줄 수 있을까요?”
“정말 누가 할 수 있을까?”
그들이 말했다.
 
마하사트바는 어미와 새끼 호랑이의 곤경에 커다란 충격을 받아 이렇게 생각했다.
 
“오랫동안 윤회를 통해서 나는 쓸데없이 이리저리 휩쓸려 다녔다.
나의 욕망, 성냄, 무지 때문에 다른 중생을 거의 돕지 못했다. 지금에야 드디어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마하사트바가
“형들은 먼저 돌아가세요. 곧 뒤따라 갈게요”라고 말하자, 두 왕자는 가족이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그는 자기 자신을 양식으로 제공하기 위해 조용히 어미 호랑이를 향해 걸어가서 땅에 드러누웠다.
어미 호랑이가 그를 바라보았지만, 너무 기진맥진해서 입조차 벌릴 수 없었다.
 
그래서 왕자는 날카로운 막대기를 찾아내어 몸속 깊숙이 찔렀다.
피가 흘러나오자 어미 호랑이가 핥았다. 어미 호랑이는 점점 기운을 차리고서 입을 벌려 그를 잡아먹었다.
마하사트바는 새끼 호랑이를 구하기 위해 어미 호랑이에게 이처럼 자기 몸을 던졌다.
 
자비의 크나큰 공덕으로 인해서 그는 좀더 차원 높은 세상에 다시 태어나게 되었고, 깨달음을 성취하는 붓다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계속 나아갔다.
 
하지만 그의 행동을 통해서 도움받은 것은 그 자신만이 아니었다.
 
그의 자비에 힘입어 어미와 새끼 호랑이의 업 또한 정화되었고, 심지어 그로 인해 그들의 삶이 구원받는 과정에서
그에게 지었을지도 모르는 빚마저도 정화되었다.
 
그의 자비심으로 충만한 행위로 말미암아 그들 사이의 카르마적인 관계가 저 미래에까지 미쳤기 때문이다.
마하사트바의 육신을 받은 어미와 새끼 호랑이는 붓다의 처음 다섯 제자로 다시 태어났다고 한다.
 
다섯 제자는 붓다가 깨달음을 성취한 후 제일 처음 가르침을 받았다.
이 일화가 자비의 힘이 얼마나 광대하고 신비스러운지 말해 주고 있지 않은가!

자비에 대해 명상하는 법
하지만 내가 말했듯, 우리에게서 이런 자비의 힘을 일깨우기가 항상 쉽지만은 않다.
가장 단순한 길이 최상이고 제일 직접적이라는 것을 나는 발견했다.
 
삶은 매일매일 우리 마음을 열 수 있게 하는 기회를 무수히 제공한다.
만일 우리가 그 기회를 잡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를테면 어떤 늙은 여인이 외롭고 슬픈 얼굴로 부어오른 다리를 이끌며 쇼핑한 물건으로 꽉 차 거의 들 수 없는 두 개의 무거운 플라스틱 가방과 함께 우리 옆을 지나간다.
 
우체국에서 남루한 옷차림을 한 늙은 남자가 발을 질질 끌며 우리 앞을 지나간다.
목발을 짚은 소년이 어느 날 오후 길을 건너가기 위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노상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개.
지하철에서 신경질적으로 훌쩍이며 혼자 앉아 있는 젊은 처녀.
 
텔레비전의 뉴스 시간에 베이루트에서 살해된 아들의 시신 위에 무릎을 꿇고 있는 한 어머니.
그것이 내일 식사인 줄도 모르고 오늘 자기의 식사가 수프라고 가리키고 있는 모스크바의 늙은 할머니.
 
우리를 향해 무언가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는 에이즈에 걸린 루마니아 한 어린아이의 시선.
이런 광경 가운데 어느 하나만 보더라도 세계의 사람들이 크게 고통받는 사실에 대해 우리 마음의 눈을 열 수 있다. 한번 그렇게 해보자.
 
이런 장면이 일으키는 사랑과 비탄을 소모시키지 말자.
그 순간 자기 자신 안에 샘솟는 자비심을 느껴보자.
 
그런 감정을 털어버리지도 뿌리치지도 말고 “평상(平常)”으로 재빨리 돌아가지도 말자.
 
자신의 감정에 대해 걱정하지도 당황하지도 말자.
또는 그것을 외면하거나 냉담하게 대하지도 말자.
 
그런 장면에 직면해 자기 감정을 그대로 표출해 자비심이 순식간에 활기 차게 샘솟게 하라.
그것에 초점을 맞춰, 마음 깊이 침잠해 그에 대해 명상하고 제고(提高)하고 한층 심화시켜라.
이렇게 함으로써 세상의 고통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눈멀었는지, 우리가 겪고 있거나 지금 보고 있는 고통이란 세상의 고통에 비해 볼 때 얼마나 작은 단편에 불과한지 알게 되리라.
 
모든 중생은 도처에서 고통에 신음한다.
 
모든 중생을 향한 자비심이 쉴새없이 샘솟게 해서
모든 붓다의 축복과 함께 그것으로 중생의 신음 소리가 약해지게 하자.
자비는 동정보다 훨씬 위대하고 고귀하다.
 
동정은 두려움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건방지고 은혜를 베푸는 듯한 태도, 때때로
“그 일이 내게 일어나지 않아서 기쁘다”는 잘난 체하는 느낌이 배어 있기도 하다.
 
스티븐 레바인 Steven Levine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두려움이 어떤 사람의 고통에 닿으면, 그것은 동정이 된다.
  우리의 사랑이 다른 사람의 고통에 닿으면, 그것은 자비가 된다.”
 
자비심을 기르면, 모든 중생이 똑같고 모두 비슷한 방식으로 고통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고, 고통에 신음하는 모든 중생을 섬기게 되고, 또한 우리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고, 어느 누구보다 우월하지 않음도 알게 된다.
따라서 고통에 신음하는 사람을 보고서 일으키는 처음 반응은
단순한 동정이기보다 깊은 자비심이어야 한다.
 
그를 존중해야 하며 감사의 마음까지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듯이 그 고통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자비심이 솟아나게 한 사람은 누구나 사실상 우리에게 가장 거룩한 선물을 준 것이며, 깨달음을 향한 우리의 영적인 진화를 위해 가장 필요한 바로 그 자질이 계발되도록 우리를 도운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으로 티베트에서는 돈 달라고 구걸하는 거지라든가 우리 마음을 울리는 병든 늙은 여인은 우리의 자비심을 샘솟게 해서 불성을 지향하도록 돕기 위해 붓다가 모습을 바꿔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자비심을 다스리는 법
우리가 자비에 대해 깊이 있게 충분히 명상할 때, 모든 중생의 고통을 덜어주겠다는 강한 결의와 저처럼 고귀한 목표를 향한 책임 의식이 강하게 자신의 내부에서 샘솟을 것이다.
 
그때 이런 자비심을 정신적으로 다스려 활성화시키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번째 방법은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 즉 우리의 생각, 말, 행위가 오직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고 행복하게 해달라고 모든 붓다와 깨달은 존재를 향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염원하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기도는 훌륭한 기도이다.
“저에게 축복을 내려 유용한 도구로 활용하시옵소서”
 
우리와 접촉하는 모두가 이롭게 되어 그의 고통과 삶이 바뀔 수 있도록 기도하자.
 
두번째는 좀더 일반적인 방법이다.
 
중생의 행복, 특히 중생의 깨달음을 위해 우리의 온갖 긍정적인 행위와 영적인 수행을 바침으로써 어떤 자비심이든지 모든 중생을 향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자비에 대해 깊이 명상하면 할수록, 다른 중생을 완벽하게 돕는 유일한 방법은
그가 깨달음을 얻게 하는 것임을 우리는 알아차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단호한 결의와 절대적인 책임감이 샘솟게 되고,
그와 동시에 모든 중생을 깨우치겠다는 염원을 하게 된다.
이렇게 자비심으로 충만한 바람을 산스크리트 어로 “보디시타 Bodhicitta[菩提心]”라고 하는데, “보디 bodhi”는 깨달음, “시타 citta”는 마음을 뜻한다. 그러므로 보디시타는 깨달은 마음이라고 옮길 수 있다.
 
깨달은 마음을 일깨우고 계발하기 위해 우리는 불성의 씨앗을 서서히 성숙시켜야 한다.
 
자비심을 실천하는 우리의 수행이 완벽해져서 모든 중생을 껴안게 될 때,
저 불성의 종자(種子)는 마침내 장엄하게 불성을 꽃피울 것이다.
 
따라서 보디시타는 영적인 길 전체의 근원이자 뿌리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 티베트 전통에서 그렇게 절박하게 기도하는 까닭이다.
          보리심을 아직 일으키지 못한 자,
          그는 계속 태어나게 되고
          보리심을 일으킨 자,
          그 보리심은 줄어들지 않고
          더욱더 자라날 것이다.
 
또한 이런 까닭에서 샨티데바도 기쁨에 충만해서 보리심을 찬양했다.
          보리심은 최고의 만병 통치약
          죽음의 통치마저 극복하노라.
          그것은 결코 고갈되지 않는 보물
          세상의 궁핍을 소진시키노라.
          그것은 최고의 특효약
          세상의 병을 다스리는구나.
 
          신고(辛苦)가 많은 삶의 여정에 지친
          모든 중생을 덮어주는 나무이어라.
 
          그것은 누구든지 건너게 하는 다리
          행복하지 못한 삶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노라.
          그것은 마음에 떠오르는 진리의 달
          어리석은 생각의 유희를 쫓아내노라.
 
          그것은 세상의 몽롱한 무지를
          남김 없이 쫓아내는 위대한 태양이어라.
(자료출처http://blog.daum.net/mahatop7/3719)
------------- 인용 자료 끝 ---------------------------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http://www.esesang9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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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목사의 설교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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